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312

수구리!

수구리! 참 놀랍다. 초록의 저 몸짓 3층 높이쯤의 건물 매끈한 벽까지 담쟁이 덩굴이 뻗어 왔다. 고개 쳐들지 말고 납작 엎드려. 엎드린 모습이 숙연하지만 예쁘다. 자세를 낮추고도 위를 향해 갈 수 있고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저 담쟁이... 고개 숙일 줄 모르는 우리 담쟁이 앞에서 부끄럽다. 수구리!! ㅎㅎㅎ 담쟁이 / 정연복 온몸이 발이 되어 보이지 않게 들뜨지 않게 밀고 나아가는 저 눈부신 낮은 포복

그냥 2020.09.23

거리두기

사람이나 물건이나 적당한 '거리두기'는 극으로 치닫질 않는다. 그러나 너무 오래 '거리두기'는 가까워지기가 어렵다. 붙어있는 사람을 떼어내야 하는 사람과의 거리두기 붙지마라, 떨어져라 이 말을 일상으로 하고 있다니... 붙어라, 붙어라. 다정하게 붙어라. 이런 말 빨리 할 수 있길... ( 이 시기에 가장 힘든 사람은 보건 교사이다. 학교엔 발열체크 알바생이나 문고리 소독하는 알바직도 있다. 참 경험해보지 못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냥 2020.09.01

언니와 함께 / 울진 통고산 자연휴양림(8.2~8.3)

가족여행을 가서 1박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밖에서 1박 하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다. 올해 여든이 된 대구의 넷째 언니네 가족들은 나를 엄마 대하듯 챙겨준다. 며칠 전 언니 생신 때도 함께 했고 여름 휴가에도 같이 가자고 했다. 계속 되는 장마로 인해 식구들 몇 명이 못가게 되었지만 난 마침 시간이 되어 함께 갔다. 언니는 내게 엄마나 다름 없다. 나를 딸처럼 대하며 진심을 다 한다. 7월 보너스가 들어오니 엄마가 생각났다. 나도 엄마와 맛있는 것도 먹고 옷도 사주고 좋은 곳을 함께 다니고 싶은 생각이 났다. 엄마가 안 계시니 당연히 엄마같은 언니가 생각났다. 돈이 생기자 아들보다도 언니가 먼저 생각난 것이다. 언니를 불러서 옷도 사고 시장도 다니고 했다. 곁에 있어줘서 고..

그냥 2020.08.18

감자꽃

감자꽃 장맛비가 계속 되고 있다. 물난리로 걱정인 곳이 많지만 햇볕 쨍쟁 날까봐 은근 걱정이다. (디리따 머라캐이겠다) 시원하고 차분하고, 비 내리는 풍경은 우리들 들뜬 마음마저 가라앉힌다. 학교 마당에 쪼매난 농장이 있다. 며칠 전엔 쑥갓꽃이 노랗게 예쁘더니 갈아엎었고 오늘은 하이얀 감자꽃이 비에 젖어 이뿌다. 촌년이라 보이는 꽃들보다 땅 밑의 감자에만 관심 있었다. 주먹으로 팍 치면 포말처럼 확 번지던 분 많은 감자^^ 묵는데에 초점을 맞추었으니 감자꽃을 유심히 보지 않았다. 그런데 늙어가니 이런 것들이 이뿌게 보인다. 우리 유년의 기억들이, 한포기 뽑으면 줄줄이 달려오던 감자 그 여름 감자밭이 하얀 꿈처럼 펼쳐진다. 감자꽃 한 가지 꺾어서 꽃병에 꽂아본다. 감자꽃 권태응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그냥 2020.07.30

머리 한 날

장마가 계속 되고 있다. 비 계속 내리면 안 좋은 곳도 있겠지만 날씨 덥지 않고 차분해지니 비오는 날이 좋다. 어쩜 약속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모처럼 화장을 하고 출근했지만 별 일은 없었다. 기말고사 기간이어서 조용하다. 어제도 오늘도 계속 비가 내린다. 비 내리는 오후 막걸리에 파전 생각하다가 갑자기 시내 미용실로 노선을 바꿨다. 거금을 들여서 공사를 했는데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네.^^ (어쩜 긴머리 마지막 파마일지 모른다. 내년엔 짧게 자를 수도...)

그냥 2020.07.23

졸업 기념

작은 아들 재현이는 늘 아픈 손가락이다. 세 살에 아빠를 잃었으니 늘 짠하고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뭐라도 잘못되면 항상 내가 죄인인것만 같다. 속 썩이지 않고 대학을 입학해서 대견하고 고마웠는데 음악에 빠져서 전공 공부를 소홀히 했다. 결국은 졸업을 하지 못하고 그 사실을 내게 숨겨왔으니... 본인은 얼마나 불안했을까? 내가 그 사실을 알던 그 날 세상이 끝나는 것 만큼 참담했다. 믿었던 아들이 나를 속였다는 것이 너무 충격이었다. 그 이후 아들과 나 사이는 신뢰가 완전히 깨졌다. 일일이 말하기도 싫거니와 돌아보기도 싫은 나날들이다. 컴퓨터활용 수업 3학점을 놓쳐서 졸업을 못한 아들이 졸업할 수 있도록 정말 심한 자책과 잔소리와 훈계와 격려를 해왔다. 드디어 지난 주 마스터 자격증을 취득해서 졸업하게 ..

그냥 2020.07.13

함께한 계절

도서관에 들어온 새 책 정리를 하다가 관심가는 책이 있었다. 화려하고 예쁜 디자인의 많은 책들 속에 제목도 작가도 보이지 않는 얇은 책이었다. 무슨 책이지? 작가는 누구지? 이리저리 살펴보았으나 작가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프로필을 미주알 고주알 너무 길게 늘여 놓은 것보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며 재미있고 짧게 적은 것이 오히려 호감이 간다. 표지에 제목도 없다니? 그림은 또 이게 뭐지? 아하! 사진 작가 신정식, 그래서 책이 특별했나?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은 아버지와 그를 바라보는 아들의 사진일기였다. 표지는 기억을 잃은 아버지가 그린 시계 그림이었고... 책 중간에 빈 공간이 많고 글도 아주 짧게 적혀 있지만 책을 놓고 한참 멍하니 앉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함께한 세월을, 함께..

그냥 2020.07.03

새 책이 왔어요 / 무엇을 읽을까?

도서관에 삼백 여권의 새 책이 들어왔다. 읽고 싶은 책을 구입해서 집에 오면 그 자리서 단숨에 읽던 그때가 그립다. 언제나 읽을 수 있다는 마음 때문인지 책 한 권을 제대로 정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새 책의 인쇄 냄새가 좋고 표지만 봐도 배부르긴 하다. 학생들이나 교사들이 새 책을 신청할 때 꼭 필요해서 신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서점에서의 광고문구를 보거나 제목을 보고 구입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쏟아지는 출간 도서 중에 그래도 선택 되는 책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거다. 이 책들을 쓰느라 작가들은 얼마나 고생 했을 텐데... 책 제목을 쭉 훑어 본다. 요즘은 책도 예뻐야 관심 갖는다. 책 표지가 비슷비슷하다. 나도 제목에 손이 먼저 가는 것부터 골라서 쌓아봤다. 올해 안에 이 책들을 다 읽을 수 ..

그냥 2020.06.30

갇힌, 닫힌 / 새로운 블로그에 글쓰기 시험

정들었던 내 집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면 어떻게 하나? 혹시 내 글들이 날아가 버리면 어떻게 하나? 아직 인테리어는 그대로인데 형식이 자동으로 바뀌었다. 평소 기본 줄 간격 160을 일부러 180으로 넓혀서 적었는데 원래대로 돌아가버렸다. 너무 빡빡해서 보기 어렵다. 어제 2학년 학생들이 처음 등교했고 다음 주 월요일에 1학년 학생들이 등교한다. 어쨌든 학교는 잘 돌아가고 있고 학사일정도 잘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도서관에는 학생들이 두 세명 이외엔 오지 않는다. 그저께까지 도서구입도 끝났고 오늘은 정말 할 일이 없다. 물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시급한 일이 아니라는 거다. 아침부터 혼자 넓은 도서관에 앉아서, 어쩜 갇혀서 창밖을 보고 있다. 초록이 무성한 나무들은 코로나와 상관없이 그자리에 그대로..

그냥 2020.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