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나쁜 남자 / 저 보고 싶으면...

몽당연필^^ 2013. 9. 28. 22:39

 

저 보고 싶으면 교문 앞으로 와요.’

 

가을이다.

9월 한 달 바쁘고 아프고 신경 쓸 일이 많았다. 아마도 추석이 있었고 시험 출제가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동창회 모임을 나갈까 생각하며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문자가 한 통 왔다. 내가 보고 싶다는 문자가 아니고, 보고 싶으면 나오라는 이 문자...

 

가을이다.

새삼 파란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래- 바람에도 하늘에도 가을이 잔뜩 묻어있구나. 며칠간을 컴퓨터 앞에서 짜증만 내었더니 왼쪽 머리부터 어깨까지 짜증이 꽉 박혔다. 바라는 것이 너무나도 많아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날려 버리자. 누군가가 이렇게 문자가 온다면 탁 토라진척 하면서도 속으로 앗싸할 참 좋은 가을 날 오후이다. 휴대폰에 수신자 이름이 보인다는 것이 참 불만스럽다.

 

꿈 깨고...

뭐야? 이 시간에 이 녀석이 웬일이야? 이런 예의 없는 녀석이라니... 그렇지, 이 녀석 아니면 이럴 수가 없지. 1학기 때 사고를 너무 쳐서 9월에 강제 전학 간 그 녀석, 나쁜 남자(?). 동료샘들이 붙여준 나쁜 남자의 본성을 드러내고 만다. 이럴 땐 무시하고 말아야 되는데 사실 궁금하기도 하다. 추석 전날, 전학 간 학교 학생들과 171로 붙어서 눈을 다쳤다는 전화를 받았지만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무시하고 있었다. 얼마나 다쳤는지 적응은 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난 이제 담임이 아니다.

 

 

             학생들이 배 타러 간 뒤 신발에 비 들어갈까봐

 

          교사들은 그들의 신발을 일일이 다 뒤집어 놓았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동창회 모임을 가려고 했는데 교문 앞에 와 있는 이 나쁜 남자를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낯선 학생들 속에서 마음대로 행동 할 수도 없을 것이고 하루를 버티는 것이 힘들 것이다. 집에 간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늦게 들어오실 테니 어디 말할 때도 없을 것이다. 학교 근방에 어른대지도 말라고 엄포를 놓고 있는 이 상황에 그래도 정들었던 학교가 그리워서 왔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래도 친구들이 많았다. 정든 친구가 그리웠을 것이고 꾸중 듣던 선생님이 그리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중학교 2학년이라고 하지만 아직 초등학생 정도의 정신 연령을 가지고 있는 이 녀석, 3, 아니 1분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예의라곤 아예 배운 적도 없는 것 같은 이 녀석, 그동안 얼마나 많이 속상했는데 또 이렇게 녀석 앞에서 무너진다. 단호하게 몰아치면 바뀔까? 사랑으로 대해주면 바뀔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다. 선생님들의 마음을 알기는 할까? 얼마 전 여행 중 배를 타면서 벗어 둔 학생들의 신발을 모두 뒤집어 놓던 일이 떠올랐다. 갑자기 떨어진 빗방울에 신발이 젖을까 봐 교사들이 비를 맞으며 재빠르게 그 많은 신발을 다 뒤집어 놓았다. 스스로 깨우칠 날이 있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그때는 너무 멀리 가 있을지도 모른다.

 

전학을 보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데 책임회피를 한 것밖에 안 된다. 이런 학생들은 전학을 보낼 일이 아니라 대안 학급을 만들어서 예절이나 인성교육을 먼저 시키는 것이 좋을 텐데... 3분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녀석을 하루 6, 7교시 교실에 가둬 두니... 아무튼 나의 무능력함에 미안한 마음도 들고, 여긴 왜 와서 또 나를 답답하게 하는지, 왜 내 마음을 짠하게 하는지...저녁 같이 먹으며 두 시간 잔소리 늘여놓다가 그만 동창회 가지 못했다. 모든 잘못된 것은 처음부터 단호하게 고쳐줘야 한다. 정 붙이지 말자고 해놓고 또 이런 '나쁜 남자'의 연기에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