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에서

선물 / 썩은 사과의 추억

몽당연필^^ 2014. 1. 26. 21:00

썩은 사과의 추억

 

 

 

 

......

 

어릴 때 느그 집에서 먹던 그 썩은 사과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느그 집 과수원 막에서 시험공부 한다고 모여서 사과만 실컷 먹고 책 펴자마자 자불다가 밤 열두 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며 공부했다는 뿌듯함으로 이튿날 다시 과수원 막에 모이고... 느그 집에서 얻어먹은 사과를 평생 갚아도 모자랄 텐데...

 

느그 아버지 보고 싶다. 왕비열전이나 전설따라 삼천리 참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시며 화롯불에 가래떡 구워 주시던, 우리가 즐겨듣던 유행하던 노래를 콩죽 묵고 배 앓는 소리라고 하시던... 겨울밤 사랑방 윗목에 있던 고구마 가마니에서 꺼내 먹던 살짝 언 생고구마 너무 맛있었는데...

 

늙은 호박을 술래 전으로 정해놓고 숨바꼭질 한다고 이리저리 굴리고 이불 밑에 들어가서 이불을 다 찢고 그렇게 떠들어도 느그 엄마는 뭐라 그러지 않으셨지. 느그 엄마 보고 싶다. 그때 우리 함께 놀던 숙이는 일본서 잘살고 있는지, 희야는 선이는 왜 소식이 없을꼬? 다 잘살고 있겠지.

 

같은 대구 땅에 있으면서도 우리 얼굴 본 지가 일 년이 넘었네. 아니, 2년이 다 되었나? 항상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 주어서 고맙다. 너는 그냥 내게 건강한 얼굴만 보여주면 되고...이제 내가 얻어먹은 사과 평생 갚아줘야지.

 

언니 집이 과수원을 해서 맛있다는 사과 다 먹어봐도 우리 그때 느그 집 막에서 먹던 그 썩은 사과보다 맛있는 사과는 없는 것 같더라. 우리 언제 추억의 기차 여행이라도 한번 가자. 언제 한번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 *** ***

 

오랜만에 친구와 통화를 했다. 어릴 때 단짝이었던 친구지만 어쩌다 보니 서로가 바빠서 만날 시간이 없이 세월이 흘렀다. 추석에 이어서 또 사과를 보내왔다. 나는 사실 과일을, 특히 사과를 좋아하지 않는다. 돈 주고 사과를 사서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일단 사과는 흔해서 그런지 다른 과일보다 특별한 맛이 없다. 친구 말대로 썩은 사과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그런지... 사과는 너무 크도 맛이 없고 인물이 너무 좋아도 싱겁다. 껍질이 약간 거칠어야 하며 색깔도 투명한 주황색 빛이 감돌아야 당도가 높다. 그런 사과를 사기가 쉽지 않다.

 

친구 언니 집에서 농사 지은 저 청송 사과는 백화점 인물 좋은 최상품 사과보다 정말 맛이 있다. 돈으로 따지면 얼마일까마는 우리들의 추억을 되새겨 주는 친구의 정에 고마운 마음으로 사과 한입 베어 무니 마음은 고향집 과수원 막으로 가고 있다.

 

썩은 고구마, 썩은 무우, 썩은 사과의 추억 우리의 추억 속에는 비싸고 화려하고 빛나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참으로 썩은 것들이 맛있었던 것일까? 크고 화려하고 싱싱한 것들을 한 번도 먹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 그랬었다. 우리는 버려지는 썩은 것에서 달콤함을 배운 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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