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의 오후 / 옷장을 정리하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평소 청소를 잘 하지 않고 다니는지라 아침 일찍부터 시작한 청소가 지금까지 해도 끝이 나지 않는다. 모레가 일 년에 한 번 시댁 식구들이 다 모이는 날이기도 하다. 큰일이 있을 때면 음식 하는 일보다 청소하는 일이 더 힘든다.
옷장을 정리할 때면 버릴까 말까 하다가 다시 넣어두는 옷들이 있다. 사실 다시 넣어두어도 유행이 지났기 때문에 입지 않게 된다. 가격이 싸다고 덥석 산 옷은 입지 않을 확률이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이 들어서, 새옷이라서... 또 다시 넣어 둔다.
옷 때문에 복잡해서 죽겠다고 하면서도 버리지 않는 옷이 있다. 매년 보고 다시 넣어두고 했는데 오늘 보니 빛이 바래었다. 몇 년이나 되었나? 20년이 넘었나? 세탁소에 맡겨야겠다. 바람을 쐬려고 빨랫줄에 걸어두고 문득 돌아보니...
부름과 이름 사이의 아득한 거리, 여기와 거기의 머나먼 거리 저 옷 속의 몸을 떠올릴 때, 마음속을 흘러가는 말은 말이 아니라 기갈이나 허기일지도 모른다. 옷은 여기 걸어놓고 아직도 출장 중... 결국 우리는 한 벌의 옷으로, 한 켤레의 신발로 남을 뿐이다.
문득 돌아보니 거기,
미소 짓고 있는 사람...
아니 곰팡이 냄새 나는 옷 한 벌 흔들리고 있을 뿐.
가을, 흐린 날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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