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문해교육 연수 / 어린 백성(百姓)을 위하여

몽당연필^^ 2015. 10. 11. 04:37

 

              

 

 

한글날이다.

세종대왕께서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하신지 569돌이 되었다. 올해는 한글날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종일 문해교사 연수를 받았다. 문해(文解)란 문자해득(文字解得),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다가 문해교사 공고문을 보았다. 성인 비문해자들에게 단순한 글자를 넘어서 문자를 통한 세상과의 소통을 도와주는 일이다. 문의를 하니 교사자격증이 있어도 50시간 이상 문해교사 연수를 받아야만 자격이 주어진다고 했다. 훈민정음 창제 취지와 의의를 배웠으니 좋은 일이 아닐까? 일단 신청을 했다.

 

요즘 시대에 글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했는데 깜짝 놀랐다. 2008년 국립국어원 조사결과, 19세 이상 성인 중 읽고 쓰는 능력이 전혀 없는 비문해자가 62만여 명이고, 낱글자나 단어를 읽을 수 있으나 문장 이해 능력이 거의 없는 반문해자가 198만여 명 등 까막눈수준이 19세 이상 성인의 7%260만여 명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7,80대가 아니더라도 비문해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가 나서서 비문해자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거의가 노령인데다 비문해자임을 감추고 스스로 배우려고 나서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아직 이 분야에는 지원과 관심도 적어서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글자를 읽지 못한다는 것, 어떤 고통일까? 지금 당장 내가 글자를 읽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야말로 캄캄한 암흑 속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요즘은 정보화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노안(老眼)이어도 황당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답답한데 글을 전혀 읽지 못하는 비문해자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늘 가슴 조이며 눈치로 추측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숨기면서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오빠를 대학 보내기 위하여... 글만 알았으면 국회의원이나 판사가 되고도 남을 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어느 할머니는 글을 배워서 하고 싶은 꿈이 카운터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글자를 몰라서 평생 허드렛일만 하고 살았는데 카운터에서 돈 계산을 하는 사람이 가장 부러웠다고 한다. 어느 할머니는 예전부터 하던 돈가스 집이 번창해서 간판을 새로 달았지만 그 간판을 읽을 수가 없고 많은 숫자를 글로 적을 수가 없다고 한다. 서문시장 양장점 주인은 치수를 암호로만 적어서 옷을 맞춰주었는데 요즘은 치수와 견본을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하니 난감하다고 한다. 40대 오토바이 사장님은 각종 오토바이와 차 종류를 알긴 해도 글자로 읽고 쓸 수가 없다고 한다. 어느 젊은 아주머니는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자 일부러 공장에 취직을 했다고 한다. 어느 아주머니는 은행에 갈 때면 오른쪽 손에 붕대를 감고 간다고 한다.

 

문해교사라는 단어를 듣는 것도 처음이고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단지 내 교과목과 유사한 직종의 일자리를 알아보고 갔을 뿐이다. 첫 시간 자기소개 시간이었다. 35명 가운데 정년퇴임이나 명예퇴임한 교장, 교사 출신이 많았고 이외의 분들은 대부분 유사기관에서 봉사활동을 오래 해온 분들이었다. 모두가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는데 나는 솔직히 아니었다. 봉사활동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돈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인 것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강사료는 있다. 그러나 봉사정신 없이는 할 수 없다고 누누이 강조를 해서 자신이 없고 나하고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시간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본의 아니게 튀는 한 명이 되고 말았다.

 

이튿날 나의 출석에 대해 관심이 있었나보다. 거금의 수강료를 냈는데 당연히 출석을 했다. 그리고 사실 한 번 결정을 하면 금방 바꾸지 않는 성격이다. 아침부터 동영상을 보며 울컥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자꾸만 눈물이 난다. 아니다. 이건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한 평생 글자를 몰라 무시당하고 사기당하고 서러움을 당한 일을 할머니들이 글을 배워서 연극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애 처음 교복을 입고 학교 책상에서 초등학생처럼 음악 수업을 하는 모습, 편지를 써서 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읽어 주는 할머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는 그 분들의 모습이 얼마나 가슴 뭉클하든지... 어머니... 우리 어머니도 일자무식 비문해자였다. 한자까지 능숙하게 읽고 쓰시던 아버지 밑에서 얼마나 서러웠을까?

 

부산에서 제천에서 사재를 털어 문해교육을 하고 계시는 분들의 경험을 듣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 저렇게 열정적으로 자신의 일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들, 사회 그늘에 있는 사람들의 손발이 되어주는 분들, 대가 없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어서 이 세상은 돌아가고 있구나. 그래도 따뜻한 세상이라고 할 수 있구나. 내가 모르던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국어를 전공했다고 하지만 누구에겐가 한글을 가르칠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눈높이보다 위로만 보고 있었나보다. 솔직히 지금도 문해교사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곳에 참 잘 왔으며 한번쯤은 꼭 들어야 할 강의였다는 것이다. 그 어떤 인문학 강의보다도 더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 살아있는 인문학 강의였다.

 

어릴 적 할머니 다리에 누워

옛날 얘기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는데

우리 손주는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하니

무서워 죽겠다

-2013년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무서운 손자중, 강춘자 -

 

                                            2015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입상작(출처: 해나루 시민학교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