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명작을 찾아서」 심화 학습 자료
조지 오웰의 『19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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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1984』(민음사) 조지 오웰 지음, 임병윤 옮김, 『동물 농장』(소담 출판사)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코끼리를 쏘다』(실천 문학사) 박홍규 지음, 『자유·자연·반권력의 정신, 조지 오웰』(이학사) 박경서 지음, 『조지 오웰』(살림) ① 오웰의 생애가 그의 문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자. ② 오웰의 정치적 견해가 작품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하남석_ 유레카 논술·구술 연구소 강사 |
★ 들어가는 글
“어떠한 책도 정치적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이 정치와 관계가 없다고 하는 의견 그 자체가 정치적 태도다.” ― 조지 오웰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모든 정치 형태를 온몸으로 거부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인 『1984년』은 미래의 전체주의 사회를 그린 정치 소설이다. 출간 당시 이 소설은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일급 정치 문서에 가깝다는 비난조의 평가를 듣기도 했고, “우리 시대를 대변하고 있으며, 현대 정치에 이만큼 큰 영향을 미친 작품도 없다.”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특히 ‘이 작품에서 그가 예언하고 있는 우울한 미래가, 과연 우리 눈앞에 언제, 어떤 모습으로 들이닥칠 것인가.’ 하는 우려는 21세기 정보화 시대와 맞물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면 이제부터 조지 오웰의 생애와 그의 작품들에 담긴 문학적·사회적 의미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심화 자료
조지 오웰의 생애
조지 오웰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다. 그는 1903년 6월 25일에 그 당시 영국령이던 인도의 벵골 주 모타하리에서 하급 세관 공무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들이 남달리 총명하다는 사실을 알고 명문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예비 학교에 입학시켰다. 오웰은 엄격한 기숙사 생활에 잘 적응하지는 못했지만, 어머니의 기대에 걸맞게 명문 이튼 스쿨에 국왕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오웰은 이튼에서의 학창 시절을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외톨이였고, 무뚝뚝한 면이 있어 친구들 사이에서 별로 인기가 없었다. 외톨이 어린이가 항상 그러하듯, 나는 이야기를 지어 내기도 하고 상상으로 만들어 낸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습관이 있었다.”라고 회고한다. 이렇듯 풍부한 상상력과 이튼에서의 수준 높은 교육은 그가 작가로서 문학적 바탕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국의 모든 어머니들이 자식을 이튼 스쿨에 보내고 싶어하는 이유는 이 학교 졸업생들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같은 일류 대학으로 진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웰은 이튼에서의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했고, 가정 형편도 넉넉지 않았던데다, 귀족 학교에서 상류층 자제들에게 차별을 당하면서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오웰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22년, 인도 제국 경찰 직에 지원하여 버마에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거기서 그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직접 지켜보면서, 제국주의가 단지 식민지 원주민들의 인권뿐 아니라, 지배자들의 인간성마저도 파괴해 버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웰은 그 무렵에 쓴 에세이 『코끼리를 쏘다』에서, 발정이 나서 난동을 부리다가 얌전해진 코끼리를 굳이 쏠 필요가 없었음에도 이를 구경하러 나온 2천여 주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코끼리를 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때 총을 든 제국 경찰인 자신이 실은 영국 정부의 꼭두각시이자 전제 정치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으며, ‘백인이 전제 군주가 되면 파괴되는 것은 바로 백인 자신의 자유’임을 분명히 깨달았다고 한다. 결국 그는 5년 만에 경찰 직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돌아왔고, 그 뒤로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미얀마에서 돌아온 오웰은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1928년부터 18개월가량 프랑스 파리에 머물며 접시닦이로 돈을 버는 틈틈이 소설을 썼다. 영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1931년 여름까지 런던 등지에서 부랑자 생활을 했는데, 이때의 경험은 처녀작이자 자전적 소설인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1933)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경험을 계기로 억압과 착취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자본주의에 대해 더욱 반감을 갖게 된 오웰은 미래가 없는 노동자 계급에게 연민을 품었다. 1930년까지만 해도 자신을 한 번도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명확한 정치적 견해도 갖지 못했던 그는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면서 마르크스주의에 눈뜨게 되었다. 그리고 유럽에 파시즘이 퍼지기 시작하자, 정치적 입장을 사회주의 쪽으로 굳혔다. 오웰이 주장한 사회주의는 피억압자들이 억압자들에게 맞서 적극적으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또 그는 권력 투쟁이 아니라, 민중에게 공정하고 공개된 토론을 보장해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회주의에 이르는 길이라 보았다.
하지만 1936년에서 1939년 사이에 일어난 에스파냐 내전에 참전했던 경험은 오웰에게 급격한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오웰은 그 당시 친소(親蘇) 경향이 짙었던 유럽의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파시즘으로부터 에스파냐 공화국 정부를 지켜 내기 위해 내전에 참전했다. 그에게 에스파냐는 양심적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목숨을 걸고 참여해야 할 대의(大義)와 정의 수호의 전장(戰場)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에스파냐에서는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추악한 파시즘, 그리고 정치적 불간섭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파시즘과 결탁한 자본주의 열강’이 ‘인민의 선거로 정당하게 선출된 민주적인 에스파냐 공화국 정부, 그리고 노동자의 조국 소련’과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적 지식인들이에스파냐 공화국 정부와 소련의 편을 든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오웰은 소련의 스탈린이 대의를 저버린 채 당파 싸움으로 동료들을 잔인하게 숙청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쟁과 사회주의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그는 파시스트에 대항하기 위해서도 사회주의를 위해서도 아닌, 좌익 내부의 싸움에 빠져 든 것이다. 그는 그때부터 스탈린과 스탈린주의자들이 사회주의 혁명의 가능성과 순수성을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1937년 에스파냐에서 영국으로 돌아온 오웰은 1941년 영국 방송 협회(BBC)에 입사하여 극동 선전 방송을 담당했다. 그는 2년 뒤인 1943년 말부터 좌파 잡지 <트리뷴>에서 문학 편집자로 일하면서 정치 풍자 소설 『동물 농장』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소련의 스탈린 체제를 풍자한 이 작품에서 그는 타락한 권력과 전체주의 사회의 모순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 당시 영국이 소련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은 출판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동물 농장』으로 비로소 유명 작가가 된 오웰은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도, 전체주의 사회를 풍자한 또 하나의 소설인 『1984년』을 내놓았다. 이 작품에서 미래 사회는 혁명의 이념이 훼손된, 타락한 전체주의 사회로 묘사되고 있다. 그곳에서는 ‘빅 브라더(Big Brother)’, 곧 ‘대형(大兄)’에 의해 시간과 공간, 개인의 기억과 역사가 철저히 통제된다. 이 두 작품은 단순히 소련 사회를 비판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권력’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반(反)권력’의 정신을 담고 있다. 오웰은 자신이 이상으로 삼은 민주적인 사회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회주의의 진정한 목표는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여태껏 사회주의의 부산물이었고, 우리가 아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회주의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적인 형제애다.”
조지 오웰의 작품 세계와 정치 소설
‘정치 소설’이란 정치적 이념과 환경이 작품 전체에 걸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소설을 가리킨다. 오웰이 살던 20세기 초·중반은 급격한 산업화와 대공황,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등이 일어나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혼란스러웠던 시기다. 게다가 그 자신이 제국주의와 전체주의 전쟁을 몸소 겪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오웰의 작품들이 ‘정치 소설’이라 불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는 그 당시의 시대 상황과 정치에 무관심할 수 없었던 자신의 입장을 가리켜, “침몰하는 배 위에 있을 때 당신의 생각은 그 배에 집중될 것이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처럼 오웰은 자신의 작품이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인정하고, 또 강조했다.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오웰은 자신의 문학이 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는 여기서 작가가 글을 쓰는 4가지 동기로, 순전한 이기심과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을 들었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밝혔다.
“평화로운 시기에 살았다면 나는 화려한 문체나 묘사 위주의 책만 썼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정치적 주제를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금 우리 시대와 같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듯 오웰은 그 당시의 굵직한 정치적 사건과 현상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분명하고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깨달음을 ‘소설’이라는 틀 안에서 문학적으로 표현하느라 평생 고민했다.
오웰의 작품들은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그의 정치적 견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전체주의는 단지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으로 대표되는 우익 전체주의나, 러시아의 스탈린주의 같은 좌익 전체주의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통제와 강요를 통해 사람들의 사고와 감정을 완벽하게 지배하려는 정치 형태는 모두 전체주의로 간주했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는 인간을 한낱 기계의 톱니바퀴로 전락시켜 버리는 ‘자본주의’도, 전제 정부의 ‘제국주의’적 야욕도 전체주의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므로 그가 『동물 농장』과 『1984년』에서 비판하려 한 대상에는 스탈린주의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착취 구조, 전체주의의 폭압적인 지배, 권력의 타락 현상까지도 포함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오웰의 작품들은 단순히 ‘반공 문학’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원서가 출간된 지 3년 만인 1948년에 다른 어느 나라보다 한국에서 먼저 번역본이 나온 『동물 농장』, 1948년에 출판되자마자 바로 번역되어 소개된 『1984년』, 이들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시기가 냉전이 막 시작된 1950년대 전후였음을 감안할 때, 그전까지 무명에 가깝던 영국 작가의 작품이 연달아 신속하게 번역되었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실제로 그 당시 미국 국무 장관이던 애치슨(D. G. Acheson, 1893~1971)은 미국 해외 정보국이 오웰의 작품들을 번역하고 배포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전체주의적 폭력을 누구보다도 강하게 비판했던 오웰의 작품이, 또 다른 전체주의라 할 수 있는 반공주의의 선전에 쓰였다는 것은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 내용 확인
1. 『1984년』의 경우처럼 미래 사회의 모습을 독재 권력에 의한 감시 사회 등으로 우울하게 묘사한 문학 작품이나 영화 등을 본 경험이 있다면, 그 예를 들고 그에 대한 감상을 써 보자.
길잡이_ 문학 작품 말고도 <매트릭스>, <브이 포 벤데타>, <이퀼리브리엄>, <아일랜드> 같은 영화들이 그리고 있는 우울한 미래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도 감상을 써 보자.
【224쪽 참조】 결말에서 풍자 문학 특유의 냉소적 기교는 절정에 이른다. 당에서는 윈스턴이 완전하게 세뇌되었음을 확인한 뒤 총살형에 처한다. 그는 오랜 세월에 걸친 자신과의 투쟁을 끝내고, ‘대형’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며 죽어 간다. “그는 대형을 사랑했다.”라는 마지막 문장에서 독자는 조직의 횡포 앞에 개인의 의지와 진실이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깨닫고, 전율에 가까운 공포를 느끼게 된다. 독자로 하여금 언젠가는 이런 사회가 올 수도 있다는 확신과 공포를 갖게 하는 사실성이야말로 이 소설이 지닌 가장 큰 힘이다. 작품을 읽는 내내 독자들은 공포를 느끼는 동시에 자유로운 삶과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해 새삼 인식하게 된다.
이렇듯 미래 사회의 암울한 모습을 통해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1984년』은 인류 미래에 대한 예언서이자 일종의 경고장이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한 고발과 익살의 수준을 넘어선, 사회를 개선하려는 의지의 산물’이라는 풍자 문학의 의의를 새삼 깨닫게 된다.
★ 논술하기
1. 다음 제시문은 앞으로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라 나타날 수도 있는 전체주의적인 지배 현상을 점친 조지 오웰의 미래 소설 『1984년』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 글에서는 언어의 축약, 어휘의 폐기와 축소 및 조작·왜곡이 결국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을 박탈하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오늘날 정보 사회의 진전과 함께 우리의 언어생활에도 이와 매우 유사한 변형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옳은가, 아니면 부정적으로 보아야 옳은가에 대해 본인의 견해를 밝히고, 사례를 들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논술하시오.
윈스턴의 생활 중에 가장 즐거움을 느낄 때는 일할 때다. 일의 대부분은 지루한 것들이지만 때로는 굉장히 어렵고 복잡해서 마치 수학 문제를 풀 때처럼 자신을 잊어버리게끔 하는 일에 걸려들기도 하는데, 그게 ‘영사(INGSOC : England Socialism. ‘영국 사회주의’의 새로운 약어 - 역주)’의 강령에 대한 지식과 당이 자기에게 요구하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추리한 결과만으로 위조를 해야 하는 미묘한 일이다. 윈스턴은 이런 일에 능숙했는데, 가끔 순전히 신어(新語)로 쓰인 <타임스>의 사설을 수정하라는 위촉까지 받았다. 그는 아까 한쪽 옆에 놔두었던 메시지를 펼쳤다.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타임스 83. 12. 3 대형(大兄 : Big Brother) 일일 명령 극불량 무인(無人) 언급 충분 재기(再記) 사전 제출” 이것은 고어(古語), 즉 표준어로는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타임스>지 1983년 12월 3일자에 보도된 대형의 일일 명령(一日命令)에 관한 기사는 극히 불만이며,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이것을 완전히 다시 써서 그 원고를 철하기 전에 고위 당국에 제출하라.” …(중략)… “사전은 어떻게 돼 가나?” 윈스턴이 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럭저럭. 난 형용사를 맡았는데 무척 재미있어.” 사임이 말했다. 그는 신어(新語)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즉시 밝아졌다. 그는 스튜 접시를 밀어 놓더니 섬세하게 생긴 손으로 한 쪽은 빵 덩이를, 다른 쪽은 치즈를 들고 소리가 잘 들리도록 몸을 식탁 쪽으로 기울이고 말했다. “제11판이 결정판이지. 지금 이 신어를 마지막으로 손대고 있는데 그러면 다른 말을 쓰지 않아도 돼. 이 일이 다 끝나면 자네 같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지. 감히 말하네만 자네는 우리의 주된 업무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는 거라고 생각하겠지. 천만에! 우리말을, 하루 수십, 수백 마디 어휘를 없애고 있다네. 뼈만 남도록 잘라 내는 셈이지. 제11판에는 2050년도 전에 없어질 말들은 하나도 수록하지 않네.” 그는 허기진 듯 빵 덩이를 덥석 물고 두어 번 삼키더니 다시 현학적인 정열로 말을 계속했다. 마르고 시커먼 얼굴에는 생기가 돌고 눈에는 비웃는 표정이 없어지고 거의 꿈꾸는 듯 빛나기 시작했다. “말을 없앤다는 건 멋있는 일이야. 물론 버려야 할 말은 동사와 형용사에 많지만 명사도 수백 어(語)는 되지. 없애는 건 동의어뿐이 아니지. 반대어도 있어. 도대체 단어란 게 단순히 다른 말의 반대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 낱말에는 그 자체에 반대어를 포함하고 있네. 예를 들어 ‘좋다(good)’라는 말을 생각해 보게. ‘좋다’라는 말이 있으면 구태여 ‘나쁘다(bad)’는 말이 필요하겠나? ‘안 좋다(ungood)’로 충분하지. 아니 오히려 그게 다른 말보다 더 정확한 반대어라 할 수 있지. ‘좋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때 ‘훌륭하다(excellent)’느니, ‘멋있다(splendid)’느니 하는 따위의 말들이 필요할까? ‘더 좋다(plusgood)’라는 말이면 충분하고, 그걸 더욱 강조하고 싶으면 ‘더욱더 좋다(double plus good)’로 하면 되지. 물론 이런 형태의 단어를 이미 쓰고는 있지만 신어 사전 최종판에서는 이 말 한마디만 남을 걸세. 결국 좋다는 것과 나쁘다는 것에 대한 모든 개념은 다만 여섯 개의 낱말로, 실제로는 단 하나의 말로 표현되는 거지. 멋있지 않나. 윈스턴? 물론 이건 애초에 대형의 아이디어야.” …(중략)… 사임은 흑빵을 한입 뜯어 씹고는 말을 계속했다. “신어의 목적이 사고의 폭을 줄이는 것이란 걸 알고 있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思想罪)’도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만들 거야. 왜냐하면 그걸 표현할 말이 없어질 테니까. 필요한 개념은 단 한마디 말로 표현되며, 그 말은 정확히 정의되어 다른 곁뜻은 없어져 버리고 말지. 제11판에서 우리는 벌써 그 정도로 해 놓았어. 그러나 그 과정은 자네나 내가 죽고 난 뒤에도 계속될 거야. 한 해 한 해 어휘는 줄어들고 그럴수록 의식의 한계도 좁아지겠지. 물론 지금에도 사상죄에 대한 이유나 구실이 있을 수 없지. 그것은 단순히 자기 훈련이나 현실 통제를 못하기 때문이야. 그러나 결국 그나마 필요 없게 돼. 혁명은 언어가 완성될 때 완성돼. 신어는 영사고, 영사는 신어야.” 그는 은근히 만족한다는 듯 덧붙였다. “늦어도 2050년까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가?” …(중략)… “2050년까지는, 아마 그전이 되겠지만, 구어(舊語)에 대한 지식은 모두 사라질 걸세. 모든 과거의 문학도 없어지고, 초서, 셰익스피어, 밀턴, 바이런, 이들은 다만 신어역(新語譯)으로만 남을 거네. 그것도 다른 말로 바뀐다는 정도를 지나, 원래의 의미와 반대되는 것으로 변할 거야. 당의 문학까지 변할 거야. 슬로건까지 변할 거야. 자유의 개념이 없어졌는데, ‘자유는 예속’이란 슬로건이 있을 수 있겠나? 모든 사상적 분위기도 변할 걸세. 실상,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란 없어져 버릴 걸세. 정통주의는 생각하는 것, 생각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야. 무의식 바로 그거야.” |
길잡이_ 2000학년도 중앙 대학교 정시 모집 논술 고사에 출제된 문제다. 제시문에 나타나 있는 미래 사회의 전체주의적인 모습에 얽매이기보다는, 논제의 요구대로 ‘현재 우리 사회의 인터넷상에서의 언어생활에 대하여 긍정적·부정적 입장을 정하고, 그에 맞게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서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다음 제시문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에서 지식과 정보를 대하고 활용할 때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에 관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1974년부터 미국의 민권 연맹은 『프라이버시 연보』를 출간하기 시작했다. 프라이버시가 “다른 사람한테 방해를 받지 않고 혼자 있을 권리”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자신이 통제할 권리”라고 새롭게 해석된 때도 컴퓨터 데이터베이스가 개인의 정보 통제권을 현저히 위협한다고 간주되던 1960년대였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폐쇄 카메라, 신용 카드 같은 전자 결제 수단 등의 다양한 정보 수집 형태가 감시 통제 방법으로 널리 사용되었고, 이제 사람들은 정부나 기업이 개인의 신상 정보를 수집하거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일들에 민감해졌다. 사람들은 정보 사회가 ‘정보 감옥(information prison)’을 낳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 정보 감옥은 바로 “잠자고 있건 깨어 있건, 일하고 있건 쉬고 있건, 욕실에 있건 침대에 있건” 감시를 당한다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년』의 이미지와 동일시되었다. 정보 감옥은 바로 다름 아닌 ‘정보 파놉티콘’ 또는 ‘전자 파놉티콘’이었다. “국가적 컴퓨터 시스템의 도입으로 인하여 감옥뿐만 아니라 일상의 공간도 파놉티콘과 흡사한 것”이 되었고, 사람들은 “이 전자 파놉티콘에 갇혀 버리는 신세가 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 홍성욱, 『파놉티콘 - 정보 사회 정보 감옥』에서
[참고] 파놉티콘(Panopticon) :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1791년에 고안한 원형 감옥. |
길잡이_ 2006학년도 숙명 여자 대학교 수시 2학기 모집 논술 고사 문제를 변형한 것이다. 정보화 시대의 지식과 정보의 독점과 감시 체제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유지하면서 구체적 사례를 곁들이면 좋을 것이다. 재작년에 화제의 초점이 되었던 교육부의 교육 행정 정보 시스템(NEIS) 설치, CCTV를 이용한 몰래 카메라, 도청 문제 등을 활용할 수도 있고, 인터넷에서의 정보 관리 실패로 인한 개인 정보 유출, 전자 주민 카드제 등을 다루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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