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뮤지컬 관람 / 레미제라블 (2012. 12. 9)

몽당연필^^ 2012. 12. 11. 20:29

                                        뮤지컬 '레미제라블'

 -은총, 자비, 정의, 사랑-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뭐냐고?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뭐냐고? 자기소개서에 멋지게 대답 할 수 있는 책 한 권은 있어야 하는데 나는 지금도 말한다.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플란더즈의 개이고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은 빅토르 위고의 장발장이라고.

 

언제나 우리는 경험을 잊지 못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도서관이란 곳에 가서 '플란더즈의 개'를 읽으며 훌쩍훌쩍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앞 세종서점에서 용돈으로 사온 장발장을 집에 와서 책가방 던지고 저녁도 먹지 않고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때 만큼 감명 깊고 재미있는 책을 만나지 못했다.

 

티켓을 구하지 못하면 훔쳐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뮤지컬 역사상 예술성과 대중성의 양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화제를 모은 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12. 9. 2)을 보고 왔다. 몇 달 전부터 계명 아트센터에서 한국어 첫 공연이 있다고 대대적인 광고가 있었다. 읽은 책 가운데 처음으로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이어서 뮤지컬을 꼭 보고 싶었다. 무조건 티켓 두 장을 거금(?)을 들여 구매했다. 누구를 떠올리며 구매했을까? 평소에 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그냥 혼자 가서 보고 오는 스타일이다. 음악 공연이 아닌 영화나 연극은 혼자 가서 보는 것이 오히려 더 몰입할 수 있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로 비참한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으로 번역 되며 우리나라에선 주인공 이름인 <장 발장>으로 번역되어서 더 알려진 작품이란 걸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청년 장발장은 한 조각의 빵을 훔친 죄로 19년간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출옥한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에게 하룻밤의 숙식을 제공해 준 신부의 집에서 은촛대를 훔쳤다가 다시 체포되어 끌려가게 되었을 때, 밀리에르 신부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 은촛대는 자기가 장발장에게 준 것이라고 증언하여 그를 구해 준다. 그러나 경감 자베르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그의 뒤를 쫓아다닌다. 예전엔 무조건 쟈베르 경감을 미워했었는데 뮤지컬에서 자살하는 쟈베르를 보고 오히려 연민이 들기도 했고 법과 규칙을 지키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1985년 런던에서 뮤지컬로 개막된 후 27년간 전 세계 43개국 3천여 개 도시에서 21개 언어로 공연을 시작한 레미제라블은 총 6천만 명 이상이 관람한, 수식어가 화려하게 붙는 작품이다. 캣츠, 미스 사이공, 오페라의 유령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꼽히고 있으며 4대 뮤지컬 중 가장 늦게 한국어로 소개되는 작품이다. 역사적인 한국어 첫 라이선스 공연인 만큼 2,000여 명이 지원해서 7개월간 10차에 걸친 치열한 오디션을 통해 카메론 매킨토시가 직접 배우들을 선택했다고 한다. 사실 나는 뮤지컬 배우들을 잘 모른다. 뮤지컬에 깊은 관심도 없다. 다만 삶이 시들해질 때 예술 작품이나 공연을 보고 나면 순간적이나마 열정을 배우게 되고 내 삶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하게 된다.

 

뮤지컬은 말 그대로 음악이 감동을 준다. 레미제라블은 특히 대사 없이 모두 노래로 진행되는 뮤지컬이기 때문에 음악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감동이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배우들의 가창력이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40여 곡의 노래를 통해 등장인물들의 성격 묘사가 드러나는데 여러 배우들 중에서 무대를 압도하는 배우는 쟈베르 경감역의 문종원이었다. 쟈베르 경감이라는 그 지위가 카리스마 넘치는 역할이기도 하지만 무대 분위기를 압도하는 성량과 연기가 돋보였다. 중학교 때 책을 읽을 때는 장발방과 코제트에 관심이 집중되었었는데 뮤지컬에서는 사랑과 모정을 묘사한 판틴이 다시 보였다. 그런데 왜 진한 감동이 없었을까?

 

주인공인 장발장 역의 김성민은 그 비중에 비해 존재감이 덜 하였다. 정성화의 평이 아주 좋게 올라와 있었고 원캐스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김성민과 더블 캐스팅이란 걸 거기 가서 알았다. 어른이 된 코제트 역의 배우는 목소리가 너무 맑고 고와서 애처롭게 느껴질 정도였는데 웅장한 무대와 아트센터가 대형 공연장이란 걸 감안할 때 뒷좌석까지 잘 들릴지 조금 아쉽기도 했다. 민중의 가난과 고통, 프랑스 혁명 등 주제와 배경이 무겁고 가라앉는 편이어서 자칫 지루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었는데 (실제로 1막이 끝나고 자리를 떠난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사기꾼 떼나르디에 부부 역의 임춘길과 박준면이 조금 과장된 연기로 생동감과 웃음을 선사했으며 노련미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세계 4대 무지컬 중 가장 기대를 가지고 봐서인지 개인적으로는 가장 기대에 못 미쳤다. 무대장치가 웅장하고 의상이나 캐스팅이 화려하였지만 배우들의 목소리가 원작에 비해 전반적으로 무대를 꽉 채우지 못하는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뮤지컬 자체가 대중성이나 상업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광고에 많이 현혹되진 않았지만 이번 공연은 음악이 주는 감동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고 다른 뮤지컬만큼 전율도 덜 하였다. 세 시간 공연 중 첫 장면 오프닝 넘버 Work Song이외의 다른 음악이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 막이 오르고 웅장한 무대가 펼쳐지면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울려 퍼질 때의 그 기대감과 설렘만큼 감동을 주는 부분이 없었다.

 

책의 감동이 진했기 때문일까? 집중해서 보지 않아서일까? 어쩜 그날의 내 개인적인 감정이 뭔가를 채우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남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또 한 번 배우들이나 제작진들의 열정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200억 원이란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만든 작품이니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고 (사실 관람료가 너무 비싸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감동과 전율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