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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 담배 피우는 학생 - 관용? 엄벌?

몽당연필^^ 2013. 3. 9. 18:46

 한 주일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증거가 없으면 사실이나 존재를 증명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무엇이든지 증거를 남기게 된다.

보고하고 기록해 두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어떤 일을 시행하기 위해서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존중하다 보니

쓸데없는 형식적인 설문조사도 너무 많다.

그러나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새 학기는 온통 서류와 보고 속에 묻혀 산다.

 

왜 그 녀석이 하필 내가 화장실에 간

그 시간에 거기 들어왔을까?

어제 진단평가로 모든 선생님들이 바쁜 와중에

1교시 끝나고 여교사 화장실에서 나오려는데

그 녀석과 마주 쳤다. 서로 깜짝 놀랐다.

‘여긴 왜 왔어?’  ‘여기 여자 화장실이었어요?’

교복도 입지 않은 이 녀석 참 능청스럽다.

인적이 뜸한 여교사 화장실 문을 처음부터

노크로 칸마다 확인하고 담배 피러 왔다는 것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몇 학년이야?‘  ’3학년인데요.‘

‘이리 내’  ‘없는데요.’

주머니를 뒤지자 휴대폰과 담배 세 개피, 라이터가 나왔다.

‘지금 수업 시간인데 휴대폰도 안 내고 여긴 왜 왔어?’

‘전학생인데 지금 오는 길인데요.’

‘언제부터 피웠어?’  ‘중1 때 부터요.’

‘따라 와 봐!’  ‘교무실엔 가기 싫은데요.’

‘그래? 알았어. 그럼...’

‘다음부터 절대 그러지 않을 테니 한번만 봐 주세요.’

아직 이 곳의 사정을 잘 몰라서 일단 생활지도실에서

자술서만 쓰게 하고  지켜보기로 하고 조용히 보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전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전학 오기로 되어있는데

며칠 동안 학교에 오지도 않고 문제를 일으켜

허가를 보류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담배 피운 것을 말하게 되면 전학이 취소될 수도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학생이 어떤 학생인지를 잘 모르니...

그러나 이미 옆 선생님이 빼앗은 담배를 보고 말았다.

 

경험상 이미 나쁜 습관이 배인 학생들은

사랑으로 감싸 준다고 금방 고쳐지는 경우가 잘 없었다.

오히려 강력한 조치가 더 그 학생의 나쁜 버릇을

고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담배 건을 말하며 전학을 취소 할 수도 있다고 하니

아예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한단다. 마음이 무겁다.

나 때문에 그 학생의 인생이 바뀔 수가 있다.

언제나 경고를 하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럴 때 내가 생각하는 온정주의 관용주의가 과연 필요한 걸까?

왜 하필 내가 화장실 간 그 시간에 그 녀석이 거기에 왔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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