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소매물도는 말이 없었다 / 안개비에 가린 소매물도 기행

몽당연필^^ 2014. 1. 19. 17:06

 

 

        

 

         

 

     (아구! 어쩌지? 펌 사진인데 출처를 모르겠습니당^^)

 

 

소매물도는 말이 없었다

                         -안개비에 가린 소매물도 -

 

 

그해 여름, 방학식을 마치고 곧바로 23일의 산업체 현장 체험 직무연수를 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남부지방에 장맛비가 내린다는 예보대로 날씨는 흐려 있었다. 울산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인 716, 많은 사람들로부터 듣기만 하던 소매물도 여행이 나에게 현실로 다가왔다. 노출의 계절인 무더운 여름을 좋아하지 않지만 23일의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여름 여행, 특히 바다가 있는 섬 여행은 작열하는 태양과 푸른 바다, 부서지는 파도 위를 가르는 요트가 떠오르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호우주의보까지 내린 상황이다. 소매물도에 가지 못하나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다행히 오후에 일정이 잡혔다.

 

오전에 현대중공업과 미포조선소를 방문하고 드디어 거제도를 향해 출발했다. 거대한 공장들의 삭막한 숲을 지나 창밖엔 비가 내리고 초록의 산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아름다운 풍경인지 이제야 여행을 떠나왔다는 실감이 났다. 멀리 산허리에 감긴 구름은 그동안 팍팍하고 바빴던 현실을 잊게 해 주고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해 주었다.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 무거운 뗏목을 버리지 못하고 늘 어깨에 메고 있다.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통지표를 구겨버린 그 아이에 대한 생각, 조금 전까지도 들고 있었던 학교 일들, 일상 일들을 놓아버리고 여백이 아름다운 동양화를 감상하듯 천천히 나는 자연에 동화되어 갔다. 버리면 아름다워진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왜 터득하지 못하는 것일까? 한참을 잊고 살았던 초록의 산, 그 산은 그렇게 거기 있었다.

 

통영휴게소에서 해물탕으로 점심을 먹고 1350분에 출발하여 1415분 거제도에 도착했다. 연일 비가 온 탓인지 수평선 아득한 낭만적인 푸른 바다는 보이지 않고 황토색 누런 바다와 거대한 크레인이 하늘을 찌르는 다소 위압적인 모습의 바다가 펼쳐졌다. 인간이 만든 거대한 조선소의 모습을 보며 인간의 위대함과 나의 미약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대우조선소를 잠시 방문하고 에스라인이 유독 많은 길을 약 한 시간 달려서 어지러움을 느낄 때쯤 드디어 거제도 저구항에 도착했다. 비가 계속해서 내려서 매물도에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유람선을 타고 뱃길 관광을 하기로 하였다. 오후 네 시, 우리 일행은 조금은 지친 상태에서 유람선 위에 곧바로 올랐다.

 

배에 오르자 특허용(?) 목소리의 안내원 아저씨는 유창한 언변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셨다. 15천만 원짜리 에어컨이 장착되어 있으므로 자유롭게 이용하면 된다고 하시며 안전벨트를 착용하라고 해서 찾았으나 배에는 안전 벨트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모두 웃었다. 배가 가는 방향으로 오른쪽은 통영이고 왼쪽은 거제도이기 때문에 왼쪽의 섬들만 설명을 한다고 해서 우리는 모두 왼쪽을 보면서 또 한 번 웃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구분을 할 수 없는 망망대해에 비는 내리고 멀리 갈매기가 몇 마리씩 배를 따라 날아들었다. 20여 분이 지났을 때 갈매기를 향해 모이를 주면 떼를 지어 모여든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갑판으로 나가서 새우깡을 던지며 갈매기들과 놀았다. 중심을 잡지 못해 조금은 어지러웠지만 짭조롬한 바다 내음 물씬 맡으며 갈매기 떼 속에서 아이들처럼 소리 지르고 잠시 빌딩 숲에서의 일탈을 온몸으로 느꼈다.

 

가까이서 보는 것보다 멀리서 보면 더 아름다운 섬, 거제도의 섬이 바로 그런 섬이라고 했다. 그것은 바로 조화롭다는 것이 아닐까? 혼자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주위의 자연들과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다. 그림에서 구도를 중요시하듯이 어디쯤에 어떤 모습으로 있을 때가 아름다운지 그것은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 않았을 때의 신비로움, 직접 다가갈 수 없는 비안개에 가린 거제의 섬을 우리는 그저 스쳐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직접 발 딛지 못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다가가서 실망하기 전에 오늘은 아름다운 이미지만 가슴에 남긴다. 그 섬은 거기 있을 것이고 언젠가 다시 갈 수 있을 것이다. 동경은 동경으로 남아야 아름다운 것이다.

 

매물도는 통영시 한산읍 매죽리에 속해 있다. 소매물도, 대매물도, 등대도(일명 글씽이섬) 세 섬을 통틀어 매물도라 한다. 면적이 2.4킬로미터, 해안선 길이가 5,5킬로미터이며 북쪽에는 어유도, 남서쪽에 소매물도가 있다. 크고 작은 두 매물섬’, 조선초기의 한자 지명은 매매도’, 후기에는 매미도매물도로 표기했다. 1810년경 이 섬에 오면 굶어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여 고성에서 이주민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고 섬의 모양이 군마의 형상을 닮아 마미도라 불렀는데 경상도에서 로 변하는 음운변화현상으로 매미도가 되었다가 매물도로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 ‘’, ‘등은 물을 의미하던 옛말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육지로부터 아주 먼 바다에 위치해 있는 섬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또한 옛날에 매물(메밀)을 많이 경작했던 섬이라 하여 매물섬이라 칭하게 되었다는 지명유래설도 있다. 이런 지명유래를 듣기 전까지 나는 계속 육지가 바다에 잠기는 매몰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제야 의문이 조금 풀렸다.

 

배를 탄 지 30분쯤 지나서 제일 먼저 만난 섬은 가오리도(가오도, 가왕도)이다. 섬의 모양이 가오리와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세 가족의 주민인 여섯 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계시며 전국 최상품인 자연산 돌미역을 채취해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일출과 일몰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전국에 세 군데가 있는데 그 중의 한 곳이 바로 이 곳이라고 한다. 섬에 들어가서 직접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거북의 모양을 한 거북섬에서는 해마다 11일에 제를 올리며 옆 마을에는 빨간색 지붕 아래 41가구의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고 한다. 뭍에 사는 우리가 바다를 그리워하듯이 저들은 바다가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오히려 뭍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떠날 수 없는 곳, 조상 대대로 뼈를 묻고 있는 고향, 평생 나갈 수 없는 이곳에서 그들은 오히려 육지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들고 갈 수 있을 만큼의 생각을 들고

거친 뱃길에

울렁증 노랗다 싶을 때 도착하는 곳

생소함 단박에 알아볼 수 있지

...... ......

 

그곳에 가 보면 알 일이야

끌고 간 상처가 쌓이고 쌓여

징한 그리움

뭍을 향해 나란히 정돈되어 있음을

(최수지, ‘소매물도중에서)

 

매일 바라보는 망망대해,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이고 풍광이 아름다운 곳. 우리는 그 곳을 파라다이스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곳에서 삶의 터전을 가꾸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움과 동경은 실망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룰 수 없는 것들은 애틋하고 다가가지 못하면 그리운 것이다. 우리가 갖는 사랑과 동경, 그리고 그리움과 같은 것은 멀리 있을수록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수평선 저 멀리 바위 다섯 개가 보이는데 손가락을 펴니 맞아떨어진다. 그것을 오손 바위라고 한다. 그 곳은 시야가 흐릴 때는 잘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파도가 심해서 배가 부딪칠 수 있으므로 바윗돌을 잘라 등대를 세웠다고 하며 등여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비가 와서 멀리서 어렴풋이 보이기만 하는 섬들을 지나 바로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암절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투구바위, 왕관바위가 보였으며 닭바위, 강아지바위, 아이굴, 전설이 숨어있는 남매섬 등을 볼 수 있었다. 가파른 절벽 꼭대기에 소나무는 수령이 130년이 넘었다고 한다. 바닷바람에 얼마나 인고의 세월을 보냈으면 학의 모양으로 변했을까?

 

배를 탄 지 꼭 한 시간이 되어서 지나게 된 곳은 사방굴(글씽이굴, 용굴)이다. 글씽이굴은 진시황의 명령으로 서불일행이 불로초를 구하러 왔다가 바위에 글을 써놓고 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어느 곳 하나 사연 없는 곳이 없다. 평소에 이 곳은 파도가 너무 심해서 들어가지 못하지만 오늘 특별히 모험을 해본다고 하며 안내원이 보물섬 선장이라도 된 듯이 모험을 시작했다. 바로  그때 옆에서 엄청난 파도가 몰아닥쳐 열어둔 창문으로 뛰어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 무섭고 멀미가 나는데 바닷물을 흠뻑 맞았으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정말 배가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눈물을 글썽이며 글씽이 굴을 빠져 나온 것 같다.

 

바닷물에 취해서일까? 나의 소매물도 기행의 필름은 여기서 끊겼다.

-'하얀 등대가 아름다운 그림 같은 안개 섬,

소년과 소녀는 첫사랑을 나눈다. 그 섬은 소매물도 등대섬'-

아무리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려고 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너무나 정확한 높낮이로 반복되는 안내원의 목소리가 멀미를 부추겼다. 좀 조용하면 안정을 되찾을 수도 있으련만 친절하신 안내원의 설명은 끝이 없었다. 나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용기를 내어 안내원에게 검정 비닐봉지를 얻어서 갑판으로 나갔다. 나 혼자만 멀미를 하는 줄 알고 억지로 참았는데 벌써 갑판 위에는 여남은 명이나 노랗게 질린 얼굴로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이미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그야말로 무아지경의 상태이다. 아직 한 시간을 어떻게 견딜까?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있으면 멀미를 덜 한다고 하던가? 그래, 다음에는 하얀 등대가 아름다운 그림 같은 안개 섬에서 파랑주의보에 나오는 소년과 소녀의 첫사랑을 재현해 보리라.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하얀 등대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 한 장 남기리라. 숲에 들어가면 숲이 보이지 않듯이 섬에 들어가면 섬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 나는 섬 밖에서 섬을 만나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것이 섬’-(정현종, )이다. 그 섬의 이름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저마다의 섬 하나 가슴에 떠 있을 것이다.

 

배에서 내리려는 순간 그렇게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가 보였고 소매물도 여행 기념으로 마른오징어를 샀다. 매물도에서의 추억은 남기지 못했지만 매물도 유람선의 오징어가 너무 맛있어서 꼭 한 번 더 소매물도에 가 볼 것이다. 어느 날 삶이 팍팍할 때 마른오징어를 씹으며 고립된그 섬에 고립되어 볼 것이다. 문득, 섬의 어원이 고립된이 아니라  ‘서다’(stand, stop)의 명사형이 아닐까?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앉아서 정착하지 못하고 바다 바라보며 서서 그리운 이 기다리는 섬, 떠돌다, 떠돌다 이 곳에 멈추어 선 채 우뚝 섬이 되어버린...

-그 섬은 거기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소매물도는 언제나 그 자리서 말이 없는데 나는 오늘도 이렇게 긴 수식어로 뗏목을 엮고 있다.

 

 

 

 

*얼마 전 어느 블로그에서 소매물도 기행문을 보았다.

섬 깊숙이 자세히 관찰하고 아름답게 쓴 글이라 몇 번을 읽어보면서

몇 년 전 나도 그 곳에 간 적이 있는데 기억도 글도 남은 것이 없어서 아쉬웠다.

블로그를 만들기 전의 글은 어디 있는 줄도 잘 모르겠고 일부는 날려 보냈고...

더 잘 써서 정리해서 발표를 해야지 했는데 감정이나 어휘 선택도 많이 달라졌고...

우연히 천여 개나 쌓인 메일함을 정리하다 보니 보낸 메일함에 이 글이 있었다.

연수 과제로 제출했나 보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그래도 반가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