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말을 못했어 / 이젠 안녕!

몽당연필^^ 2015. 9. 20. 11:24

20일째 매일 집안청소를 하고 있다. 20일째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91일부터 쉬고 있다. 쉬는 것이 아니라 출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나이에 명예퇴임을 하는 친구도 더러 있지만 나는 스스로 퇴임을 한 것이 아니라 기간이 만료되어서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명예퇴임도 아니고 전근도 아니어서 학생들에게 어떠한 이유도 대지 못했다. 담임선생님께 들었는데 그만 두느냐고? 승진 하는 건 아니냐? 고 묻기도 했다. 나는 정색을 하며 아니라고 했고 떠나는 걸 말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형식적인 이별의 절차가 싫었고 눈물을 보일까 봐 그것이 싫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아침 이젠 안녕!’이란 노래를 부르며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슬픈 내색을 하지 않았으며 그만두지 않는다고 웃으며 평소와 다름없이 청소를 깨끗이 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어휘노트를 제출하라고 했다. 학생들도 반신반의 하면서 눈물 흘리지 않는다고 오히려 섭섭해했다. 각 반에 들어가서도 별다른 말 없이 끝까지 수업을 진행했다. 점심시간, 작년에 가르쳤던 3학년 학생들이 우르르 교무실로 모여들었다. 급작스럽게 만든 롤링 페이퍼와 편지를 가지고 와서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 아닌가? 뭉클했지만 당황스럽고 민망해서 특유의 반어법으로 학생들을 야단치고 말았다.

 

종례시간, 2학년 3반 부담임이니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준비해 둔 캐릭터 양말과 초코파이를 나누어주고 이제 나이가 많아서 너희들이 싫어하니 내일부터 젊고 예쁜 선생님이 오실 거라고 말했다. 칠판 가득 이별의 인사를 적어두고 가지마라고 내 손목을 묶어두고 어느 한 학생이 울기 시작했다. 울긴 왜 울어? 다시 보면 되지 하면서 웃었지만 꾹꾹 참았던 눈물이 확 솟구쳤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훌쩍이고... , 이럴까 봐 말하지 않았는데... 사실 담임이 아니어서 그렇게까지 정이 들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쩜 학생들과의 이별보다도 나의 처지를 생각해서 감정이 솟구쳤을 수도 있다.

 

기간제 교사생활 10여년, 중간에 또 한 번의 이런 이별이 있었지만 그때는 학기 중간이 아니 었고 지금보다 젊었었고 다른 학교에서 또다시 정붙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나이가 많다. 2학기 자리가 없어서 계약한 학교가 없고 초임 대기발령 교사들이 많은 터다. 어쩜 교단에 다시 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는데 다시는 이 자리에 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어느 날 직장을 나가지 못하게 된 가장의 마음을 깊이 헤아릴 수 있었다. 정식으로 자기가 원할 때까지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교사들이 부러웠다.

 

힘들다고 하는 교사들에게 늘 말한다. 어느 직장보다도 수직관계가 아닌 평등한 위치에서 순수한 학생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라고... 교사를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 20년 넘게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으니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고 일을 그만 둘 처지는 아니다. 이 나이에 이만한 대우를 해 주는 곳이 어디에 있을까? 새벽 6시에 집을 나서서 밤 10시에 집에 들어와도 보람이 있었고 학생들이 착하고 예뻐서 얼마나 행복했던가? 물론 힘들게 한 학생도 있었지만 어느 직장이나 그 정도로 힘 안 드는 곳이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밝고 긍정적일 수 있는 이유도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 중에서도 학생들과 함께 생활 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좋아하던 일을 본의 아니게 그만 둘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어디든 일을 해야 하는데 자리가 없다. 나의 신분을 모르는 사람들은 왜 그만뒀냐고 할 텐데 그동안 기간제로 근무했다고 하면 그런 것 같았다고 할까? 사람이 바뀐 것도 아닌데 다르게 볼까? 그럴 수도 있겠다. 연금이 없으니... 직장에서 늘 나의 처지를 잊지 않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학생들에게는 전혀 신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학생들이 알게 될까봐 사실 그것이 가장 마음 쓰인다.

 

새 학기가 시작되거나 학교를 옮겨서 새로운 학생들과 수업을 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던가? 내 생활 중 학교 일을 가장 우선 순위로 두고 나의 학교인 것처럼 신나고 즐겁게 다니지 않았던가? 물론 경제적인 댓가를 무시할 수도 없기는 하다. 그러나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가장이 되고 어깨의 짐이 무거워지고 다시 시작한 공부, 그것이 바로 교사의 길이었다. 모든 힘든 것을 잊게 해 준 그 길, 지난 10여 년에 감사한다.

 

지금쯤 어느 반에 들어가서 국어 수업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녀석들 까르르 웃을 텐데... 녀석들 초롱초롱한 눈망울들 잠에 겨운 흐리멍텅한 눈망울들... 놀아요. 그만해요. 뭐라고 한들 한 명 한 명 예쁘지 않은 학생들이 있었던가? 늘 나를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하던 그 녀석들이 너무 보고 싶다. 가끔씩 오는 문자를 보면 또 귀엽고 고맙고 눈물겹다. 국어 시간에 샘 보고 싶어서 울뻔했는데 쪽팔려서(?!) 참았다고... 물론 오래 가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이별이 너무 무겁다. 일을 해야 한다. 내 행복의 근원은 일이었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비밀도 아닌데 비밀글로 했다가... 보는 사람도 없을 걸 뭐 그리...)

 

 

 

 

 

 

                 이젠 안녕! (이 노래를 볼러주던 녀석들 생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