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다.
한 줄 적어놓고 20일이 지났다. 3월부터는 시간이 참 많을 것 같았는데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수업이 없고 담임이 없으니 퇴근을 일찍 해서 무엇이라도 할 것 같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일은 확실히 줄었고 정신적으로 부담되는 것이 거의 없다. 받는 돈만큼 일이 없는 것 같아서 괜스레 미안하고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두 학교 겸무인데 추경예산을 신청해서 두 곳 다 도서실 환경을 대폭 바꾸었다.
서가를 교체하거나 자리를 바꾸면 많은 책들을 다 꺼내었다가 다시 순서대로 정리해야 한다.여름방학 때부터 했는데 아직 덜 끝났다. 책을 계속 만지니 엄지손가락이 많이 아프다. 그래도 학생들 지도하는 것보다는 몇 배는 수월하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 점심시간이면 4, 50명 정도는 도서실에 오는데 신기하다. 폰을 수거해서 만지지 못하니 도서실에 와서 만화책이라도 보는데 그래도 책 읽는 모습들이 너무 사랑스럽다. 선생님들은 카페 같은 분위기에서 근무 할 수 있으니 좋겠다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몇 분 선생님들은 학생 지도가 힘들다고 어떻게 하면 이 일을 할 수 있느냐고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일도 적성이 맞지 않으면 힘들 수도 있다. 힘들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일 년에 천만 원 정도의 도서 구입을 해야 하는데 출판사 저자 가격까지 다 조사하고 분류별 균형을 맞추어서 작성해야 한다. 매월 도서실 이벤트도 실시해야 하고 학생 1인당 평균 10권 정도의 책을 대출하도록 도서관 이용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인문학 관련 행사도 몇 번 이상 실시해야 하며 그 밖에 독서 관련 많은 행사를 해야만 한다. 또 가장 어려운 교과서 관련 업무도 있다. 단순히 책을 빌려주고 받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종일 컴퓨터 앞에서 노는 것 같지만 하루 종일 뭘 해도 하지 놀지는 않는다. 그래도 요즘의 별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전혀 힘 드는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좋다고 하면 안 되는데 그래도 아침마다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다른 직장엘 다녀 보지 않아서 그런지 너무 좋은 것은 집에서 미리 해 가야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 날 출근해서 하면 되는 일이다. 수업을 하려면 언제나 예습을 해야 하고 집에서도 언제나 학생들을 생각해야 한다. 일찍 퇴근할 수 있고 집에 와서 이렇게 홀가분하게 내 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더 좋은 것은 네 시 반이면 땡 퇴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퇴근을 일찍 하지 않으면 오히려 미안해지는 분위기다. 하던 일 멈추고 퇴근해도 하는 일에 지장이 없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글 한 편 제대로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고 할 순 없는데... 너무 여유로워서 생각조차 느슨해 진 것 같다. 시간이 많은데도 여기 블로그에 글 한 편 올리지 않는다는 것, 늘 ‘시간이 없어서’ 라고 한 말 그건 핑계였다. 바쁘다는 것도 습관이다. 지금 시간이 너무 많은데 난 뭘 하고 있지?
'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을 읽을까? 냉장고 청소를 할까? (0) | 2019.06.23 |
---|---|
손편지 / 받는즉시 답장 주세요.^^ (0) | 2019.04.29 |
시간 보내기 / 화첩기행 다시보기 (0) | 2018.05.27 |
전화위복(轉禍爲福) (0) | 2018.04.08 |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0) | 2016.0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