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한글날 / 바디워시와 바디에센스

몽당연필^^ 2013. 10. 9. 13:35

한글날 / 바디워시와 바디에센스

 

이상하다. 찬 바람이 불어서 그런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왜 이렇게 팔 다리가 건조하고 각질이 일어나지? 피부가 까무잡잡해도 매끄러운 편인데 왜 이렇게 거칠어졌지? 친구가 준 바디로션을 아침 저녁으로 열심히 바르고 있는데 요 며칠 계속 손과 팔이 눈에 띄게 거칠어졌다. 평소 피부 관리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터라 맛사지 한번 안 하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급기야 팔 접히는 부분에 붉은 반점이 돋아나면서 가렵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다. 피부병인가? 원래 몸에 무엇을 잘 바르지 않는데 아침 저녁으로 발라서 그런가? 친구가 준 바디로션이 혹시 유통기간이 지났나? 화장품 통에 적힌 글자는 안경을 써도 잘 보이지 않으므로 작은아들에게 유통기간을 좀 확인해 보라고 했다.

 

아고고! 이게 웬일이야?

'엄마, 이건 바디로션이 아니라 바디워시 인데...'

머라카노?!

'바스'라는 글자는 봤지만 '워시'라는 글자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다. 바스 제품으로 바디에 바르는 내츄럴 리얼 모이스춰 에센스 워시이다, 내가 어쩌다가... , 나도 여기까지... 한 열흘간을 몸에 샴푸를 바르고 다녔단 말인가? 웃을 일이 아니다. 부끄럽고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어쩐지 잘 스며들지를 않더라니...

 

 

 

불현듯 어머니가 생각났다. 무엇이든지 똑바로 잘 구별 못하고 정확하게 일 처리를 못하던 늙으신 어머니께 짜증을 내면 어머니는 서러운 말투로 니도 나이 들어 봐라하시던... 시력이 급격히 떨어졌는데도 안경 쓰는 것이 불편해서 안경을 잘 쓰지 않으니 사물이 맑고 정확하게 보이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요즘 들어 이런 실수가 잦다. 얼마 전 친구와 목욕을 가면서 친구가 준 바디워시- 읽어볼 생각도 않고 화장대 앞에 놓아두고 건조한 팔 다리에 열심히 발랐으니... 친구가 분명히 바디로션인데 너 하나 써라고 한 것 같은데 아니라고 한다.

 

이 일이 아니라도 화장품을 사용할 때마다 불만이 많았다. 수입품이야 당연하다 치고 국산 화장품 이름은 왜 온통 영어란 말인가. 통에는 깨알보다 더 작은 글씨로 그것도 영어로 한가득 쓰여 있다. 누가 그것을 읽을 것이며 설령 읽는다 해도 누가 그것을 우리말로 해석할 수 있을지 정말 궁금하고 여간 불만스러운 게 아니다. 그렇게 외국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일까? 외국인과 우리나라 사람 중 누가 그 화장품을 더 많이 사용할까? 영어를 갖다 붙이면 고급스러워 보이는 걸까? 수출품과 내수용을 좀 구분해서 만들면 안 될까?

 

 

   

고령화 시대 노인들도 화장품을 사용한다. 시력도 수명을 따라가면 좋겠지만 안경 쓰는 사람이 많다. 화장품 회사에서는 회사 이름만 눈에 띠게 하지 말고 적어도 제품의 용도부터 한글로 크게 좀 밝혀주었으면 좋겠다. 북한에서 사용하는 물크림, 기름크림, 살물결, 머리비누처럼은 아니더라도 로션, 스킨, 에센스, 샴푸, 린스, 헤어컨디셔너, 바디로션, 바디워시, 크린싱크림, 폼 크린싱... (참 어렵고 헷갈린다.) 이라는 글자를 한글로 눈에 띠게 먼저 크게 적어놓고사용설명서(사실 필요도 없다)를 적어주면 정말정말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다. 목욕탕에 샘플을 가지고 가 본 사람, 특히 돋보기를 상시 소지 하지 않는 사람들은 참 답답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 567돌 한글날이다. 우리말 우리글을 사용하면 촌스럽다고 하는 참 요상한 풍토를 만들어 놓은 참 요상한 세상이다. 국문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한심하게 생각하고, 국문학과를 없애는 대학도 있다. 정책적으로라도 한글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도록 노력을 좀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글로벌과 취업에서 밀리는 국문학을 전공한 국어 교사로서 참 부끄럽고 안타깝고 슬프기까지 하다. ‘워시'에센스' 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지 않은 내 영어실력과 바디로션과 바디워시를 구별 못한 내 노안을 애통해 하면서 오늘 한글날 세종대왕님께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