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편지/ 받는 즉시 답해 주세요
받는 즉시 답해 주세요.
예전 손편지를 쓸 때는 마지막엔 꼭 이런 구절을 넣는다.
받는 즉시 쓴다고 해도 4일에서 일주일은 걸리던 시절,
그 계산 안에는 편지가 도착하지 않을 것인데도
부치자마자 그날부터 매일매일 우체부를 기다리던 일
일주일이 넘어도 답장이 오지 않으면 얼마나 답답하고
허전하고 온갖 좋지 않은 상상을 다 했었던가.
기다림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상대방에게 보낸 편지의 답장을 기다리는 마음
얼마나 애틋하고 짜릿하고 가슴 설레었던가!
제자의 손편지를 받고 즉시 답장을 해 준다는 것이
차일피일 미루다가 열흘이 넘어버렸다.
간단하게 한 줄이라도 빨리 답장을 해 주는 것이
기다리는 사람을 덜 지루하게 하는데 말이다.
종일 기다리던 편지는 안 오고
우체부가 우리 집을 그냥 지나갈 때면
그 하루 허탈해서 힘이 빠지고
심지어 밥도 먹기 싫은 적이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 다음 날의 기다림을 가져다주고
그렇게 일년내내 어떤 기다림을 가질 수 있었던
먼 곳으로부터의 소식, 편지-
어딘가에 편지지가 있긴 있을 것인데
몇 군데 찾아봐도 없고 책상 앞에 앉아서
펜을 든다는 자체가 귀찮아지고 사실 쓸 말도 별로 없고...
편지를 주고받던 그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 안타깝다.
제자에게 할 말이란 정해져 있고 사실 형식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비 오는 오늘 손글씨의 답장을 쓰다 보니
아주 오래전 편지를 쓰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다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면 그 마음이 살아날까?
다시 그 마음으로 긴 편지를 쓸 수 있는 날이 있긴 할까?
하루에 수십 번 톡을 보내고 즉시즉시 확인하고 답장하는 시대,
그러나 내가 무슨 말을 보냈는지도 모를 만큼 수많은 문자들을
받는 즉시 보내는 우리, 몇 시간의 기다림도 참지 못하고
확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해도 왜 서로의 마음을 깊이 알지 못할까?
사월, 바람 불어 꽃잎 지는 날, 받는 즉시 손편지 한번 써보면 어떠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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