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수학과 음악사이

몽당연필^^ 2015. 11. 14. 00:01

문제: [표3]에서 판매량[G15:G21]과 판매가[H15:H21, 할인율표[G24:K25]를 이용하여 판매금액[I15:I21]를 구하시오.

할인율: 판매가가 300000~599999이면 5%, 600000~899999DLAUS 8%, 900000~1199999이면 12%,

   1200000~1499999이면 15%, 1500000이상이면 18%를 적용함

VLOOKUP, HLOOKUP, INDEX 중 알맞은 함수를 선택하여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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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소린지... 읽어도 들어도 이해가 안 되니...

수업시간 교사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 학생들 얼마나 재미없고

답답하고 지루할까? 내가 요즘 그 학생들 마음이다.

컴퓨터 앞에 앉는 것도 싫어하고 숫자만 봐도 어지러운데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 시험반에서 강의를 듣는다.

매일 하루 세 시간씩 일사천리로 진도 나가는 학원에서...

 

처음 며칠은 이런 프로그램을 개발한 인간의 두뇌에

감탄 경탄하다가 며칠째 내 머리가 참 나쁘다는 것을 깨닫는다.

두뇌가 명석한 사람들의 연구로 우리는 좋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인문학? 아날로그?

아름답게 포장하며 계산을 못하는 것조차 자랑처럼 말해왔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현대사회에 필요한 것들을

복잡하다는 이유로 배우지 않고 자꾸만 회피해 왔다.

 

하여튼 정보화 사회에 따라가지 못하는 내가 답답하다.

어느 직장에선들 이런 나이 많은 사람을 좋아할까?

외모만 젊어 보이면 뭣해. 젊은 사람 사고를 따라가지 못하는데...

포기를 해야 할까? 아니면 나를 시험해 봐야 할까?

워드 자격증도 없는데 무슨 컴퓨터 활용능력 시험씩이나?

이때까지도 잘 살아왔는데 이 나이에 무슨...

그럴까? 그렇겠지. 어지럽다. 한 달을 어떻게 버티지?

 

그래도 집에 있는 것보다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강의실을 나서니 가을비가 제법 많이 내린다.

11월, 차갑고 쓸쓸한 가을비가 연상되지만

바람 부는 차가운 날씨는 아니어서인지

그냥, 혼자서라도 커피 한 잔 하고 싶은 그런 날씨다.

이 대낮에, 나와 커피를 마셔 줄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몇 군데 문자를 보냈다. 시내 있는 친구와 잠시 커피를 마셨다.

가을, 비, 금요일... 이대로 집에 오기가 왠지 아까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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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골목골목을 혼자서 걸었다.

'근대로(近代路)의 여행'이란 푯말이 있는 곳을 지나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늘 다니는 길이지만 그런대로 재미있다.

미도다방과 백록식당, 정소아과를 지나 진골목을 우산 쓰고 걸었다.

평일 낮 외곽지 커피집에는 멋있고 특별한 아줌마들이 많은데

이 골목엔 모두 할아버지쯤 되어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 전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컴퓨터와 씨름하다가

과거의 길로 돌아서 걸으니 마음이 좀 느슨해졌다.

늘 한 번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가 본 곳이 있다. 음악감상실 '綠香' 

 

30여 년 전 추억이 있는 '녹향' 음악감상실,

클래식 음악보다 팝송이나 가요를 많이 들었지만

이 '녹향'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요즘은 집에서 더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겠지만

그 옛날 음악감상실은 우리들의 데이트 장소이자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아지트이기도 했다.

동성로 '빅토리아' 음악감상실에서 알바를 하기도 했고...

 

 

그 옛날 향수를 가진 연세 든 분들이나 찾아오지 않을까 싶은

녹향 음악감상실을 그래도 시에서 보존하도록 지원을 해줘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

LP판의 잡음이 들리는 음악을 들으며 CD로 된 스트레오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둘러보니 자리엔 겨우 한 두 명 뿐...

향수가 아니라면 자리도 편하지 않고 그 시절의 분위기도 아니었고

굳이 이 곳에 와서 음악을 들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클래식 애호가도 아니지만 두 시간을 그 곳에서 보내고 있었다.

음악을 들은 것이 아니라 30년이 훨씬 넘은 그 때로 돌아가 있었다.

 

그런데 기쁘고 즐거운 기억이 아니라

방황과 절망의 기억이 음악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때 들었던 그 음악은 지금도 그 감정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음악을 잘 듣지 않는지도 모른다.

짙은 남색 스커트에 은회색 하늘거리는 블라우스의 소녀...

갓 스물을 넘었었나? 허리가 참 가늘었었나?

빅토리아 음악감상실에서 고향 집으로 가고 있었지.

......

 

싹둑! 여기서 필름을 끊어버린다.

 

수학과 음악사이...

너무 멀다.

근대로의 길을 지나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

가을, 11월,  비, 불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