나의 글 98

때론 명절증후군도 그리워진다.

때론 명절증후군도 그리워진다 아침에 눈을 뜨니 뭔가 할 일이 쌓인 것 같고 답답했다. 새벽녘 꾼 꿈이 아직도 비몽사몽 꿈인지 현실인지 정신이 들지 않았다. 고향집 부엌 싱크대에 설거지할 그릇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 저걸 언제 다 하나? 하며 막막해 하는 차에 아침이 되었다.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흔히들 며느리들의 명절 증후군이라 하지만 나는 며느리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런 증후군을 앓고 있었나보다. 꿈에서조차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있는 걸 보고 답답해 하니... 친정집엔 일 년에 기제사가 열세 번이나 있었다. 3대 외동 아들이면서 아들을 두지 못하신 아버지는 혼자서 고조까지 제사를 모시고 계셨다. 부모님의 연세가 많다 보니 막내인 내가 거들어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출가외인이라고 언니들은 친정..

나의 글 2016.02.06

2월 초하루의 생각 / 잘난 척?

해가 바뀐 지 한 달이 지났다. 2월의 첫날이다. 사람이란 참 간사하다.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고 해놓고 막상 3월부터 출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또 불안하다. 좋은 시절 다 지났다고 하면서 2월 한 달 알차게 보내려고 할 일들을 적어보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 그건 시간이 없고 바쁠 때나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머리를 너무 쓰지 않아서 아마 녹이 슬었지 싶다. 그래도 두 달간 아침 산책과 에어로빅을 꾸준히 했다는 사실 겨우 1킬로그램 줄었지만 그래도 늘지 않았다는 것이 어딘데... 아무래도 머리운동보다 육체운동이 적성에 맞나보다. 설거지와 청소 말고는 하기 싫다. 찾아야 할 자료들이 많은데 정신이 어수선해질 것 같아서 일단 미루고 교재를 들여다 보다가 ‘그 때 가서 보지 뭐..

나의 글 2016.02.01

고요와 적막 사이

고요와 적막 -고요와 적막은 비슷한 말이지만 많이 다르다. 고요라는 말의 뜨락에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벗어놓은 아침햇살이 있고, 적막이라는 말의 우산 속에는 아무도 없고 아무도 없는데 저 혼자 비 내리는 늦은 밤 정거장이 있다. 고요는 다람쥐가 초록 속에 감춰둔 인적 끊긴 길가에 있고, 어느 날 사랑은 가고 이제는 텅 빈 그대 옆자리에 적막은 있다. 그러므로 고요는 가볍고 적막은 무겁다. 문명과 제도와 욕망의 우울을 먹고 사는 적막과 흰구름, 산들바람, 느리게 흘러가는 강물소리의 혈육인 고요는 비슷한 말이지만 이렇게 다르다. 그대 영혼은 가벼운가 무거운가. 무릇 인간의 문화적 노력이란 가벼워지기 위한, 또는 적막에서 고요로 옮겨 앉기 위한 안간힘이 아닐까.- / 강현국 「시작노트」 중에서- 오후 네 시, ..

나의 글 2015.12.26

돈 천원 아껴서 뭐하려고?

버스 정류장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가 내리는 걸 보고 그 앞으로 가니 아주머니와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 한 분이 내렸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할머니께 심한 욕을 하면서 내렸다. 늙어도 더럽게 늙었다고...상판떼기 어쩌고 하면서...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한테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한 마디 해야 할 것 같았다. 친구에게 말했다. 저거 너무 심하지 않냐? 그랬더니 버스 안에서의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할머니가 버스비를 내지 않고 사용할 수 없는 보훈가족 일회용 버스표를 내었다고 한다. 운전기사가 그건 못쓰는 것이라고 하며 버스비를 내라고 하니 할머니가 버스비를 내지 않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버스에 탔던 사람들이 일제히 할머니를 향하여 비난을 하기 시작했고..

나의 글 2015.12.21

수학과 음악사이

문제: [표3]에서 판매량[G15:G21]과 판매가[H15:H21, 할인율표[G24:K25]를 이용하여 판매금액[I15:I21]를 구하시오. ▶할인율: 판매가가 300000~599999이면 5%, 600000~899999DLAUS 8%, 900000~1199999이면 12%, 1200000~1499999이면 15%, 1500000이상이면 18%를 적용함 ▶VLOOKUP, HLOOKUP, INDEX 중 알맞은 함수를 선택하여 사용. *** *** *** *** *** *** 도대체 무슨 소린지... 읽어도 들어도 이해가 안 되니... 수업시간 교사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 학생들 얼마나 재미없고 답답하고 지루할까? 내가 요즘 그 학생들 마음이다. 컴퓨터 앞에 앉는 것도 싫어하고 숫자만 봐도 어지러운데 컴퓨터..

나의 글 2015.11.14

버리기 / 비어있어야 고요하다

꾹꾹 쌓아두었던 욕심, 꾹꾹 채워두었던 가식, 꾹꾹 밀어 넣었던 슬픔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이 작은 공간에, 이 평화롭게 보이던 공간에 이렇게도 많은 반란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일까? 끝도 없이 쏟아지는 삶의 파편들, 한번쯤은 정리를 해주어야 했는데 그냥 문 닫아 버리고 겉으로 아무 일도 없는 듯 십 년이란 세월을 덮고 있었다. 아, 제각기 쏟아져 나오는 아우성들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이것들을 집어던지고 있었다. 숨 막혀. 나도...   22일 동안 집 정리를 하고 있지만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이사 온 지 꼭 십 년이 되었는데 이렇게 대대적인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 있게 되자 이튿날부터 가슴이 답답했다. 무언가가 가슴을 억누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

나의 글 2015.09.23

말을 못했어 / 이젠 안녕!

20일째 매일 집안청소를 하고 있다. 20일째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9월 1일부터 쉬고 있다. 쉬는 것이 아니라 출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나이에 명예퇴임을 하는 친구도 더러 있지만 나는 스스로 퇴임을 한 것이 아니라 기간이 만료되어서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명예퇴임도 아니고 전근도 아니어서 학생들에게 어떠한 이유도 대지 못했다. 담임선생님께 들었는데 그만 두느냐고? 승진 하는 건 아니냐? 고 묻기도 했다. 나는 정색을 하며 아니라고 했고 떠나는 걸 말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형식적인 이별의 절차가 싫었고 눈물을 보일까 봐 그것이 싫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아침 ‘이젠 안녕!’이란 노래를 부르며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슬픈 내색을 하지 않았으며 그만두지 않는다고 웃으며 평소..

나의 글 2015.09.20

영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 때론 슬픔도 필요하다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 때론 슬픔도 필요하다 뭘 하지? 영화관엘 갈까? 얼마 전 얼핏 들은 ‘인사이드 아웃’ 애니메이션 영화를 갈까? 복잡한 이야기보다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단순하고 밝은 이야기를 봤으면 좋겠는데... 표를 두 장 예매해서 친구를 불렀다. 영화관에 들어서자 꼬맹이들 바글바글 와글와글 아궁! 잘못 왔구나. 상영시간에 떠들면 어떡하지? 시작하고 한참 동안 꼬맹이들 일어섰다 앉았다 하고 나는 무슨 이야긴 줄 감이 잡히지 않고... 열두 살 주인공 라일리가 성장하며 겪는 이야기를 소심, 버럭, 기쁨, 까칠, 슬픔이라는 다섯 감정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다. 일단 다섯 캐릭터들이 독특하면서도 친근감이 가는 그런 캐릭터들이다. 신기하게도 꼬맹이들은 떠들지 않고 몰입을 해서 보고 있었다...

나의 글 2015.07.29

기억 속의 들꽃 / 머슴 양선태

기억 속의 들꽃/ 머슴 양선태 시간이 많으면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 맞다. 정말 엉뚱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오월, 행사가 많다. 내리 나흘을 놀고 있자니 아주 오래된 ‘기억 속의 들꽃’처럼 얼굴 하나가 떠오른다.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이름 하나가 떠오른다. 얼굴이 하얗고 서울말을 쓰는 소년이었다. 소년이라고 하기엔 낭만이 전혀 묻어있지 않은 기억이다. 총각도 남학생도 오빠도 어울리지 않는 잠시동안 우리 집 머슴으로 머물렀던 얼굴, 약간 사각형에 가까운 둥글 넙적한 선한 인상의 그는 서울이 고향이라고 했고 부모가 없다고 했다. 이리저리 떠돌다 어찌 우리 촌 동네까지 밀려오게 되었을까? 내가 4, 5학년 때쯤이었고 나보다 대여섯 살 정도 많았다고 한 것 같다. 이름은 ‘양선태’ 아직도 이름이 기억나다니..

나의 글 2015.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