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까? 냉장고 청소를 할까?
일요일 아침, 5시, 작은아들의 톡이다.
이른 아침 톡이란 게 별로 좋은 소식일 리 없다. 요즘은 하루의 기분이란 대체로 자식들의 근황과 일치된다. 아파서 오늘 자격증 시험을 뒤로 연기했다고 한다. 아플 수야 있지만 왜 하필 오늘 아플까? 삐딱해진 마음이 뒤죽박죽이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책을 읽을까? 냉장고 청소를 할까? 하여튼 뭔가에 몰입해야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것 같다. 얼마 전부터 읽으려고 머리맡에 둔 책 두 권, 신간 서적 중 제목만 보고 골라 온 책이 있다.
‘쾌락독서’와 ‘연필로 쓰기’ ‘개인주의 선언’으로 유명해진 문유석 판사의 책과 덤덤하게 쓴 것 같아도 끌리는 김훈 작가의 책이다. 소위 말하는 베스트셀러 대열에 있는 책들인 것 같다. 요즘 베스트셀러 책들을 보면 표지의 디자인도 제목도 내용도 거의 비슷비슷한 것 같아서 헷갈릴 때가 있다.
‘쾌락독서’는 일단 ‘쾌락’이란 단어가 자극적이다. 육감에만 사용되는 줄 알았던 ‘쾌락’이라는 단어, 거기다가 더하기 지적인 ‘독서’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연필로 쓰기’는 일단 연필이란 단어와 표지가 마음을 끈다. 자판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연필이란 얼마나 서정적인가. 원고지에 연필 글씨가 있는 표지를 보고 ‘자전거 여행’을 생각하며 골랐다.
제목을 보고 책을 고르면 일단 목차부터 보게 된다. 요즘은 목차에 정치적인 발언이 있는 것은 일단 유보하게 된다.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 되려면 소위 진보적인 발언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꼭 한 꼭지는 정치적인 이야기가 들어간다. ‘쾌락독서’ 란 책에서도 말했듯이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야 재미있다. 책을 쓸 때는 어차피 자기 생각을 적는다. 그러나 수위 높은 언어의 공격이라던가 편견이나 편향은 불편하다.
자전거 여행의 서정적인 문체를 생각하면서 ‘연필로 쓰기’를 펼쳤다. 말도 표정도 어눌한듯하지만 할말을 다하며 꾸미지 않고 힘주지 않은 간결한 문체처럼 서문 또한 담백하고 짧아서 좋았다. 호수공원에서의 소소한 이야기로 시작되어 가볍게 넘기며 읽는데 이 책에도 역시 과거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들어가 있다. 그럴 수도 있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지금은 왜 공감하는 부분이 적을까? 어쩜 이런 현상도 지금의 시대상인지 모른다. 나의 편견일 수도 있다.
요즘은 작가 아니라도 해박한 지식과 글쓰기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잘 팔리는 책들을 보면 그야말로 대중의 입맛에 맞게 쓴 책들이다. 책 속에 빠져들면 이 말이 진리인 것처럼 현혹될 때도 있지만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세상이 선이고 옳은 것만은 아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지나간 시대의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부정하는 것, 어느 한 시대의 과거를 통째로 부정하는 건 모순이 되는 것 아닐까? 개인주의가 되어라. 열심히 살지 말아라, 할 말 다 하고 살아라.
베스트셀러 책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기존의 틀을 부수라는 메시지가 들어있다. 물론 그들은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며 역설적으로 말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른들이 가르치는 질서와 지혜를 잘 지키고 수용하는 모범 학생들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시대는 변화되고 발전한다. 잘못된 것은 고쳐가면 되지 굳이 적으로 죄인으로 몰아갈 필요는 없다. 그렇지 않아도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이 한창 심할 나이에 이런 멋있는 지성인들이 자신들의 맘을 읽어주니 오죽 좋을까? 당연히 베스트셀러 인기 작가가 되지 않을까?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자기계발서가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정답은 없다. 그렇다. ‘재미’ ‘쾌락’ 이런 것들이 삶의 화두가 된 시대다. 먹는 것, 노는 것, 여행하는 것, 정말 중요한 것들이긴 하다. 필독서를 읽지 말라거나 열심히 살지 말라거나 이런 말이 귀에 쏙쏙 들어올 수도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행여 학생들이 이런 것만 배우면 어떡하나? 하는 노파심이 생긴다.
신간 도서의 책 제목을 보고 고른 책들을 읽으려다가 엉뚱한 곳으로 이야기가 흘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몇 년 전부터 정치적으로 편 가르는 발언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근래 책을 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생각은 달라도 문유식 판사나 김훈 작가의 솔직담백한 이런 문체는 좋아한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시간 되면 다시 찬찬히 읽어 볼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오늘은 책을 접고 마음 청소하듯이 냉장고 청소를 종일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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