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98

겨울비

겨울비 겨울비는 휴식이다. 어렴풋한 새벽잠 속에서 들리는 듯 마는 듯 비가 내리고 있다는 걸 느낀다. 화들짝 놀라는 마음 아닌 편안한 마음, 무표정으로 창밖을 본다. 봄비나 가을비가 올 때처럼 약속부터 잡는 게 아니라 약속을 깨기 위해 핑계를 생각한다. 휴대폰을 잠시 꺼 두고 오랜만의 휴식을 겨울비와 함께 누려보고 싶어진다. 먼 어느 날 고향 집 골방에서 보던, 혹은 듣던 겨울 나그네, 겨울 연가 그런 것들을 불러내어 함께 하고 싶어진다. 눈이 되지 못해서 행여 원망이라도 들을까 봐 소리 죽인 겨울비다. 눈이 아니어서 오히려 호들갑 떨지 않게 되고, 차갑지만 더 차가운 날보다는 포근한 날이라고 여유를 부리며 포근하고 따스한 것들을 불러내고 싶다. 비 온 뒤 바깥이 얼어붙지 않을까? 집 없는 사람들은 어디..

나의 글 2024.01.07

벌써 65세? 아직 65세?

벌써 65세? 아직 65세? - 강명희 소설 ‘65세’를 읽고- 친구 생일 케이크를 사러 갔더니 초를 몇 개 드릴까요? 묻는다. 선뜻 대답을 못했다. 올해 65세다. 만 나이가 아닌 우리 나이로지만 너무 많아서 대충 초 몇 개만 달라고 했다. 며칠 전 나도 65세 생일을 보냈다. 아직 나는 손주를 보지 않았기에 할머니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카톡 프로필에 자신의 사진이 아닌 손주들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면 할머니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가 자신의 나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건 아줌마 스타일이야. 이건 할머니 같아. 옷을 고르거나 머리를 손질할 때도 아직 아가씨인 것처럼 꼭 한 번쯤은 그렇게 말한다. 이것이 문제다. 몸과 마음이 함께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 알지 못하는, 문득 서글퍼지..

나의 글 2023.11.24

계륵 / 버리면 가벼워지나니

계륵/ 버리면 가벼워지나니 ‘사서 고생’이라는 말을 절실히 실감하고 있다. 며칠 전 미술 전시회를 갔다가 그곳에 있는 작은 탁자가 예쁘다고 했더니 원가로 가지고 가라고 했다. 비싼 미술품은 구입하지 못하고 뭐라도 구입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는지 둘 장소도 생각하지 않고 덜컥 집안에 들여놓은 것이다. 집에 가지고 오니 우리 집 분위기와는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정말 둘 곳이 없다. 좁은 아파트가 물건들로 꽉 차서 뭔가를 버려야만 할 처지다. 지인에게 샀으니 바꾸지도 못하고 저걸 어떡하나? 정말 잠이 오지 않았다. 작년 가을 학교도서관 공사를 하면서 30년이 넘은 작은 도서 목록함(?)을 버린 것을 보고 욕심이 발동했다. 이제 다시 보지 못할 도서관 용품이니 귀하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용차도 없으면서 차를..

나의 글 2020.08.12

편견 / 마스크 착용

편견 / 마스크 착용 ‘편견’이나 ‘고정관념’이란 단어는 대체로 부정적으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내 생각이 확고하다고 생각하다 보면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더 확고할 수가 있다. 당연히 자신은 편견이란 걸 모른다. 서로가 편견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제껏 받아 온 교육이라든가 가치관이라든가 정서라든가 이런 것들로부터 인해 어떤 부분에서건 자기도 모르는 편견을 가지게 되어 있다. 편견을 갖지 않으려고 해도 그동안 지켜온 기준이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벌금 3백만 원을 부과 한다는 말도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그만큼 마스크 착용이 중요해졌다는 증거다. 사실 코로나 발생 이전에는 마스크를 착용해 본 적이 없었고 환자이거나 자신을 감추려고 하는 사람들이 쓰고 다..

나의 글 2020.05.11

책을 읽을까? 냉장고 청소를 할까?

책을 읽을까? 냉장고 청소를 할까? 일요일 아침, 5시, 작은아들의 톡이다. 이른 아침 톡이란 게 별로 좋은 소식일 리 없다. 요즘은 하루의 기분이란 대체로 자식들의 근황과 일치된다. 아파서 오늘 자격증 시험을 뒤로 연기했다고 한다. 아플 수야 있지만 왜 하필 오늘 아플까? 삐딱해진 마음이 뒤죽박죽이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책을 읽을까? 냉장고 청소를 할까? 하여튼 뭔가에 몰입해야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것 같다. 얼마 전부터 읽으려고 머리맡에 둔 책 두 권, 신간 서적 중 제목만 보고 골라 온 책이 있다. ‘쾌락독서’와 ‘연필로 쓰기’ ‘개인주의 선언’으로 유명해진 문유석 판사의 책과 덤덤하게 쓴 것 같아도 끌리는 김훈 작가의 책이다. 소위 말하는 베스트셀러 대열에 있는 책들인 것 같다. 요즘..

나의 글 2019.06.23

손편지 / 받는즉시 답장 주세요.^^

손편지/ 받는 즉시 답해 주세요 받는 즉시 답해 주세요. 예전 손편지를 쓸 때는 마지막엔 꼭 이런 구절을 넣는다. 받는 즉시 쓴다고 해도 4일에서 일주일은 걸리던 시절, 그 계산 안에는 편지가 도착하지 않을 것인데도 부치자마자 그날부터 매일매일 우체부를 기다리던 일 일주일이 넘어도 답장이 오지 않으면 얼마나 답답하고 허전하고 온갖 좋지 않은 상상을 다 했었던가. 기다림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상대방에게 보낸 편지의 답장을 기다리는 마음 얼마나 애틋하고 짜릿하고 가슴 설레었던가! 제자의 손편지를 받고 즉시 답장을 해 준다는 것이 차일피일 미루다가 열흘이 넘어버렸다. 간단하게 한 줄이라도 빨리 답장을 해 주는 것이 기다리는 사람을 덜 지루하게 하는데 말이다. 종일 기다리던 편지는 안 오고 우체부가 ..

나의 글 2019.04.29

지금 난 뭘하고 있지?

10월이다.한 줄 적어놓고 20일이 지났다. 3월부터는 시간이 참 많을 것 같았는데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수업이 없고 담임이 없으니 퇴근을 일찍 해서 무엇이라도 할 것 같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일은 확실히 줄었고 정신적으로 부담되는 것이 거의 없다. 받는 돈만큼 일이 없는 것 같아서 괜스레 미안하고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두 학교 겸무인데 추경예산을 신청해서 두 곳 다 도서실 환경을 대폭 바꾸었다. 서가를 교체하거나 자리를 바꾸면 많은 책들을 다 꺼내었다가 다시 순서대로 정리해야 한다.여름방학 때부터 했는데 아직 덜 끝났다. 책을 계속 만지니 엄지손가락이 많이 아프다. 그래도 학생들 지도하는 것보다는 몇 배는 수월하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 점심시간이면 4, 50명 정도는 도서실에 오는..

나의 글 2018.10.20

시간 보내기 / 화첩기행 다시보기

시간 보내기 / 화첩기행 다시보기  오랜만에 꼬박 열 세 시간 한 가지 일에 몰두했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서 책을 보다가 어두워서 시계를 보니 저녁 일곱 시다. 오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책 다섯 권을 수박 겉핥기 식이지만 계속 읽고 있었다. 제목은 화첩기행>, 화가 김병종 교수의 그림보다도 글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었다. 화첩기행 시리즈(전 5권)를 꼭 사봐야지. 거기 나오는 그 지역들을 꼭 여행해 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이렇게 빨리 지나갔다.  한 달 전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한 달 전에 나도 오백만 원 정도의 도서실 책을 구입해야 했다. 읽고 싶은 책, 권하고 싶은 책이 있으면 도로 내게 말해달라고 했다. 지금은 인문학을..

나의 글 2018.05.27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상담실을 차릴까? 일주일간 계속 자주 못 본 친구들이 찾아와서 몇 시간씩 놀다 갔다. 준비할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은데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 속상한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갔다. 오늘은 정말 목도 아프고 몸도 피곤하고 몸살이 날 것만 같았다. 이제 개학하면 못 만난다는 걸 알고 얼굴도 볼 겸 찾아왔다고 하지만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자랑부터 남편이나 시댁에 대한 불평불만, 친구에 대한 섭섭함, 노후 대비 등 사실 별 관심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정신과 의사는 눈물을 닦아주는 역할을 하고 상담사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사실 나는 칭찬이나 살가운 말을 잘 하지 않는다. 돌직구를 날려서 상대방을 당황하게도 하고 상처받게..

나의 글 2016.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