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발단 - 나는 인간성이 나쁘다
싸웠다.
어떤 글을 두고 ‘그런 것도 시라고 하나?’ ‘시 같지도 않은 시’라고 해서였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결론적으로 보자면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정말 안하무인이고 남을 무시하는 인간성 나쁜 사람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글짓기를 해서 상을 받았다. 그 이후 줄곧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장래 희망에 한 번도 작가라고 쓴 적은 없다. 책을 읽으면서 독후감보다는 ‘나도 이런 책을 쓸 수 있었으면’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문학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 뛰던 학창 시절이 있었지만 문학 밖으로 나온지가 까마득하다. 스물 몇 살 때부터 십수 년을 문학 주위에서 맴돌다가 현실을 직시하고 그쪽으로 눈도 돌리지 않은지가 오래 되었다. 서른에서 마흔 즈음이었나? 평소 모임이 거의 없었지만 문학모임은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임 어디를 가나 아줌마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해 다시 선다는 것은 황홀한 반란일 수 있다.
꿈이 같았던 우리들은 모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무언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다. 아이 이야기, 남편 이야기는 아예 잊고 우리들의 꿈 이야기, 글 이야기만 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문학소녀였거나 감수성이 남달랐던 문학 지망생들로 구성된 수강생들은 문학이, 닫혀있던 일상의 출구였는지도 모른다. 늘 가슴이 벅찼고 늘 가슴이 답답했다. 금방이라도 유명작가가 될 것 같았지만 작가의 길이 그리 쉬운 길만은 아니었다. 담배를 피우는 여인, 주방의 그릇을 박살 낸 여인,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하고 뭉크의 절규보다 더 현실을 절규하는 여인, 심지어 남편과 아이와 가족이 글 쓰는데 방해가 되는 듯이 말하고 이혼 경력이 글 쓰는데 필수 조건인양 말하는 여인...
그렇게 허황된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오면 늘 허망했고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 밥이나 빨래만 하다가 내 인생은 끝나는 것인가? 이 지극히 당연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미화시켜야 할 텐데 불만과 비판만을 일삼았다. 현실과 이상의 거리는 너무나 멀었고 마음은 늘 허공에 떠다니고 있었다. 살림 잘 사는 것이 뭔가 뒤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 문학을 하려면 왜 이래야만 하는가? 이래야만 문학을 할 수 있는가? 나는 문학을 한다는 것이 더 이상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소질이 없다는 걸 알고 과감히 그곳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반란을 일으키지 않고 자기와 싸우는 사람, 박경리나 박완서 같은 작가들처럼 조용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는 글을 쓰는 진정한 작가를 존경하였다.
요즘은 시인이나 수필가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웬만한 아줌마들은 대부분 독서나 논술자격증 , 시인이나 수필가의 명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줌마들도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전문가 수준이다. 그렇다 보니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도 대단하다. 세상에 대한 안목과 비판의식이 돋보일 때도 있다. 세상이 삭막하니 마음을 정화시키고 인생을 반추하며 감상에 젖어보는 시간이 필요할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 또한 많다. 그리고 인터넷 시대, 문자(전자)시대가 다가와서 저마다 자기의 생각을 문자로서 남긴다. 말보다 문자는 증거가 남는다. 내 속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어쩜 말보다 글이 진정성이 있을 수도 있다. 자기의 생각을 책이나 문자로 남기는 것은 기록해 두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킨다.
나는 남의 일에 왈가왈부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러나 국문학을 전공해서인지 글을 보면서 드는 생각을 입 다물고 있자니 뭔가 책임회피를 하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간혹 원고를 고쳐달라고 주문하는 경우가 있다. 될 수 있으면 원 글을 건드리지 않는다. 그 사람의 생각이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누군가가 나의 원고지에 빨간색으로 몽땅 고쳐놓았을 때의 기분은 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방지게도 요즈음 자꾸 솔직하게 말을 하고 싶은 경우가 있다. 소설 공부를 했지만 현실에서 허황된 말이나, 허황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크게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보다는 겸손한 사람을 좋아한다. 본인이 말하지 않아도 글을 보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르더라도 끝까지 참아야 하는데 난 역시 수양이 덜 된 못난 인간인가 보다. 난 열 번쯤 참았다가 한 번쯤은 과감하게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하는 편이다. 바른 말은 적을 만든다는 걸 알면서도 솔직하게 말하고 말았다. 적어도 글을 쓴다고 명함을 내밀려거든 그 분야의 공부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누구나 하는 유치한 감상적인 말을 그대로 몇 줄 옮겨 놓고 시인이나 수필가 누구누구라고 명함을 내민다거나 등단한 것을 무슨 벼슬처럼 자랑하는 사람들은 문장 공부를 좀 했으면 좋겠다고, 특히 블로그에 자기 이름을 걸고 '작품'이라고 올리는 경우엔 더욱 더...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지만 우리글인 국어로 표현하기 때문에 제발 맞춤법이나 국어 공부를 좀 했으면 좋겠다고...
이런 잘난 척을 하다가 나를 온전히 모르는 지인과 싸웠다. 아니 싸운 게 아니라 내 인간성이 나쁘다고 질책했다. 그런 사람도 있고 이런 사람도 있지 나의 기준에 맞추지 말라고 했다. 그 사람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글을 올리고 시인이나 수필가가 그만큼 자랑스럽기 때문에 자랑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의 다름을 인정해 주지 않는 나는 참 외골수라고 했다. 남을 가르치려 하지 말라고 했다. 옳은 말이다. 평소 나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럴 땐 참 띵 받친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 의견에 동의해 줄 것이라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그렇다. 나는 입 다물고 있어야 했다.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으면 될 일을 괜히 말해가지고 아무 상관도 없는 지인과 관계만 나빠졌다.
그러나 나는 사실 그런 글 쓰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말도 못한다는 것을... 맞춤법 틀렸다고 하면 상처받을 사람에겐 더더욱 틀렸다고 말해 본 적도 없다는 것을... 나를 참 모르는구나! 결국 나는 잘난 척하고 남을 무시하는 인간성 나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아, 안타깝다. 솔직함도 쿵짝이 맞을 때만 통하는 것이다. 나는 정말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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