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영화 / 수상한 그녀 (당신은 언제로 돌아가고 싶나요?)

몽당연필^^ 2014. 2. 19. 23:37

 

당신은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마음이 흐린 날이다.

2월 이맘때쯤 되면 언제나 느끼는 기분이다. 며칠 전 영화를 보고 공감한 부분이 있어서 감상문을 써야지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의 감동이 생생하지 않고 옅어져 버렸다.

 

보름날, 종일 분주하게 보냈더니 살짝 몸살 끼가 느껴졌다. 잠시 숨을 돌리려고 누웠더니 만나야 할 친구가 생각났다. 썩은 사과의 추억을 선물해 준 친구다. 양로원에 근무하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친구라 좀처럼 만날 수가 없다. 전화를 하니 마침 오늘 시내에 나가야 되고 시간이 있다고 한다. 근데 다짜고짜 영화를 보자고 한다.

 

피곤하지만 오늘 아니면 일 년 후에나 만날지 아님 더 이후에 만날지 모를 일이다. 모처럼 만나는 귀한 시간을 영화는 무슨? 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자고 했다. 평소 드라마나 영화를 잘 보지 않는 터라 무슨 영화냐고 물었다. ‘수상한 그녀’- 제목도 참 와 닿지 않는다. 영화관 앞에서 손칼국시 묵고(친구는 나만 보면 완전 사투리가 나온단다. 하고 싶단다) 커피 마시며 푹신한 의자에 편안한 자세로 영화 볼 준비- 행복하다고 했더니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란다.

 

-주름, 검버섯, 거북이, 탑골공원, 느리다, 냄새난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노인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지요? 노인문제 전문 교수의 질문에 대학생들이 대답한 것이다. 노인 고령화시대에 몇 살부터 노인이라고 볼 것인가? 이런 답에 대해 화나고 나는 아직 아니라고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울컥 서러움이 든다면 이미 노인 대열에 끼어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유년과 청년과 장년과 노년을 거쳐 가게 마련이다. 그 시절의 특징과 그 시절의 특권이 있기 마련이다. 노인의 이런 특징은 당연하고 어쩜 존중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어찌 이십대 젊은이와 비교를 할 수가 있을까? 우리에게도 빛나는 이십대가 있었고 아이들 키우느라 모든 걸 포기한 삼십대가 있었다.

 

만약 지금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가? 대부분 이십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그 시절이 가장 아름답고 꿈과 사랑이 넘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가장 빛나던 시절, 가장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기에 여러 가지 제약으로, 특히 가난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면 더더욱 그 시절로 돌아가서 꿈을 이루고 싶을 것이다. 마냥 자유롭고 풋풋한 요즘의 이십대가 부러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목에 울컥 그리움, 서러움, 아쉬움 다 걸린다.

 

 

 

 

        

 

 

 

-칠순 할머니 오말순(나문희)은 입에 욕을 달고 다니며 남 타박하는 게 몸에 밴 사람이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가난을 이기며 억척같이 살아오며 하나뿐인 아들 현철(성동일)을 국립대학교 교수(노인문제 전문가)로 키웠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목숨을 붙들라고 '붙들이'란 이름으로 키운 자식이다. 세상의 어머니들처럼 남들한테 아들 자랑하는 게 그녀의 유일한 낙이지만 입성이나 먹성이나 국립대학 교수의 어머니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말순네 가게에 자주 오는 이뿐이(이름 모르겠음) 여사는 항상 곱고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와서 그런 말순을 무시한다. 예전 주인집 딸일 때부터 그를 사랑해 온 박씨아저씨(박인환)만이 그를 아직도 애처롭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끝까지 지켜주려 한다.

 

어느 날 며느리 애자(황정민)가 시어머니 말순의 잔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아 화병으로 쓰러지자 가족은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자고 한다. 이 이야기를 몰래 엿듣고 충격을 받은 오말순은 집을 나가 밤길을 방황하다 청춘 사진관에 들어간다. 오드리 햅번을 종아했던 오두리(오말순)는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영정사진을 찍게 된다. 사진관에서 나온 말순은 버스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주름으로 가득했던 쭈글쭈글한 얼굴이 탱탱한 스무살의 몸(심은경)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스무살 시절로 돌아가서 꿈을 이루는데-

 

대충 이런 이야기인데 뻔한 이야기이고 말도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재미있었다. 구운몽과 같은, 하룻밤 꿈과도 같은... 그러나 꿈이 아니고 실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보통 사람들은 언제로 가장 돌아가고 싶을까? 내가 벌써 오말순의 나이로 치닫고 있다는 것 때문일까? 해보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아서 억울해서일까? 희생한 것이 너무 많아서 공감을 느낀 것일까?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서일까? 영화 중간중간에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느라 주책을 떨었다.

 

아무리 해도 돌아갈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이리라. 오랜만에 눈물을 흘릴 수 있어서 카타르시스가 되기도 했고 '''가족' '늙음' 에 대해서 생각해 본 영화였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 쌓인 이야기하고, 아니 듣고, 지하철 막차를 타고 오면서 한참을 꿈꾸고 있었다.

-"붙들이를 아십니까?"(이 부분에서 눈물이...)

"어무이! 이제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시며 사세요."

"아니다. 난 다시 태어나도 지금과 똑같이 살란다."

"그래야 니가 내 아들이고 내가 니 애미니까 말이야."

"좋은 꿈꿨네 ... 참말로 재미났고 좋은 꿈이었구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