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구함
‘애인대행’, 시간당 3만원, 은밀한 데이트, 추가 요금 있음.
‘애인구함’이 아니고 ‘애인대행’이라니? ‘愛人’이란 사랑하는 사람일진대 하루살이도 아니고 하루사랑이라니... 시간당 사랑이라니... 조건을 추가하면 요금도 추가한다니...
허긴 혼자가 두렵거나 외로운 사람은 하루라도 곁에 누군가 있어 주길 원하는 사람도 있긴 할 것이다. 사람의 진심이야 알 바 아니고 운동이나 게임으로 생각한다면 대행이 가능하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라도 애인의 관계가 지속되면 다행인데 '금전적인 관계'로 맺어진 사이이기 때문에 돈만큼의 관계가 오가고 돈이 없으면 끝이 난다는 것이다.
요즘은 버스 좌석에다 ’애인구함‘이란 낙서를 한 것을 볼 수 없다. 그만큼 문화 수준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으나 이런 애인대행업이 공공연히 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매체의 발달로 인터넷 카페라든가 스마트폰 앱으로도 쉽게 이런 글을 공고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음을 나눌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당 알바 사랑을 팔고 사는 시대이다. 현대인의 외로움이나 군중 속의 고독을 읽을 수도 있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하루를 돈으로 즐기려는 사람들이나, 현실에서 불가능한 늘씬한 미녀와 멋진 남성을 하루 애인으로 삼으려는 물질만능주의와 외모지상주의가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애인구함’이란 낙서가 흔하던 시대가 있었다. 참으로 애인을 구하려는 절박한 심정보다 그냥 공개 장소에서 금기시 되어있던 ‘애인’이란 단어를 그야말로 낙서하는 마음으로 적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 버스 좌석이나 화장실 안에 적혀있던 그 애인 구함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애인을 만났는지는 알 수 없다. 전화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아날로그 시대에 좁은 행동반경을 벗어난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의 자기 광고일 수도 있었다. 어쩜 타 지역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펜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애인구함’은 지금처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 당시 <여학생>이나 <학원>, <선데이 서울>이나 <새농민> 같은 잡지 뒷부분에는 공식적으로 ‘애인구함’, ‘친구구함’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펜팔 코너를 보는 것조차 부끄러워 남의 눈을 피해 살짝 보기는 했으나 거기서 얻은 주소를 보고 친구나 애인을 사귀고 얼굴도 모르는 채 편지를 주고받던 때였다. 그렇게 주고받던 편지는 닫힌 세계에서의 달콤한 청량제이자 넓은 세상으로 열린 창이었고 기다림과 동경을 가져다준 유일한 매체이기도 했다. 펜팔이 글쓰기나 폭넓은 인간관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으므로 그 시절 편지를 대필해 주었거나 편지를 주고받던 사람들은 어쩜 지금 작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연세 드신 할아버지가 등에 ‘애인구함’이란 글자와 전화번호가 담긴 옷을 입고 다니면서 애타게 인생의 동반자를 구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렇게 하기를 몇 년이 되었지만 아직 연락이 온 사람은 없다고 했다. 늘그막에 주책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혼자 사는 할아버지는 절실했을지도 모른다. 밥이라도 같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주선해서 그 동네 안에서 시집가고 장가가던 시대는 지났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에게 알릴 필요가 있기도 하다. 매체가 발달했지만 쉽게 이용할 수 없고 할아버지의 사정을 알리는 방법으로 이런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말벗이나 글벗을 구하던 시대의 버스 좌석에 적혀있던 ‘애인구함’ 이란 낙서와 할아버지 등에 적힌 ‘애인구함’, 인터넷에 올라온 ‘애인 대행’이란 말은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행이란 말은 인간을 상품화 하는 것이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한마디 하면 수백 명의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지만 정작 가슴과 가슴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따뜻한 가슴으로 관계를 형성하지 않으면 시간당 얼마짜리 사랑이 되고 만다. 내 사랑이 얼마짜리인지 계산한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어쩜 우리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애인구함’이란 광고판을 달고 다니는지 모른다. 관계가 한정적인 오프라인에서 벗어나 온라인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취미활동이나 가치관이 맞는 인연을 찾아, 서로의 취향을 맞춰가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경제적인 관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두가 제각각 애인을 구한다고 하지만 사실 애인 구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사랑을 대행해 주고 애인을 대행해 주는 시대지만 오랜 기간 공들인 내 스스로 만든 사랑보다야 나을 텐가? ‘미지의 친구에게-’로 시작되던 편지에서부터 설렘과 기다림을 익히고 외모가 아닌 마음부터 사랑하던 ‘애인구함’의 시대는 지났지만 인간은 하루살이가 아니다. ‘하루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낙서 / 안도현
군내 버스
때 절은 좌석 덮개 뒤에다
나도 삐뚤삐뚤
사인펜으로 쓰고 싶다
애인구함
나이: 16세
성격: 명랑 쾌활
TEL: 353~2698
많은 연락 바람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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