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필이면 그날? (콩레이?)

몽당연필^^ 2018. 10. 20. 22:09

 

하필이면 그날? (콩레이?)

 

 

60년 전 같은 해에 태어나서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는 건 참 소중한 인연이다. 2016106일 함께 제주도 여행을 하기로 하고 2년 전부터 조금씩 돈을 모아왔다. 이른바 회갑 기념 여행ㅎㅎㅎ 의견이 분분하니 중간에 변심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황금연휴라 비행기 좌석을 정확하게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23명의 남학생 여학생이 함께 비행기를 타고 23일 여행을 한다는 것은 늙었지만 설레는 일이다. 시골 초등학교 동창생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인 것이다.

 

직장에 한 번도 연가를 내 본 적 없었지만 (심지어 아들 군대 갈 때도 내지 않았던...) 이번 만큼은 나도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연가까지 내놓고 옷 사고 모자 사고 운동화 사고 반찬까지 다 해놓고 준비 완료된 상태였다. 그런데 사흘 전 일기예보가 태풍이 올 것이라 했다. 설마 지나가겠지. 가서 비행기 안 뜨면 더 좋지 뭐. 그런데 하필이면 5일 저녁부터 6일 아침, 114년 만에 몇 번 오지 않은 가을 태풍 콩레이가 제주도를 강타할 것이라고 했다.

 

6일 아침 940분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5일 저녁까지 확답이 없더니 뭐라구라? 퇴근해서 집에 오니 6일 아침 제주도행 비행기는 결항이란다. 가방까지 다 싸 놓고 기다렸는데 다시 풀 수는 없고 얼굴이라도 한번 봐야 하니 일단 대구 공항에 모이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 비는 더욱더 거세게 내리고 태풍 주의 안전 안내 문자까지 오는 상황이었다. 전날, 비가 더 많이 올 경우 버스 투어로 바뀔 수 있으니 공항이 아닌 어린이 대공원 앞으로 모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기내용 여행 가방을 들고 비 오는데 모자까지 쓰고 웃으면서 현관문을 나서니 아들이 어처구니가 없는지 따라 웃었다. 그런데 아침이 되자 문자가 연신 오기 시작했다. 위험해서 못 가겠다. 가족들이 위험하다고 못 가게 한다. 제주도가 아닌데 구태여 이렇게 폭우 속을 갈 필요가 있느냐? 그러나 약속은 약속이다. 어쨌든 장소에 나가보고 점심이라도 먹고 오든지 버스 투어를 하든지 해야될 것 같았다. 일단 23명 중에 14명이 나왔다. 일본서 온 친구도 나타났다.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은 버스 투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제주도가 중요하냐? 친구와 함께 하는 환갑 여행이 중요하지. 가자!

 

일단, 회장이 하는 대로 믿고 따르기로 하고 45인승 리무진에 14명이 타고 전국 투어를 하기로 했다. 시골에 사는 친구는 며느리가 싸 준 김밥 23인분을 풀어 놓았다. 갑자기 정해진 버스 투어인데 각자 먹을 것을 준비해 와서 소풍 가는 것처럼 오히려 속닥하니 재미가 있었다.일단 전라도로, 그다음 충청도, 그다음 경기도, 그다음 강원도 어차피 23일이니 그냥 가고 싶은 곳으로 가 보자고 했다. 첫째 날 정읍 구절초 축제, 꼭 한번 가 보고 싶었는데 이런 행운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들국화라 불렀던 구절초이다. 거기다가 좋아했던 가수 최백호가 축제에 초대되어 노래를 불렀다. 그냥 따라왔는데 구절초와 최백호를 보다니...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비는 그치고 가을의 정취 물씬 풍기는데 그야말로 낭만에 대하여생각해 본 멋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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