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어머니의 거짓말 (2) / 칭찬은 고래를 헷갈리게 한다

몽당연필^^ 2013. 9. 7. 13:31

 

 

 

'며칠 전부터 편도선이 부어 열이 심하게 난다고 해라.

그래서 못 간다고...'

 

오늘 새벽 6시에 의성으로 벌초를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큰아들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저께 수학여행을 따라갔다 어제 저녁에 와서 아들과 따로 약속을 확인하지 못한 터다. 새벽 5시 반이 넘었는데 아직 오지 않고 전화를 하니 꺼져 있었다. 620분이 넘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일단 아침이니 참고, 곤란해 하는 작은아들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시키고 대신 내가 가려고 준비를 했다. 집안 식구들 다 모여서 가는데 갑자기 큰아들이 빠지면 뭐라고 해야 하나?

 

산소가 멀고 험하다 보니 일 년에 한두 번 밖에 못 가는데 오늘 안 가면 언제 날 잡아가기가 힘들다. 오늘은 비가 와서 남자들끼리만 간다고 하니 내가 따라가기도 그렇긴 하다. 어른들 다 모이는 집안 행사에 연락도 안 되고 약속을 지키지 않다니... 평소 사람이 지켜야 할 것 중에서 약속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도대체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큰아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이 버릇을 고쳐줄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어가 준적도 많고 혼을 낸 적도 많다. 약속을 어길 때마다 당연히 이유가 있다. 자신도 그것을 답답해한다.

 

 

 

   

결단을 내렸다. 문을 잠그고 비밀번호를 바꿔버렸다. 아무리 바빠도 일 년에 한 번 있는 벌초 행사에 참석하지 못할 만치 중요한 일이 있다면, 중요한 사람이 있다면 집에 들어오지 말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라고 할 참이었다. 640분 이미 차는 떠났는데 벨 소리가 울렸다. 큰아들이었다. 계속 벨 소리가 들렸으나 열어주지 않았다. 이렇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중요한 약속을 어기는 사람과 더이상 말하기 싫다고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단호하게 꾸짖고 못들은 척 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변수가 생기기도 하고 피치 못할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항상 어떤 일이 갑자기 생겼다고 한다. 학교나 직장에서 지각을 하는 사람은 항상 아침에 무슨 일이 있어서라고 변명을 한다. 더 가관인 것은 약속을 어긴 사람이 오히려 약속을 지킨 사람에게 그런 것도 이해해주지 못하냐고 참 융통성이 없다고 말할 때이다. 이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그런지 보통은 이해를 해 준다. 바로 이것이 문제이다. 늘 늦어도 늘 이해를 해주는 바로 그것이 상대방의 버릇을 고쳐주지 못한 이유이다. 이런 아들의 버릇을 고쳐주지 못한 것은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감싸고 변명해 주고 보호해 주는 것- 그것이 엄마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들을 위해서 거짓말을 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 오늘 내가 이렇게 화가 나고 단호하게 결정한 것은 며칠 전 일 때문이다. 며칠 전 학교 선도위원회의에서 흡연한 아들의 거짓말을 끝까지 감싸주던 어머니의 모습이 우리들 어머니의 모습 같아서이다. 바로 내 모습이 아닌가?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것이다.

 

거짓말 하는 아들을 끝까지 거짓말로 감싸 주던- 그것은 아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춤추지 말아야 할 때가 언제인지 모르게 한다. 칭찬보다 더 좋은 것은 잘못한 것을 꾸짖어서 고쳐 줄 수 있는 용기이다. 추석이 다가온다. 제사도 귀찮고 벌초도 귀찮은 귀한 자식들은 오늘도 공부를 하고 있고 게임을 하고 있다. 어른들은 오늘도 칭찬을 한다. 그래, 그래- 잘 하는 일이다.

 

문을 걸어 잠근 뒤 한 시간 후 작은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형아가 친구 차를 타고 산소가 있는 그 곳으로 오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