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그냥, 웃지요

몽당연필^^ 2014. 5. 3. 17:11

그냥, 웃지요                

         

 

 

아부지예!

...? 으응......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거름지고 논과 반대 방향으로 가시던 아버지를 부르니, 무심결에 활짝 웃는 얼굴로 대답을 하시다가 라는 것을 알고는 금방 표정이 굳어버리신다. 수심에 찬 모습이나 깊은 생각을 하는 당신의 모습을 남에게 들킨 것이 당황스러웠으나 남이 아닌 나였음을 알고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가셨을 것이다.

 

혼자 있으면 웃을 일이 없다. 집에 있을 땐 하루종일 웃지 않을뿐더러 무표정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만나면 활짝 웃는 얼굴로 대하고 기분 좋은 모습으로 이야기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웃는 모습이 이쁘다고, 웃는 인상이 좋아 보인다고, 그래서 편하다고 한다. 어느 땐가 부터 잘 웃는다는 말을 듣고 있다. 그런 것 같다. 지금 굳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가도 누군가 부르면 얼른 웃는 표정을 지으며 행복한 표정을 보일 것이다. 나도 아버지처럼 그 누군가가 아들이라면 금방 무표정한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나의 본 모습을 그대로 보이는 것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내 슬픔을 남에게 옮기는 것 같아 죄스럽다. 슬픔은 내뱉지 말고 삼켜야 한다는 내 지론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야 나를 알고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걱정이나 슬픔을 전염시킬 필요는 없다. 늘 웃고 있으니 늘 행복한 일만 있느냐고? 늘 웃고 있으니 화나는 일이 없느냐고? 그렇게 묻는다면 그냥 웃는다. 웃다 보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슬퍼할 일, 화낼 일이 왜 없을까만 내뱉기보다 그냥 삼킨다. 그러나 슬픔을 딛고 밝게 살아간다는 말은 참 듣기 싫다.

 

고향의 덕곡댁이는 늘 웃었다. 어린 내 눈에도 그는 늘 웃을 만큼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흔이 되기 전에 남편을 잃고 자식 6남매와 별난 시어머니를 모시고 땟거리도 없이 가난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스무 살까지 키운 아들마저 잃었다. 하나도 우스울 일이 없는데 웃으면서 말하는 그가 좀 이상하게 보였고 못마땅했다. 남편을 잃고 자식까지 잃었는데 뭐가 저리 좋아서 웃고 있단 말인가? 복숭아 봉지를 싸다가 잠시 쉴 참에 저만치서 담배 한 대 피우는 그의 모습은 지쳐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이 마주치면 또 웃었다. '허허'하고 소리 내어 웃는 허허로운 웃음이었다.

 

아주 오래된 지난 일인데 요즘 문득 그 덕곡댁의 웃는 모습이 떠오른다. 별로 우습지도 않는 일인데 언제나 '허허' 웃으면서 말하던 그 덕곡댁이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슬픔이 차오르고 차올라서 주위에 넘쳐흐를까 봐 그렇게 웃음으로 누르고 눌렀을 것이다. 상대방과 말을 할 때 필요 이상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모든 것을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것은, 배려라는 이름으로 상대방과 부딪치지 않으려는 소심함이나 나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자신 없는 행동은 아닌가?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슬픔을 전염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이 가장 크다. 나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걱정하거나 슬퍼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어린 자식과 사위를 잃은 아부지도 남편과 아들을 잃은 덕곡댁이도 마음 한구석엔 늘 슬픔이 가득 고여 있었을 것이다. 혼자 있을 땐 그 슬픔과 함께 온 밤을 밝히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침이 오면 사람들을 만나고 밥을 먹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이 행복한 듯이 웃고 있었을 것이다. 내 슬픔을 남에게 전염시키지 말자. 슬픔은 뱉으면 뱉을수록 차오르는 법이니 거르고 걸러서 맑은 슬픔으로 가라앉을 때까지 혼자서 그렇게 삭이는 것이다. 오늘, 웃지 않고 종일 혼자 있으니 아버지의 모습이, 덕곡댁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