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때론 명절증후군도 그리워진다.

몽당연필^^ 2016. 2. 6. 22:29

때론 명절증후군도 그리워진다

 

아침에 눈을 뜨니 뭔가 할 일이 쌓인 것 같고 답답했다. 새벽녘 꾼 꿈이 아직도 비몽사몽 꿈인지 현실인지 정신이 들지 않았다. 고향집 부엌 싱크대에 설거지할 그릇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 저걸 언제 다 하나? 하며 막막해 하는 차에 아침이 되었다.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흔히들 며느리들의 명절 증후군이라 하지만 나는 며느리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런 증후군을 앓고 있었나보다. 꿈에서조차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있는 걸 보고 답답해 하니...

 

친정집엔 일 년에 기제사가 열세 번이나 있었다. 3대 외동 아들이면서 아들을 두지 못하신 아버지는 혼자서 고조까지 제사를 모시고 계셨다. 부모님의 연세가 많다 보니 막내인 내가 거들어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출가외인이라고 언니들은 친정 제사엔 잘 참석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론 거의 제사 음식을 내가 해왔다. 어머니가 연세가 많았고 늘 다리가 편찮아서 혼자서 할 수가 없으셨다. 물론 어머니가 장을 봐 와서 대충 다 씻어서 장만해 놓으면 마지막 단계를 내가 한 정도였지만 제삿날만 되면 나의 일은 밤 12시가 되어야 끝이 났다. 어떤 날은 종일 음식을 해서 제사상을 차려 놓고 아버지 어머니께서 절을 하지 못하신 적이 있었다. 다리가 아파서 일어서지를 못하시는 것이었다. 아버지 연세 92세까지 제사를 모셨으니 이 정성을 아신다면 대를 이을 아들을 점지해 주셨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원망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당연히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다시 그 일을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특히 추석이나 설날이 되면 며칠 전부터 할일이 이만저만 많은 게 아니었다. 설날 가래떡이나 강정, 한과, 두부를 하려면 며칠 전부터 종일 몸살이 나도록 일을 해야 한다. 우리 집은 며느리가 없고 언니들도 일찍 출가했으니 자질구레한 일은 당연히 나의 몫이었다. 밑반찬을 하거나 제기나 그릇들을 반짝하게 닦아야 했으며 평소 사용하지 않던 방 정리를 해야했고 이불 빨래를 해서 호청을 갈아 끼워야 했고 아버지 머리 깎아드리고 목욕시키는 일도 나의 몫이었다. 아버지도 변소를 청소하고 부엌 천정의 그을음도 털어내고 마당과 마루 밑을 쓸고 외양간을 치우시고 할 일이 많으셨다. 연세 많으신 아버지는 외양간 거름을 바깥으로 끌어내시면서 숨이 차서 몇 번을 쉬셨다. 아무래도 내가 나을 것 같아서 쇠스랑으로 거름을 끌어내니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그래 해봐라. 시집가기 전에 모든 일을 다 배우고 가야 한다.’라고 하셨다. 넓은 마당과 마루 밑까지 구석구석 쓸고 외양간 거름을 다 끌어내고 나면 비로소 집이 훤하게 보인다. 바로 제대로 된 명절 대청소가 된 것이다.

 

예전 시골에선 목욕도 일 년에 두 번 명절 때마다 했다고 할 정도이니 집 전체를 치우는 대청소는 더군다나 자주 할 수 없었다. 명절이 되어야 집안 구석구석 손질을 하고 치우고 닦고 하는 것이다. 일할 사람이 여럿 있으면 분업을 할 수도 있으련만 우리 집은 세 식구가 이 모든 일을 해야 했으니 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일할 사람은 없어도 인사하러 오는 사람, 찾아 오는 사람은 많아서 명절날부터 술상을 종일 차려내야 했다. 오랜만에 언니들이 오니 집도 더 깨끗하게 치워야 했고 맛있는 것도 더 만들어 놓고 싶었다. 그렇게 언니들이 만나면 모두 모여서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설거지는 또 내 몫이었다. 언니들도 나이가 많고 오랜만에 친정에 다니러 왔으니 당연히 내가 며느리 역할을 해야만 했다. 나는 결혼을 했어도 친정에 있었으니 올케나 어머니가 해 주는 밥을 온전히 받아먹는 딸들이 부러웠다. 물론 어머니는 내게 힘든 일을 시키지 않으려고 했으나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평소 남 앞에 손을 잘 내놓지 않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일도 안하고 자랐으면서 손이 왜 그러냐고 한다. 이렇게 일을 한 것을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을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 정도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당연히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쩜 연세 많으신 친정 부모님과 살았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모레가 설인데 오늘 아무것도 안 하고 이러고 있으니 너무 편해서 그때가 생각났나 보다. 그래서 꿈속에서 일거리가 보였나 보다. 나이가 드니 사실 일하기가 겁이 나기도 한다. 내일은 시댁에 가야 한다. 우리들이야 한 이틀 정도만 거들고 훌쩍 와 버리면 끝이다. 그러나 큰형님은 우리를 보내고 나서도 할 일이 엄청 많을 것이다. 일 년에 두어 번 시댁 일을 거들면서 명절 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닌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힘들지 않다. 모이는 사람, 먹어주는 사람들이 우리 식구인데 그것을 힘들다고 안 한다면, 그래서 몸이 마냥 편하면, 그래서 명절증후군이 없다면 참 좋은 세상이 될 것인가?

 

 

 

 

 

 

새배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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