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버리기 / 비어있어야 고요하다

몽당연필^^ 2015. 9. 23. 23:32

 

 

 

 

 꾹꾹 쌓아두었던 욕심, 꾹꾹 채워두었던 가식, 꾹꾹 밀어 넣었던 슬픔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이 작은 공간에, 이 평화롭게 보이던 공간에 이렇게도 많은 반란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일까? 끝도 없이 쏟아지는 삶의 파편들, 한번쯤은 정리를 해주어야 했는데 그냥 문 닫아 버리고 겉으로 아무 일도 없는 듯 십 년이란 세월을 덮고 있었다. , 제각기 쏟아져 나오는 아우성들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이것들을 집어던지고 있었다. 숨 막혀. 나도...

 

  22일 동안 집 정리를 하고 있지만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이사 온 지 꼭 십 년이 되었는데 이렇게 대대적인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 있게 되자 이튿날부터 가슴이 답답했다. 무언가가 가슴을 억누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위염이 도지기 시작했고 병원에 갔다 온 후 제일 먼저 위를 비워야 했다. 그동안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너무 많은 음식들을 위에 밀어 넣었는지 모른다. 천천히 음미하며 소화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해서 짓누르는 이 답답함, 그렇다. 보이지 않는 속에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있어서일 것이다. 마음도 장롱도 서랍도 이제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포화상태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집이 비좁아서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볼까 돌아다녔으나 그건 꿈이었다. 참 잘못 살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이대로 집을 비워서 사는 수밖에 없다고 결정을 내렸다. 일단 옷부터 버리기 시작해서 스무날 이상을 버리고 비우고 있지만 아직도 비울 곳이 많다.

 

 첫돌 때 입었다고. 졸업할 때 입었다고, 신혼여행 갈 때 입었다고, 그가 좋아하던 옷이라고 ... 어느 옷인들 추억 없는 옷이 있을까? 버려야 한다. 서랍 가득 넘치고 있는 잡동사니들, 너무 많은 추억을 재어두는 것은 마음을 복잡하게 할 뿐이다. 비워서 삭막한 게 아니라 비우면 고요해 지는 법이다. 버려야 한다. 번번이 버리지 못하고 다시 쌓아 둔 이 물건들, 이 많은 물건들이 곳곳마다 쌓여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추억들에 가슴이 짓눌려 있었을까.

 

 베란다를 치우다 빈 화분과 도자기 수에 나도 놀랐다. 야생화 꽃이 예쁘다고, 도자기가 멋스럽다고 눈에 띠는 대로 사 모은 것 같다. 관리를 하지 않아 꽃은 남아 있지 않고 빈 화분만 수십 개 쌓여 있다. 수납장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캔버스며 세 대의 기타, 신발장에 들어있는 수 십 켤레의 신지 않는 신발, 어쩜 나는 그동안 허영을 사 모았는지 모른다. 가슴이 허허롭다고 비어 있는 공간에 자꾸만 뭔가로 가득 채우고 허기지는 포만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제 때 닦아주지 않아서 군데군데 묻은 묵은 때,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뒹구는 물건들, 집에 있으니 이런 것들만 눈에 보인다. 평소에는 별로 눈에 거슬리지 않았는데 모두 다 위치가 잘못된 것 같다. 수건이 있어야 할 자리가 있고 양말이 있어야 할 자리가 있고 컵이 있어야 할 자리가 있는데 모두 다 제 자리가 아니다. 그렇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 제자리를 벗어나서 뒹굴고 있으니 질서가 없고 복잡할 수밖에 없다.

 

 너무 많으면 복잡하다. 복잡하면 튀어나오고 만다. 집의 크기나 공간의 크기에 맞춰서 물건들을 들여놓아야 한다. 공간의 크기를 가늠하지 않고 용도를 생각지도 않고 사 모으다 보니 이것들이 쌓여 제자리를 벗어나고 있다. 버리자니 또 아깝다. 아깝다고 끌어안고 있으면 또 답답해질 것이다. 생각도 물건도 한번 씩은 정리해서 버려야 한다. 쓸데없는 것들로 꽉 차 있으면 번잡하고 번뇌에 쌓인다 비어 있음이야말로 진정 남에게 아름답고 나에게 고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