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다.
닷새간의 여유가 있는 방학이다. 오랜만에 블로그를 둘러보지만 쓸 말이 별로 없다. 배경음악을 ‘사월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 대신 ‘오월의 편지’로 바꿔 넣었다. 가사와는 상관이 없지만 그 때 듣던 음악이라 모른 척 하고 있었던 그리움 하나 확 솟구친다.
작년 이맘 때, 재 작년 이맘 때는 무엇을 했나? 2012년이었구나. 벌써 3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나? 이쁘지 않아서 반성문까지 쓴 그 사월이 지나고 마음이 온통 뒤죽박죽이던 신록의 계절 오월, 그리움의 단어를 수도 없이 되뇌이던 그때가... 웃고 만다. 웃지 않으면 참 부끄럽고 미안하기 때문이다.
내가 블로그를 만든 것은 순전히 그 블로그의 글을 읽을 수 있고 댓글을 달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필요성에 의해서였다. 출근 하자마자 컴퓨터부터 켜고 하루를 시작하지만 기계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있어서 컴퓨터 앞에 앉는 것 자체를 즐겨하지 않았는데 ‘동서 문학상’이란 검색어로 어느 블로그를 알게 되었다.
내 나이가 그때 이미 오십을 넘었었지만 사실 나는 현실적으로 전혀 모르는 사람, 특히 남자와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비교적 개방되고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고 있지만 환경적으로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날 우연히 접하게 된 블로그의 글을 보고 ‘설렘’이란 야릇한 감정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편지 잘 쓰는 사람, 글 잘 쓰는 사람, 그러면서 겸손한 사람, 그런 친구 있었으면... 여자이건 남자이건 상관없지만 남자라면 더 좋겠고... 처녀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생각은 하고 있다.그러나 그건 생각일 뿐 현실에선 어려운 일이다. 참 많을 것 같은데 참 만나기 힘든 일이다.그건 내가 겸손하지 않다는 것일 수도 있다.
< 그 해 오월 >
그 사람의 글을 일 년 넘게 읽다 보면 그 사람의 내면이 어떻다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참 나와 비슷한 사람이구나. 공통점이 많구나. 어쩜 나는 나를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와 다르게 너무 반듯한 사람이구나. 그렇구나. 나는 자유로운 사람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 반듯한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반듯한 남자친구? 얼마나 아이러니한 말인가? 컴퓨터를 켜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면 믿을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아파하고 있었다는 걸 알기나 할까? 아무 일 없이 단지 편지 몇 번 주고받았을 뿐인데... 아!, 그 때 쓴 글은 그래서 온통 그리움이었구나. 어느 날, 블로그 문이 닫히고 문자와의 사랑도 끝나게 되고... 한 달 만에 몸무게 6킬로가 빠졌던 그 해 오월...
블로그의 속성도 모른 채 기껏 댓글이나 쪽지, 몇 통의 편지에 내 마음을 보여 준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 '설렘'이란 감정이 깨진 것이 속상하고 아까웠다. 다시는 이런 감정을 맛보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과 아쉬움으로 오월은 그야말로 내게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달이었다.
나는 대체로 낙관적인 것 같지만 냉소적이다. 남의 말을 잘 믿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늘 웃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앞으로 더욱더 그럴 것이다. 경험보다 더 좋은 스승은 없으니까. 오월이다. 그리운 사람은 그리움으로 남겨 두고 마음을 비운다. 열정도 격정도 싫다. 차라리 그리움조차 없는 혼자만의 이 평화로움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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