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명작을 찾아서 가이드북
모파상의 『비계 덩어리』
권장 수업 시간 : 2교시(100분)
대상 도서 : 고교독서평설 5월호 「세계 명작을 찾아서」
참고 자료 : 모파상 지음, 전혜경 옮김, 「모파상 단편선」(혜원 출판사)
김병걸 지음, 「문예 사조 그리고 세계의 작가들」(두레)
학습 목표 : ① 『비계 덩어리』가 쓰인 시대적 배경을 알고, 이것이 모파상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본다.
② 이 작품의 제목인 ‘비계 덩어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모파상이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제시할 수 있다.
집필자 : 하남석_ 유레카 논술·구술 연구소 강사
★ 들어가는 글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표현하는 데는 단 하나의 낱말밖에는 없고, 그 움직임을 보이는 데는 단 하나의 동사밖에 없으며, 그것을 수식하는 데는 단 하나의 형용사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마침내 단 하나의 그 낱말, 그 동사, 그 형용사를 발견할 때까지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어려움을 피하려고 비슷한 것으로 만족하거나 잔꾀를 써서는 안 되며, 게다가 말〔言〕의 기교를 부리거나 해서는 안 된다.”
최고의 단편 소설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모파상이 자신의 창작 태도를 이야기하며 남긴 말이다. 모파상의 말처럼 그의 문체는 간결하고 정확하며, 그의 작품은 평범해 보이는 일상적 소재에서도 깊은 사유를 이끌어 내는 작가의 맑은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모파상의 첫 작품인 『비계 덩어리』는 자연주의적 수법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전쟁의 와중에 몸을 파는 여성을 중심으로 드러나는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풍자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인간의 순수성이 사회적 지위나 계급에 따라 어떻게 평가되고 절하되는지를 고발하고 있다.
★ 심화 자료
모파상의 생애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은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디에프 근교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잦은 의견 대립과 싸움을 반복하다가 그가 열두 살이 되던 해에 별거에 들어갔다. 따라서 모파상과 동생 엘베는 어머니와 함께 노르망디 에트르타에 있는 어머니의 별장에서 살게 되었다. 모파상은 이곳에서 자연과 벗하며 자유 분방한 소년 시절을 보냈다.
별장 생활을 시작한 이듬해, 모파상은 이브토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이 학교는 주로 귀족, 부호, 지주의 자제 들이 입학하는데다 분위기가 엄숙하고 철저한 종교 교육을 실시했기 때문에, 자유 분방한 성격의 모파상은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2년 만에 학교를 중퇴하고 루앙에 있는 리세 고등 중학교의 기숙생이 되었다.
그 시절 모파상은 어머니의 어린 시절 친구였던 루이 부이예에게 시 창작 지도를 받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모파상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수많은 흥미진진한 문학 작품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문학에 매우 관심이 많았고 재능도 있었다. 모파상의 문학적 재능을 인정한 부이예는 그를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1880)에게 소개해 주었고, 그 뒤 모파상은 플로베르에게 문학 수업을 받게 되었다.
1869년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한 모파상은 파리에서 법대에 진학할 계획이었지만, 공교롭게도 그 이듬해에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발발하여 유격대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전했다. 그러나 프랑스군이 패배하게 되면서, 모파상은 패잔병 속에 섞여 비참한 후퇴를 감내해야 했다.
이때의 경험은 그의 출세작인 『비계 덩어리』에 형상화되었으며, 여러 편의 소설에 중요한 동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또 이 경험은 그를 열렬한 애국자로 만들었고, 한편으로는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근원적인 혐오감을 갖게 하였다.
1871년 11월 제대하여 돌아온 모파상은 전쟁의 비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학에 전념할 결심을 굳혔다. 파리에서 그는 해군성·문부성 등에서 근무하며 박봉에 시달리고 공무원 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와중에도, 플로베르에게 자주 창작 지도를 받곤 했다. 플로베르는 모파상을 격려하기도 하고 꾸짖기도 하면서 그에게 문학으로의 길을 열어 주었다.
플로베르는 그에게 작품을 쓸 때는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관찰하는 것’을 중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곧 세계는 선험적으로 통일성을 부여받고 존재하는 신비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하고 냉철한 관찰과 과학적 분석을 통해 그 대상이나 상황에 가장 적합한 언어로 작품을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로베르는 이렇듯 사실주의적인 창작을 중요시하였고, 모파상은 그의 가르침 덕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소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삶의 진실과 인간성의 근원을 탐색하는 뛰어난 작품들을 창작할 수 있었다.
이 무렵 모파상은 플로베르의 집에서 에밀 졸라(Émile Zola, 1840~1903)와 만나 우정을 쌓기도 했다. 졸라는 날로 부패해 가는 사회를 문학적으로 고발하기 위해 그 부정적인 단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소설을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파상에게는 신선한 충격이 되었다.
모파상을 엄격하게 자연주의 작가라고 칭할 수는 없지만, 문학사에서 그는 자연주의 계열의 작가로 분류되곤 한다. 이는 그의 작품이 세계를 엄격히 관찰하고 인간의 본질을 폭로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으로, 여기에는 졸라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1876년 모파상은 심장 장애를 일으키는 등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모파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때의 발병을 두고 유전적인 정신 질환에 후천적인 매독이 합병증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모파상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매독에 걸렸고, 이는 그가 젊은 시절 얼마나 방탕한 생활을 했는지를 보여 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지만 이 무렵부터 그는 잡지에 평론을 발표하고, 졸라를 중심으로 한 자연주의 그룹에도 참여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였다.
1880년 그들이 모여서 낸 『메당의 저녁』이라는 합동 작품집에 중편 『비계 덩어리』를 발표하면서, 모파상은 작가로서의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그의 스승인 플로베르도 이 작품을 보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곧 이어 그는 유력 일간지에 글을 기고하는 등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비계 덩어리』를 발표한 다음 해인 1881년에는 최초의 단편집인 『테리에 집』을 간행하였고, 신문과 잡지 등에 수십 편의 단편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아프리카 여행 직후에는 두 번째 단편집인 『피피 양』을 출판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 당시 문단에서는 모파상을 ‘젊은 자연주의 작가’로 여기며 많은 논의를 하였는데, 그의 작품은 찬사와 비판이 엇갈리는 가운데 굉장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883년에는 수년간 구상해 온 장편 소설 『여자의 일생』을 발표하여 큰 호평을 받는 동시에,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하였다.
이렇게 놀라울 만큼 정력적으로 창작 활동을 함으로써 모파상은 부와 명예를 얻었다. 하지만 인생의 목표가 달성되자 그는 또다시 허탈감과 권태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생활은 건강의 악화를 가져와, 모파상은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흥분제와 마취제를 사용했지만 상태가 호전되기는커녕 우울증까지 앓게 되었다. 환청이나 환각 현상, 심지어는 언어 장애까지 나타나자 1892년에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때의 자살 소동은 미수로 그쳤지만 그는 파리의 정신 병원에 수감되었고, 결국 1893년 7월 6일 마흔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모파상은 10년 남짓한 짧은 작가 생활 동안 시집 1권, 희곡 3편, 기행문 3편, 평론 2편, 장편 소설 6편, 단편 소설 300여 편 등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겼다. 이는 곧 그가 삶의 모든 에너지를 문학에 바쳤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19세기 프랑스와 모파상의 작품 세계
모파상이 작품 활동을 했던 19세기 후반의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Napoléon Ⅲ, 1808~1873)의 제2제정에서 제3공화국으로 넘어가는 동시에, 프로이센과 전쟁을 벌이고 ‘파리 코뮌’❶이 수립되는 등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다. 또 시민 혁명과 산업 혁명이라는 자본주의의 징후들이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을 형성한 시대였으며, 새로운 물질적 토대와 계급의 출현으로 정치적으로도 혼란이 거듭되던 시기였다. 이는 문학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 시기에는 현실적으로 득세하고 있던 부르주아 계급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사실주의’, 자본주의의 초기 단계에서 드러난 갖가지 사회적 병폐와 인간 소외 현상을 노골적으로 폭로하고 고발하는 ‘자연주의’, 현실의 거대한 힘 앞에서 그것을 부정하면서도 무기력함을 드러내는 ‘허무주의’가 등장하고 서로 융합되는 등 복잡한 양상을 보여 주었다.
모파상의 할아버지가 로렌 지방에서 노르망디로 이주한 귀족이었고, 아버지 귀스타브가 평범한 시골 신사였음을 볼 때, 모파상의 집안은 사회적 변화에 민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에 귀족이 누리던 명예와 권위는 이제 ‘돈’의 힘에 의해 축출당하는 때였으므로, 귀족들은 현실을 쫓아서 기존의 이권을 이용해 자본가로 탈바꿈하든지, 아니면 몰락해 가든지 양자택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모파상의 집안 역시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적응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전체의 급격한 변화는, 모파상이 현실을 치밀하게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의 삶과 문학 속에 깊이 새겨진 사회적 변화의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곧 모파상은 자신의 작품에서 그 당시 프랑스 사회의 풍속도를 자세히 그려 내고 있다. 게다가 작품들의 주제가 대체로 남녀 간의 애정 이야기, 전쟁·살인·자살·복수 등과 관련된 잔인한 이야기, 사생아를 대상으로 한 부자 이야기, 탐욕·금전에 관한 이야기, 발광·공포·환각 등을 다룬 괴이한 이야기 등인 것도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그의 날카로운 필치, 절묘한 구성, 생동감 있는 인물들, 예술성과 통속성의 교묘한 통일은 점차 파편화되고 분열되어 가는 세계 속에서, 여기에 대응해 나가는 문학의 전형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당시 이미 과거의 권위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저속하고 품위 없는 문화 현상이 근대적인 의미의 대중문화로 자리를 굳혀 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세계를 문학적으로 반영하는 형식과 틀도 이러한 전반적인 문화의 추세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모파상의 작품들은 바로 이러한 특징을 전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 수업 활동
터 잡기
1. 이 작품의 제목인 ‘비계 덩어리’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 이 작품의 제목인 ‘비계 덩어리’는 주인공의 별명이다. 이는 그녀의 살찐 외모를 비유하는 것이기도 하며, 피난 가던 동족들에게 희생양으로, 남성 욕망의 일시적인 소모품으로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주인공의 운명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반어적으로 그녀를 이용하고도 도리어 비난하는 주변 인물들을 비꼬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길잡이_ 작품의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작품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형상화되는지 작품 속의 인물들의 분석을 통해 이해해 볼 수 있도록 한다.
【213쪽 참고】 이렇듯 작품 속에서 귀족과 부유한 상인, 수녀 등은 겉으로는 고상한 척하지만 실은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거나 거짓말을 하는 등 추악한 이기심으로 가득 찬 인간들이다. 그들에 비하면, 모두가 경멸하는 일을 하지만 순수한 마음을 지닌 불 드 쉬프가 훨씬 훌륭한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하층민인 그녀의 참모습을 알아주지 않는다. 몸이 뚱뚱하다고 해서 ‘비계 덩어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녀. 하지만 정작 쓸모없고 보기 흉한 비계 덩어리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건 그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아닐까.
2. 『비계 덩어리』의 시대적 배경인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대하여 알아보자.
→ 프로이센의 지도 아래 통일 독일을 이룩하려는 비스마르크(O. E. L. von Bismarck, 1815~1898)의 정책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의 정책이 충돌해 일어난 전쟁이다.
1870년 7월 프로이센의 왕가(王家)인 호엔촐레른가의 왕자 레오폴드가 에스파냐 왕위에 오르게 되자, 나폴레옹 3세는 이를 강경히 반대하였다. 이 문제로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관계가 악화되자, 프랑스 대사 베네데티는 독일 중부 헤센(Hessen)에 있는 온천장인 엠스(Ems)에 방문하여 프로이센의 황제인 빌헬름 1세(Wilhelm Ⅰ, 1797~1888)와 회담하였다. 이때 회담 내용은 베를린에 있던 프로이센의 총리인 비스마르크에게 전보(電報)로 알려졌다.
그런데 독일 통일을 위해서는 프랑스의 간섭을 배제해야 된다고 판단한 비스마르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기를 원했던 그는 프랑스 대사가 프로이센 국왕을 모욕했다는 인상을 주는 내용으로 전보를 고친 뒤, 이를 신문에 발표했다. 이러한 엠스 전보 사건은 이를 조작한 비스마르크의 의도대로 프로이센 국민을 격앙케 하여 프랑스에 대한 강경론으로 기울어지게 만들었고, 이 때문에 프랑스 측도 프로이센에 대한 개전론이 강해짐으로써 1870년 7월 19일 프랑스가 먼저 선전 포고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군비가 우세한 프로이센은 북독일 연방 제국뿐만 아니라 남독일 제국의 지지까지 얻어 병력을 더욱 증강한 뒤, 참모 총장 몰트케의 작전에 따라 프랑스로 쳐들어갔다.
전황은 프로이센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여 9월 2일 나폴레옹 3세는 프로이센군에게 항복하였다. 하지만 프로이센군은 계속 다시 진격해 파리를 포위하고, 파리에서는 공화제 국방 정부가 조직되어 프랑스 국민은 더욱 완강하게 독일군에 저항하였다. 결국 9월 말에 스트라스부르, 10월 말에는 메츠가 함락되자 파리도 1871년 1월 28일 마침내 성문을 열고 말았다.
길잡이_ 작품의 배경이 되는 중요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작품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 다음 지문들은 『비계 덩어리』 평설에서 발췌한 것이다. 알맞은 단어로 괄호 안을 채우시오.
3. 모파상은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 플로베르에게 작가 수업을 받은 뒤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인 에밀 졸라의 뒤를 이어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을 완성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는 모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둔 문학의 한 유파였다. 그러나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와 달리, 인간의 행위는 ( ① )과 ( ② )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여겼다. 인간은 자신이 나고 자란 환경, 현재 자신이 놓인 환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것이 자연주의 작가들의 생각이다.
→ (212쪽 참고) ① 환경 ② 유전
4. 자연주의 문학을 지지한 모파상도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 했다. 그러나 졸라가 과학적 방법에 의존해 작품을 ( ① )의 대상으로 삼아 모든 환경과 인물을 ‘설정’했던 것과 달리, 모파상은 현실에서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다. 또 그는 졸라와 달리 유전의 영향을 중시한 자연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되 좀 더 절실하고 진실한 영상을 그려 내는 것”이 그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 제도의 모순과 인간의 ( ② ), 헛된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에 고통받는 인물들,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생명력을 지닌 인물을 통해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비계 덩어리』는 이런 모파상의 작가적 역량이 매우 잘 드러난 작품이다.
→ (212쪽 참고) ① 과학 실험 ② 허위 의식
5. 이처럼 날카로운 현실 비판과 풍자가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독자들은 작품 속에서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다. 모파상은 직접 작품에 ( ① )하여 인물들을 비판하거나 그들의 심리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녀는 몹시 슬펐다.”라든가 “그들은 결코 훌륭한 인간이라 할 수 없었다.”라는 식으로 작가가 나서서 말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그는 매우 담담하게 객관적인 눈으로 대상이 되는 사건과 상황을 자세히 보여 주기만 한다. 그렇다고 해서 독자들이 인물의 심리를 짐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치밀한 상황 묘사를 통해 독자들은 얼마든지 등장인물들이 지금 어떤 심정일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곧 모파상은 작가가 직접 나서서 모든 것을 말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 ② )을 막으면서, 간접적으로 인물의 심리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한 객관적인 태도 때문에 오히려 독자들은 별 거부감 없이 그의 소설에 빠져 들 수 있다.
→ (213~214쪽 참고) ① 개입 ②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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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음 세 이야기 속의 주인공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역할의 특징을 분석하고, 그 사회적 기능과 의미를 다양한 측면에서 토론해 보자.
(가) 자세히 들어 보니, 목 어울러(여럿이 조화를 이루어 한 덩어리가 되어) 외는 소리,
“나이 십오 세요, 얼굴이 일색이요, 만신에 흠 없고, 효열 행실 가진 여자 중가(重價, 비싼 값) 주고 사려 하니, 몸 팔 이 누가 있소.”
크게 외치고 지나거늘, 심청이 반겨 듣고 문전에 썩 나서며,
“외고 가는 저 어른들, 이런 몸도 사시겠소.”
저 사람들 이 말 듣고 가까이 들어와서 성명 연세 물은 후에, 저 사람들 하는 말이,
“꽃 같은 그 얼굴과 달 가득 그 나이가 우리가 사 가기는 십분 마땅하거니와, 낭자는 무슨 일로 몸을 팔려 하나이까?”
심청이 대답하되,
“맹인 부친 해원(解寃, 마음에 맺힌 원한을 풂)키로 이 몸을 팔거니와, 이 몸을 사 가시면 어디 쓰려 하십니까?”
“우리는 선인이라, 남경 장사 가는 길에 인당수 용왕님은 인제수(人祭需, 사람 제물)를 받는 고로 낭자의 몸을 사서 제수(祭需)로 쓸 터이니 값을 결단하옵소서.”
“더 주면 쓸 데 없고 덜 주면 부족하니, 백미 삼백 석을 주옵소서.”
…(중략)…
두 손을 합장하고 하느님 전 비는 말이,
“도화동 심청이가 맹인 아비 해원키로 생목숨이 죽사오니, 명천(明天)은 굽어 보사 캄캄한 아비 눈을 불일내(不日內, 며칠 안)에 밝게 떠서 세상 보게 하옵소서.”
빌기를 다한 후에 선인들 돌아보며,
“평안히 배질하여 억십만 금 이문을 내어 고향으로 가올 적에, 도화동 찾아 들어 우리 부친 눈 떴는가 부디 찾아보고 가오.”
뱃머리에 썩 나서서 만경창파(萬頃蒼波)를 제 안방으로 알고 ‘풍’ 빠지니, 잠깐 사이에 바람이 삭아지고 물결이 고요하니, 사공들 하는 말이,
“풍숙 낭정(風肅浪靜, 바람이 잠잠하고 물결이 고요함)하기는 심 낭자의 덕이로다.”
술·고기 나눠 먹고, 삼승 돛 곧 채어 양편 갈라 떡 붙이고 남경으로 향하니라.
- 신재효 본, 〈심청가〉
(나) 아리스티데스가 처음에는 ‘정의로운 사람’이란 별칭까지 들으며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는데, 뒤에 와서 미움을 받게 된 까닭은 테미스토클레스가 민중에게 아리스티데스는 사사로이 모든 소송 사건을 심리 판결해 재판의 공식성을 없앴으며, 호위병이 없다 뿐이지 독재를 남모르게 행하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민중도 그 즈음에 와서는 승전국의 국민으로 교만한 마음이 생겨 자기네들보다 높은 지위와 명예를 가진 사람의 명성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각지에서 시내로 모여들어 그의 명성에 대한 질투심을 감추고, 아리스티데스가 왕이 되려 한다는 미명 아래 패각 투표를 실시해서 그를 추방했다. 이렇게 아리스티데스를 탄핵한 그들은 자신들의 명예에 대한 시기심을 독재 정치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말했다.
패각 투표는, 범죄를 벌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의 권력이나 명망이 너무 커지는 것을 눌러서 꺾어 놓는 일을 듣기 좋게 명명한 것에 불과하다. 질투의 자위책치고는 과격하지 않은 방법으로, 상대에 대한 적개심이 돌이킬 수 없는 일(사형)에 이르지 않게 하고, 10년 동안만 다른 지방에 나가 살게 하는 것이다.
…(중략)…
패각 추방의 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각자 조개껍질에 추방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써서 공회장(민중의 회합 등에 쓰기 위해 지은 집)에 판자로 설치한 곳에 던져 넣는다. 그러면 장로들이 그것을 한데 모아 그 수를 헤아려 투표자가 6천 명 미만이면 그 투표는 무효로 처리한다. 거기에 적힌 이름은 각각 분류하여 표가 가장 많이 나온 사람을 10년 동안 추방한다고 발표하는데, 그의 재산은 자유로이 사용하게 한다.
아리스티데스 추방 투표 당시, 사람들이 조개껍질에 추방할 사람의 이름을 적었는데, 한 문맹자는 아리스티데스에게 조개껍질을 내밀며 그가 아리스티데스인 줄도 모르고 아리스티데스의 이름을 써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리스티데스는 짐짓 놀라며, 그가 당신에게 무슨 피해라도 입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니오, 나는 그를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곳곳에서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떠드는 것이 듣기 싫어 그럽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아리스티데스는 아무 말 없이 조개껍질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주었다. 이윽고 추방되어 아테네 시를 떠날 때, 그는 두 손을 높이 들어 아킬레스와는 반대로 이렇게 기도했다.
“이 땅의 민중이 아리스티데스를 다시 생각할 정도의 불행이 아테네에 생기지 않게 해 주소서.”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다) 그 이튿날은 아침 여덟 시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마차 안이 포장에 눈을 잔뜩 뒤집어쓰고, 말도 마부도 없이 쓸쓸하게 마당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외양간이며, 꼴 곳간이며, 마구간을 다 찾아보아도 마부는 없었다. 그래서 남자들은 그 근처를 뒤져 보기로 결정하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내 마을의 술집에서 그 장교의 연락병과 의좋게 테이블에 앉아 있는 마부를 사람들은 발견했다. 백작이 그에게 물었다.
“여덟 시에 말을 매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던가.”
“그럼요. 그러나 그 후에 또 딴 명령을 받았습죠.”
“무슨 명령이야?”
“말을 매지 말라고요.”
“누가 그런 명령을 했나?”
“보나마나 프로이센군 소령이겠죠.”
“왜?”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가서 그분한데 물어보십시오. 저는 말을 매지 말라기에 그랬을 뿐입죠. 그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장교를 만나려고 했다. 세 신사가 이층으로 올라가자, 그 여인숙에서 제일 좋은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거기서 장교는 그들을 맞아들였다.
“왜 그러시오?”
백작이 대표로 대답했다.
“우리는 떠나야겠는데요.”
“안 돼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내가 싫으니까… 그뿐이오… 내려가시오.”
세 사람은 모두 머리를 숙인 채 물러났다.
그날 오후는 비참했다. 그들은 그 독일인의 변덕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식탁에 앉으려 할 때, 폴링뷔 씨가 다시 나타나서, 가래가 끓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프로이센 장교님이 엘리자베스 루세(비계 덩어리) 양에게 아직 생각을 바꾸지 않았느냐 물어보랍니다.”
‘비계 덩어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서 있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얼굴이 진다홍 빛이 되더니 하도 화가 치밀어서 말을 하지 못했다. 마침내 그 여자가 소리를 쳤다.
“그 더러운 짐승 놈한테, 그 멍청이한테, 그 징그러운 프로이센 놈한테 가서 말하세요. 절대로 나는 말을 안 듣겠다고, 알겠어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말이에요.”
뚱뚱한 여인숙 주인이 나갔다. 그러자 사람들은 ‘비계 덩어리’를 둘러싸고 물었다. 그가 찾아온 내막을 밝혀 달라고 졸라 댔다. 그 여자는 처음에는 거절하더니 이윽고 분노에 사로잡혀 외쳤다.
“그놈이 뭣을 원하느냐구요? 그놈이 뭘 원하는지 정말 알고 싶어요? 그놈이 나하고 자고 싶대요!”
모두들 그 소리를 듣고 기가 막혔다. 그리고 분노에 치를 떨었다.
오후에 백작 부인이 산보나 하자고 권했다. 그러니까 백작은 기분이 내켜서 그러는 듯, ‘비계 덩어리’의 팔을 끼고 그 여자와 함께 딴 사람들보다 뒤떨어져서 걸어갔다. 그는 그 여자에게 어버이다우면서도 약간 경멸 섞인 어조로 정답게 말을 했다. 그는 그 여자가 자기들에게 베풀어 줄 도움을 찬양했고, 자기들이 얼마나 감사할지 모른다는 말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여자에게 허물없는 말투로,
“그렇지 않아? 이봐 그 녀석이 아마 제 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미인을 알았다고 자랑할지도 모르지.”
‘비계 덩어리’는 아무 대답도 안하고, 앞에서 거니는 사람들 축에 가서 끼었다. 여인숙으로 돌아오자 그 여자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불안이 극도에 달했다. 만약 그 여자가 계속해서 저항하면 그 무슨 난처한 일이냐! 저녁 식사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사람들은 그 여자를 기다렸으나 허사였다. 그때 폴링뷔 씨가 들어와서 루세 양은 몸이 불편해서 저녁 식탁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알렸다. 모두들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백작이 그 여인숙 주인에게로 다가서며 아주 낮은 소리로 물었다.
“잘됐소?”
“네.”
그는 일행에게 아무 말도 안하고 단지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서 안도의 큰 한숨이 새어 나오고 얼굴에는 희열이 넘쳤다.
그 이튿날, 마침내 말을 매어 단 역마차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희색이 만면한 여행자들이 나머지 여정을 위하여 서둘러서 음식을 싸게 하고 있었다. 이제는 ‘비계 덩어리’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 여자가 나타났다. 그 여자는 약간 거북하고, 부끄러운 듯이 보였다. 그래도 일행 쪽으로 멋쩍은 걸음걸이를 옮겼으나, 모두들 일제히 그 여자를 보지 못한 양 돌아서 버렸다. 백작은 위엄을 갖춰 자기 부인의 팔을 잡고, 그 더러운 여자와의 접촉을 피하도록 데려갔다. 사람들은 마치 그 여자가 치마 밑에 무슨 전염병이라고 가지고 오기나 한 것처럼 그 여자를 멀리하는 것이었다.
- 모파상,『비계 덩어리』에서 발췌·축약
→ 문제의 요구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이야기 속의 세 주인공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역할의 특징을 찾아내는 것이고, 둘째는 그 사회적 기능과 의미를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하라는 것이다.
(가)는 〈심청전〉에서 뽑은 것으로, 심청이 남경으로 장사하러 가는 선인(船人)들에게 몸을 파는 장면이다. 이때 심청은 아버지 심 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을 봉은사로 보내고, 자신은 인당수의 제물로 바쳐진다. “효열과 행실을 가진” 여자인 심청이가 인당수에 뛰어들자, “바람이 삭아지고 물결이 고요해”져서 남경으로 가는 선인들은 안전한 항해를 계속할 수 있게 된다.
(나)는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46?~120?, 고대 로마의 그리스 인 철학자·저술가. 플루타크는 영어식 표기임)의 『영웅전』❷에서 발췌한 것으로 ‘정의로운 사람’ 아리스티데스가 민중의 패각 투표로 추방당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민중의 독재 정치에 대한 두려움’과 ‘질투심’으로 인해 추방당하였고, 이로써 사회적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다)는 모파상의 『비계 덩어리』에서 발췌한 것으로, 루세(비계 덩어리) 양이 프로이센 장교에게 몸을 허락하여 나머지 여행자들의 안전을 보장받게 해 준다는 내용이다.
사회는 사회 구성원의 역할에 따라 구조화·조직화되는데, 사회 전체 구조의 안정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구성원 개인은 희생을 강요받기도 한다. 이 세 편의 제시문에 나오는 주인공들 역시 희생을 강요받고 있다. 곧 이들의 사회적 역할은 ‘희생양’인 것이다. 그런데 그 희생의 의미가 대의(大義)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마녀 사냥’식으로 공동체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희생은 글 (나)와 (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결코 동정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희생양’의 의미를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라는 문제의 요구에 맞추어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되, 그것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에서 다루면 무난할 것이다. 긍정적 측면으로는 개인의 희생이 공동체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것이 좋을 듯싶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회든지 통일성과 안정성을 도모하는 경우, 적절한 ‘희생양’을 내세워 민중의 불안을 해소시킴으로써 사회 구조의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불안 의식은 사회의 평화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정적 의미로는 개인의 권리와 인권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면 된다. 심청이나 아리스티데스, 비계 덩어리처럼 아무 죄 없이 전체를 위해서 개인은 희생되어도 좋다는 논리는 개인의 이익을 존중하는 현대 사회에서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개인의 권리가 이렇게 무시되는 획일화된 사회는 겉으로는 일사불란하고 통일되어 보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길잡이_ 이 문제는 1999년 연세 대학교 정시 논술 문제다. 학생들이 각 제시문에 나타난 주인공들의 공통적인 역할을 잘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지도한다. 또 제시문 분석에 그치지 않고, 전체를 위한 희생양의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사례 등을 통해 비판적인 토론을 유도한다.
【212~213쪽 참고】 『비계 덩어리』의 주인공인 불 드 쉬프(비계 덩어리)는 몸을 파는 여자로, 뭇 사람들의 멸시를 받는 인물이다. 그녀와 같은 마차에 타게 된 사람들은 부유한 상인과 귀족, 고상한 수녀들, 그리고 공화주의자이다. 일행은 모두 불 드 쉬프를 멸시하지만, 사실상 그들 가운데 누구도 그녀만큼 겸손한 마음과 애국심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일행이 잠시 쉬려고 어느 마을에 머물게 되었을 때 문제가 생긴다. 그곳을 점령하고 있던 프로이센 장교가 그들을 억류한 것이다. 장교가 불 드 쉬프를 원한다는 것을 안 사람들은 이윽고 본색을 드러낸다. 순수한 애국심을 지닌 불 드 쉬프는 적국의 장교를 거부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에게 애국심과 희생 정신을 강요해 억지로 그녀를 장교의 방에 들어가게 한다. 결국 그녀 덕분에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목적을 이룬 사람들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불 드 쉬프를 더러운 병균 취급하며 경멸한다.
이렇듯 작품 속에서 귀족과 부유한 상인, 수녀 등은 겉으로는 고상한 척하지만 실은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거나 거짓말을 하는 등 추악한 이기심으로 가득 찬 인간들이다. 그들에 비하면, 모두가 경멸하는 일을 하지만 순수한 마음을 지닌 불 드 쉬프가 훨씬 훌륭한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하층민인 그녀의 참모습을 알아주지 않는다. 몸이 뚱뚱하다고 해서 ‘비계 덩어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녀. 하지만 정작 쓸모없고 보기 흉한 비계 덩어리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건 그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아닐까.
결국 이 소설에서 모파상이 날카롭게 비판하는 대상은 허위 의식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이중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나아가, 사회적 지위와 부의 정도에 따라 인권과 인격까지 차별당하는 모순된 사회 구조도 함께 비판하고 있다.
마무리하기
1. 『비계 덩어리』를 쓴 모파상의 의도는 무엇인지 토론해 보자.
→ 모파상은 여성 문제가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의 모순의 매듭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현실에 대한 정확한 관찰을 토대로 이를 신랄하게, 그리고 회의적으로 고발한 작가 가운데 하나다. 전쟁 때 적국인 프로이센 장교에게, 그리고 같이 피난 가던 동족들에게 희생양으로, 그리고 남성 욕망의 일시적인 소모품으로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비계 덩어리’를 통해 그 당시 프랑스 사회의 모순과 인간의 허위 의식을 폭로하고 있다.
길잡이_ 작가가 작품을 쓴 의도를 파악하고 그 의도에 대하여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토론을 유도한다.
【211쪽 참고】 『비계 덩어리』는 그가 프랑스 문학계와 스승 플로베르에게 실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모파상 자신이 스무 살 때 참전했던 전쟁의 경험과 기억을 되살려 쓴 것으로, 인물의 심리 변화와 상황 전개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면서 그 당시 프랑스 사회의 모순과 인간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고발하고 풍자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 파리 코뮌_ 1871년 3월 18일부터 5월 28일 사이에 파리의 시민·노동자들의 봉기로 세워졌던 파리의 혁명적 노동자 정권을 말한다. 1871년 1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가 프로이센과 굴욕적인 휴전 협정을 맺자, 파리 시민들은 이에 반발하며 항전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은 시청을 점거하고 ‘중앙 위원회’를 결성한 뒤 코뮌(인민 의회)을 성립했다. 하지만 코뮌이 세계 최초로 노동자 정부를 수립한 뒤 분주한 틈을 타, 프로이센과 결탁한 정부군은 5월 21일 파리로 진격하였다. 그리하여 ‘피의 일주일’이라는 7일간의 시가전 끝에 코뮌은 붕괴하고, 3만 명에 이르는 시민이 목숨을 잃었으며, 많은 사람이 처형 또는 유형을 당하였다.
2. 『영웅전』_ 플루타르코스가 쓴 책으로, 테세우스·로물루스, 알렉산드로스·카이사르, 데모스테네스·키케로와 같이 그리스와 로마의 정치가로서 서로 유사한 점이 있는 인물들을 대비해 가면서 서술하고 있다. 23조(組), 곧 46명의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각 조의 끝에는 두 인물을 비교 평론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밖에 4명의 전기가 별도로 실려 있다. <출처: 독서평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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