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화 할 수 없다면 가짜다!
읽고 싶은 책이 많지만 그 많은 책을 세세히 다 읽을 수가 없다. 얌체같이 그 두꺼운 책을 남이 읽고 전해 주는 글을 쉽게 읽는다. 밀린 신문을 보다가 추상적인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 내게 한 방 강한 펀치를 날리는 유쾌한 글이 있어서 인용해 본다.
가장 인간적이기도 하다가 가장 이해할 수 없기도 한 김정운 교수의 글을 읽었다. ‘구체화할 수 없다면 가짜다!’ 파울 클레와 에곤 실레와 피카소를 합친 그의 그림을 보고 웃었다. 장난처럼 그린 것 같지만 역시 그만의 명쾌한 표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은 아주 막연한 거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돈은 재앙이다.
사회적 지위도 마찬가지이다. 그 지위로 인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분명치 않으면 다른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는 권력만 탐하게 된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것도 아주 구체적이진 않다. 특유의 재치로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글에 공감이 확 갔다.
행복감이란 생존과 종족 보존을 위한 수단일 따름이며 행복은 아주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다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거 먹는데 있다.’는 거다. 행복 하려면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구체적으로 기분이 좋아야 한다. 그렇다.
‘자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좀 더 구체적인 행복의 조건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 먹고 하얀 시트커버의 침대에서 잘 자는 것(?)이라고 한다. 행복은 아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이란 이야기다. 고개가 크게 끄덕여진다.
난무하는 자기계발서나 교양서적의 추상적 언어로 아무리 자기최면을 걸어도 자신의 구체적 생활 언어로 번역할 수 없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한다. 추상적인 단어로 얼버무리는 내게 전하는 확실한 메시지이다.
행복뿐만이 아니다. 삶을 지탱하는 모든 가치와 이념이 그렇다. 추상적 언어가 현실에서 제대로 기능하려면 구체적 어휘로 번역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되었다 할지라도, 내 삶에서 구체화 될 수 없다면 그건 순 가짜다. 거짓말이라는 이야기다.
혼자서 커피 마시며 고상하게 책 읽는 일도 행복일 수 있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뒹굴 뒹굴 빈둥대며 자유를 만끽하는 것도,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봉사활동 하는 것도 행복일 수 있다. 땀을 흘리며 등산을 하거나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행복일 수 있다. 그러나 참으로 그것이 가장 행복한 때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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