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설날 / 그때를 아십니까?

몽당연필^^ 2014. 1. 29. 23:53

 

 

 

 

설 장을 보면서 평소에 잘 먹지 않는 강정을 샀다. 설에 빠질 수 없는 것이 강정과 두부와 가래떡이다. 시골 장에 가면 튀밥 튀기는 장면을 볼 수 있을 텐데 튀밥은 어디서 튀기는지 보이지 않고 튀밥으로 만든 강정은 떡집에도 방앗간에도 슈퍼에도 진열을 해 두었다. 동네 어귀에서 하는 소리가 시작되면 설이 다가왔다는 신호였다. 동네 조무래기들 다 모여서 하는 소리 한 번 낼 때마다 귀를 막으며 왕창 부풀어 있을 튀밥을 기대하고 곁에서 한 줌씩 얻어먹는 재미로 해 지는 줄 몰랐다. 그때를 생각하며 쌀 강정과 보리쌀 강정을 사왔지만 녀석들은 아예 맛도 보지 않는다. 강정을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 드는지 만들어 보지 않았으면 잘 모를 것이다.

 

그때는 모든 것을 집에서 했었다. 쌀을 쪄서 말린 다음 튀밥(박상이라고 했다)을 만드는 과정까지 집에서 하는 경우도 있었다. 솥뚜껑에 모래를 달구어 거기에 쌀을 조금씩 넣으면 쌀이 흰 꽃처럼 부풀어서 튀밥이 된다. 그것을 얼그미(체보다 성긴 구멍인데 용어도 잊혀져 간다)로 치면 쌀은 튀밥으로 남고 모래만 빠진다. 그 튀밥을 조청으로 버무려야 하는데 조청 만드는 과정 역시 몇 시간이나 소요되는 복잡한 일이다. 튀밥을 조청으로 버무려서 뜨거운 방바닥에 펴서 말린 다음 어느 정도 굳어지면 칼로 써는데 이때가 중요하다. 너무 마르면 부서지고 덜 마르면 모양이 나지 않고 축축 처진다. 강정을 만들려면 조청이 있어야 하고 조청을 만드는 과정 또한 복잡하고 일이 많다. 조청을 녹이는 정도가 알맞아야 하고 강정을 만들 때마다 불 조절을 잘 해야 되므로 화롯불이나 곤로 불을 사용하기도 했었다. 방바닥 한 가득 강정을 펼쳐 놓으면 잠 잘 때가 없어서 모처럼 남의 집에서 밤 늦도록 놀다가 오기도 했다.

 

그 것 뿐이랴. 시골에서는 설이 다가오면 설맞이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일단 대청소를 해야 하는데 평소엔 하지 않던 부엌(정지간) 천장과 마루 밑 청소를 해야 한다. 그을음과 거미줄을 털어내고 마루 밑에 들어가서 묵은 먼지를 쓸어내야 한다. 그리고 소 마굿간의 거름을 쳐내고 깨끗이 치워야 한다. 이것은 물론 아버지의 몫이지만 그 다음 그을음 덮인 부엌 정리나 먼지 닦는 일은 여자들의 몫, 아니 나의 몫이었다. , 생각난다. 부엌의 그을음을 치우고 있던 섣달 그믐 날, 내게 편지를 몇 번 주던 이라크에 있던 동창생, 그 친구의 아버지가 불시에 방문하셨다. 며느리감으로 생각하고 선을 보러 오셨던 것 같다. 내가 봐도 놀랐을 것 같다. 작달만한 키에 그을음을 덮어쓰고 세수도 안 하고 정지간에 앉아 전 부친다고 불을 때고 있었던가? 지금도 밖에 나가지 않으면 세수를 잘 안한다. 세수하고 옷 차려입으면 딴 사람이 될 수도 있는데... 아무튼 떡 줄 사람 생각도 않고 있는데 뭔 김칫국... 이후 그 동창생은 키 크고 인물 좋은 또 다른 동창생과 결혼을 했다고 들었다.

 

설날에 해야 할 일은 또 있다. 두부 만드는 일과 가래떡 빼서 썰어야 하는 일이었다. 벌레먹은 콩을 가려내고 좋은 콩을 불려서 리어카에 싣고 맷돌 있는 윗마을로 가면 동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집에 있는 손 맷돌이 아닌 두 사람이 밀어서 사용할 수 있는 큰 맷돌로 하면 시간도 단축되고 힘도 덜 든다. 후에는 그 집에서 돈을 받고 갈아주었다.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콩 갈아온 것을 부어서 젓다가, 이 때 넘치지 않도록 잘 저어주어야 한다. 뜨거운 콩물을 다른 곳에 옮겨놓고 이제 그것을 비지와 두부로 나누기 위해 자루에 넣고 짜야 된다. 끓인 콩물을 자루에 가두어서 짜야 하니 손이 뜨거워서 여간 힘 드는 일이 아니었다. 대나무 발을 엮어서 거기에 자루를 놓고 꽉 짜는 일이 힘이 드니 남자들이 도와준다. 아마 그 때 아버지의 손에 묻은 씻기지 않던 묵은 때가 다 빠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자루 밖으로 나간 것은 두부가 될 것이고 자루에 남은 것은 비지가 된다.

 

뿌연 우유같은 콩물에다 마지막에 간수를 넣으면 신기하게도 몽글몽글 계란찜 같은 순두부로 엉긴다. 그 간수라는 것이 정말 요술지팡이 같았다. 몽글몽글 엉기는 그 순두부가 얼마나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운지 꽉 움켜쥐고 싶도록 사랑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사실 그 맛은 생각보다 맛있지 않았다. 일단 간수물이 들어갔기 때문에 쓴 맛이 나고 계란찜 맛 같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씁스레하고 구수한 순두부의 맛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두부에 신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영양보충이라도 하듯이 옆집 아지매도 부르고 뒷집 할매도 부르고 그렇게 구수한 정 한 대접씩 나눠 먹었었다. 여기까지 하면 힘든 일은 끝이었다. 그 엉긴 순두부를 나무판에다 베를 깔고 부어서 돌로 눌러뒀다가 형태가 잡히면 썰어서 독에 넣고 물을 부어 보관한다. 당연히 그날 저녁은 귀한 두부를 실컷 먹을 수 있는 두부 잔치가 벌어졌었다. , 또 있다. 잊을 뻔 한 중요한 일이다. 두부 만든 다음 간수 물에 모아 둔 빨래를 하고 그 가마솥에 식구들이 차례로 목욕을 하는 일이다. 이런 말을 하다 보니 완전 구시대 산골 촌녀 같지만 그래도 읍내가 가까운 백호가 넘는 부촌에 살았었다.

 

그 다음, 설날에 빠질 수 없는 가래떡을 해야 한다. 보통 한 말 이상씩의 쌀을 하루 정도 물에 불려서 소쿠리에 건진 뒤 물기를 빼서 방앗간으로 간다. 설날이 다가오면 가장 바쁜 곳이 동네 방앗간이다. 문 밖까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기에 아침에 가면 저녁때까지 종일 기다리기도 한다. 쌀을 가루로 만들어서 익반죽을 해서 한번은 그냥 쪄서 빼고 그것을 다시 기계에 넣으면 긴 가래떡의 형태로 술술 뽑아져 나온다. 그때 물에 담군 가래떡을 적당한 곳에서 끊어서 그릇에 담는다. 우리들의 눈에 그것이 얼마나 신나고도 신기하든지 거기 붙어서서 좀 얻어먹으려고 하면 아이들은 방앗간 안이 위험하다고 나가 있으라고 했다. 금방 뽑은 따끈따끈한 가래떡을 조청에 찍어서 먹으면... , 그런 귀한 먹거리가 설날 아니고야 어찌 맛볼 수 있었을까? 그 긴 가래떡을 돗자리를 펴서 다시 옮겨 담고 젖은 보자기로 덮어두면 썰기 적당한 정도로 어느 정도 굳게 된다.

 

한 말이 넘는 그 가래떡을 칼로 썰어야 하는데 식구들이 다 거들어야 하며 그 시간이 오순도순 즐겁기도 했지만 식구가 작은 집에서 많은 떡을 썰다 보면 손에 물집이 생기기도 한다. 적당하게 굳었을 때 썰어야 하므로 밤중이든 새벽이든 일어나서 썰어야 한다. 처음엔 칼로 썰었지만 나중엔 작두 모양의 떡 써는 기계가 나와서 편리해지기도 했다. 우리 지방에서는 양반은 반듯하게 썰어야 한다며 떡을 어슷하게 썰지 말라고 했다. 사실 어슷하게 썰어야 큼직하고 맛있어 보이는데 아무튼 그렇게 하라고 했다. 설날 아침이면 집집마다 떡국이 있을 텐데도 새벽에 떡국을 끓여서 어른 계신 집에 갖다드리곤 했다. 그렇게 해서 모인 떡국이 많아서 종일 불어터진 떡국을 먹기도 했었다. 떡국에 얹는 고명에 따라 집집마다의 떡국 맛이 다르기도 했다.

 

강정도 두부도 떡국도 언제나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설날 아니라도 언제나 새 옷을 사서 입을 수 있고 설날이라고 특별한 것이 없으니 아이들도 어른들도 설날을 기다리지 않는다. 보지 못했던 친척들을 볼 수 있어서 설날을 기다렸지만 보지 않던 친척들을 만나게 되는 불편함이 싫어서 설날을 기다리지 않는다. 내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싫고 내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 밥 한 끼 해 주는 것도 귀찮고 더군다나 돌아가신 조상님들께 제사 지내는 것은 더 더욱 쓸데없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니 설날이 스트레스 쌓일 수밖에 없는 날이 되었다. 등산이니 헬스니 하루에 몇 시간씩 걷고 뛰고 하는 체력이지만 설거지 몇 시간만 하면 쓰러지는 체력을 가지고 있는 현대인들이다. 하루 설거지 놀이를 하면 어떨까? 기분도 좋고 살도 빠질텐데...

 

마트에 가면 다 있는 재료들을 사서 차려내는 것도 힘든 세상에 가족 모이는 설날이란 반갑지 않은 날일 수도 있다. 식구들 모두 목욕재계하고 새 운동화 사서 시렁에 얹어놓고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때, 왜 굳이 설날 아침에 신어야만 했는지... 그렇게 모든 것을 경건하게 새로 시작하던 설날, 일년 중에서 가장 기다려지던 날이 설날이었다는 것, 지금 아이들은 모를 것이다. 내일 아침 일찍 제사 음식 하러 큰집에 가야 한다. 며느리로서 당연히 열심히 협력해야 할 일이다. 우리 집 청소 하고도 힘 든다고 퍼질러 앉았다가 조금 전에 끝냈는데 예전엔 어떻게 다 했을까. 며느리가 없는 친정집엔 부모님과 나, 셋이서 그 많은 일을 다 해야 했다. 나는 물론 조금 거들어 주는 입장이었지만 놀지는 않았다. 설날 하루 조상을 모시기 위해, 찾아오는 친척들과 음식을 나눠먹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준비를 했던 것이다. 밤 열두시까지 해도 끝이 없던 명절 일이다. 제사를 모시는 큰집 형님은 우리보다 훨씬 힘 든다는 걸 생각하면 스트레스 쌓일 일도 없다. 설날이다. 좀 싫어도 '싫은데요' 하지말고 서로 참고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