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고요와 적막 사이

몽당연필^^ 2015. 12. 26. 19:14

 

고요와 적막

 

 

-고요와 적막은 비슷한 말이지만 많이 다르다. 고요라는 말의 뜨락에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벗어놓은 아침햇살이 있고, 적막이라는 말의 우산 속에는 아무도 없고 아무도 없는데 저 혼자 비 내리는 늦은 밤 정거장이 있다. 고요는 다람쥐가 초록 속에 감춰둔 인적 끊긴 길가에 있고, 어느 날 사랑은 가고 이제는 텅 빈 그대 옆자리에 적막은 있다. 그러므로 고요는 가볍고 적막은 무겁다. 문명과 제도와 욕망의 우울을 먹고 사는 적막과 흰구름, 산들바람, 느리게 흘러가는 강물소리의 혈육인 고요는 비슷한 말이지만 이렇게 다르다. 그대 영혼은 가벼운가 무거운가. 무릇 인간의 문화적 노력이란 가벼워지기 위한, 또는 적막에서 고요로 옮겨 앉기 위한 안간힘이 아닐까.- <고요와 적막 사이> / 강현국 시작노트중에서-

 

 

 

 

오후 네 시, 흐릿한 날씨

짧은 낮꿈 뒤의 몽롱함, 두레박을 타고 우물 속 깊이 내려가는 듯한... 늘 깔려 있는 이부자리 속 전기담요는 따스하고 읽다 만 책 몇 권 나뒹굴고 쓰려다 만 연하장 몇 장 어수선하고 머리맡엔 정리되지 않은 잡동사니들로 적당히 어지럽혀진 방안 풍경이다.

 

익숙한 이 풍경들이 나를 가둔다. 눈을 떴으나 일어나지 않고 한참 동안 천정만 바라보고 있다. 형상은 있는데 소리가 없다. 소리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지금 이 시간 모든 형상들은 숨죽이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고요인가? 적막인가?

 

고요는 가볍고 적막은 무겁다 했던가 눈 감으면 여름날 냇가의 패랭이꽃과 흰구름이 보이고 너와 함께 날리던 물수제비를 세고 있다면 그건 고요일까? 아무런 소리 하나 없는 이 시간, 아무런 그리움도 없는 이 시간, 그렇다. 이건 고요가 아니라 적막이다.

 

고요는 저 혼자 있지만 적막은 나를 삼킨다. 고요는 평화롭지만 적막은 쓸쓸하다. 옥수숫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아무 소리도 없는 이 빈자리엔 고요가 아닌 적막만 있다. 그렇다. 문명과 제도와 욕망의 우울을 먹고 사는 적막, 너와 나 사이, 있다와 없다 사이, 허무와 허망 사이, 어느덧 세월은 흐르고 무심하게 끼어 있는 내 삶의 흑백사진.

 

쓸쓸하다라는 말을 제거하면 고요가 살아날까? 고요에서 적막으로 이동하는 12월의 끝자락 오후 네 시, 적적하고 막막한 '적막' , '고요' 한 평 분양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