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이마를 짚어주던 손

몽당연필^^ 2014. 8. 12. 21:33

 

이마를 짚어주던 손

                   

 

엄마와 나 사이에 거리가 너무나 멀어져서 엄마 생각을 한 적이 참 오래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따뜻한 품이 그리우면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서도 엄마 품을 배제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안기기보다 누구를 안아줘야 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지럽고 열이 나며 온 몸이 아프다. 건강할 때 누워서 뒹굴면 행복하고 여유롭기도 하지만 머리도 아프고 정신도 혼미하고 아무것도 다 싫어진다. 종일 밥 안 먹고 누워있어도 아무도 들여다볼 사람 없다. 작은아들에게 밥을 삶아달라고 해서 먹으려니 넘어가지 않는다. 많이 아프냐고 물었지만 아니라고 하고 다시 누웠다. 서러움이 울컥 솟구친다.

 

엄마는 내 곁에서 머리를 만져 주셨다. 조금 아파도 많이 아프다고 어리광을 부리고 엄마가 그렇게 내 곁에 있기를 바랐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심한 몸살을 했지만 시골에는 상비약이란 게 없었다. 열이 펄펄 끓는 이마에 물수건을 갈아주시고 밥을 먹지 않으려는 내게 정성으로 끓인 죽을 떠먹여 주던 엄마가 그립다. 모든 일을 다 제쳐두고 엄마는 십리 길 읍내까지 약을 사러 가셨다. 머리는 너무 아픈데 엄마가 약을 사 오려면 한나절이 걸린다. 한숨 자고 나면 올 것이라고 하지만 두 시간이 넘어야 올 엄마를 그때부터 기다리며 마당 앞을 내다보면 아직 감나무 그림자는 그 자리에 있고 누렁이만 나를 우두커니 보고 있었다.

 

엄마는 약을 사 오면서 부드러운 카스테라 빵을 함께 사 오셨다. 엄마 손에 들려있을 약보다 그 맛있는 빵에 눈길이 갔다. 평소 잘 먹어보지 못하던 것을 아프다는 이유로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약이라고 해야 지금 생각하니 아스피린 같은 것이었다. 먹기 어려웠던 것도 아닌데 안 먹으려고 하면 아이구, 잘 먹는다. 이 약 먹고 카스테라 먹으면 금방 낫는다.’ 하면서 그걸 또 먹여주셨다. 엄마가 곁에서 내 이마를 만져 주면 아픈 것이 낫는 것 같아서 엄마가 걱정하는 건 상관 않고 엄살을 부렸던 것 같다. 아무리 아파도 안 아픈 척해야 하는 지금, 내 곁에서 머리 한 번 만져 줄 사람 없는 지금, 아무리 그리워해도 볼 수 없는 엄마, 보고 싶다.

 

-오랜만에 누워서 듣는 매미 소리다. 약 기운 때문인지 꿈결처럼 아스라이 들린다. 열어둔 방문으로 바람 한 줄기 불어온다. 멀리 과수원 모퉁이 연보랏빛 도라지꽃 하늘대며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장독대 옆 봉숭아꽃 채송화꽃 땡볕을 견디느라 힘들 텐데 조금만 견디라고 환하게 웃어준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카스테라 입안에서 머물고 이마를 짚어 주는 거칠고도 따사로운 손, 엄마의 약손이다. 엄마 손을 닮아 못생겼다고 한 내 손을 엄마 손 위에 포개어 본다. 그 손으로 우리들 딸 여섯을 키우신 엄마, 가슴으로 아릿하게 전해져 오는 손끝의 사랑, 스르르 꿈결에서 느낀다. 그렇다. 한참을 잊고 있었던 엄마의 손에서 전해져 오는 그 사랑이 그리워서 이렇게 아픈가 보다. 이마를 짚어 주던 그 손이 그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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