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전화위복(轉禍爲福)

몽당연필^^ 2018. 4. 8. 00:19

'새 학기 선생님은 공문처리반' 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학기 초 담임들은 차 한 잔 마실 시간 없이

눈 한 번 맞출 시간 없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학생들도 익혀야 하고 상냥한 모습을 보여야 하고

교재 연구도 해야 하고 학습지도 만들어야 하는데

무슨 조사, 무슨 현황, 수합할 자료가 왜 그리 많은지

거기다가 매일매일 어떤 학생이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고...

근무할 땐 잘 모르지만 일요일 오후쯤엔 머리가 지끈하게 아파온다.

- *  - *  - *       - *  - *  - *

 

일요일 오후인데 내일 출근이 부담스럽지 않다.

학기 초인데 여행까지 다녀왔다.

살다가 이런 일도 있나? 자꾸만 확인해 본다.

어느덧 나이 60이다.

내가 아무리 젊었다고 해도

젊은 사고를 가지고 있다 해도

이제 할머니의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학생들은 나이 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엔 나이 든 사람을 존경이라는 이름으로

대우를 해 주었다. 예전엔...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보편적인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한 시대를 살면서 이렇게 나이 많은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 시대가 있었던가?

 

우리가 배운 가치관과 너무 달라서

혼란과 혼돈의 세계에서 고민했다.

가르치는 것 자체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 세상이 변했으니 내가 그만두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래도, 학생들과 함께 있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는 것 보다야 낫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서교사 채용공고가 뜬 것이다.

 

당연히 1순위는 사서교사 자격증 소지자이다.

2순위는 국어 정교사인데  난 두 종류의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으니 나를 위해 만든 제도라 생각했다.

이제 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나 스스로도 재미가 없었다.

교장 교감으로 진급하지 못한 우리 연령대의 선생님들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명퇴나 전과 하는 경우도 있다.

연금으로 생활할 수 있다면 명퇴를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도 않으니

선뜻 직장을 그만 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의 꿈은 국어교사가 아니라 도서관 사서였다.

책을 좋아했고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서가 되고 싶어서

도서관학을 전공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처음 접하는

컴퓨터 수업이 너무 어렵고 하기 싫어서 사서의 꿈을 접었었다.

그런데 그 때 그 자격증이 지금 이렇게 요긴하게 쓰이다니

무엇이든 공부해 두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아침마다 도서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내가 좋아하는 오래된 책 냄새가 확 나를 반긴다.

아무도 없는 넓은 공간, 책이 가득 찬 도서실이

내 직장이고 내 자리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책을 읽기 위해 대출하기 위해

우루루 몰려드는 학생들은 얼마나 기특하고 예쁜지 모른다.

화 낼 일도 없고, 소리 칠 일도 없고, 잔소리 할 일도 없다.

 

국어 담당 할 때 했던 일인데 한 가지만 한다는 게

너무 미안하고 이래도 월급을 주려나 싶을 정도다.

처음 하는 사서 선생님들은 힘 든다고 하는데

이제껏 해온 업무의 몇 분의 일 정도만 하는 것 같아서

콧노래 나오는 것을 속으로 꾹꾹 참는 중이다.

아니, 아침마다 콧노래 부르면서 출근하고 있다.

국어 교사에 다시 채용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언제나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늘 마음이 무거웠고 시간이 없이 바빴던 날들,

조종례 시간 잔소리 하지 않아도 되는 것 너무 좋다.

수업 시간, 교재 연구, 시험 문제, 학생 상담 등등등...

, 그리고 종소리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일요일 오후도 머리 지끈거리지 않고 마음 가볍다.

나이 60에 내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다니 정말 꿈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