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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오후 두 시의 워낭 소리

몽당연필^^ 2012. 8. 16. 09:17

 

오후 두 시의 워낭 소리

   


 

 

수십 년 전 그 소리, 꿈결에서 들었다. 내 마음 속에 화석처럼 잠들어 있는 유년의 고향과 소 핑경(풍경) 소리,(고즈넉한 사찰의 풍경소리와 닮았다고 해서 우리 지역에선 '워낭''핑경'이라고 불렀다.)그 핑경 소리 뒤에는 늘 늙으신 아버지의 모습이 들어있다. 오늘 문득 그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아버지가 만든 우리 집 소의 핑경 소리, 뚜벅뚜벅 걸을 때 꼬리로 파리를 잡을 때 땡그렁 낮으면서도 맑고 투명한 그 소리, 멀리서 들어도 단번에 알 수 있는 그 특별한 핑경 소리, 오늘 지천명의 나이에 들려오는 그 소리...

 

얼마 전 워낭 소리라는 영화를 보았다. 마흔 살 늙은 소와 여든 살 할아버지의 삶을 있는 그대로 촬영한 다큐먼터리 영화였다. 내 마음 한켠에 언제나 머물러 있던 우리 집 소의 핑경 소리, 오래 우리와 함께했던 늙은 소의 모습이 잊혀진 친구처럼 아련히 떠올랐다. 그 영화를 보고 사람들은 거의 눈시울을 적셨을 것이다. 아버지와 소, 언제나 말이 없으면서 묵묵히 자기 할 일을 다 하는 가장 든든한 가족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의 말 없는 사랑, 사람과 짐승과의 교감, 가난, 서글픔, 상실, 나이 듦과 늙어감, 떠나 보냄... 이런 단어들이 연상되어 사람들은 눈시울을 적셨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가슴 찡함을 느꼈을 뿐 예상외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몇 십 년을 늘 보아오던 일상의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영상으로 남겨놓았다면 더 감동적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고향을 생각하면 누구나 부모님을 생각할 것이고 거기서 뛰놀던 유년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유년의 기억 속에는 소 먹이러 다니며 산이나 냇가에서 보던 산나리 꽃과 패랭이꽃이 떠오를 것이다. 산나리 꽃과 패랭이 꽃 속에는 동네 오빠나 옆집 동무가 겹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유년의 기억은 다시 바꿀 수가 없고 돌아갈 수 없어서 늘 가슴 짠한 향수로 남는다.

 

햇볕이 마당을 달구는 한 낮, 점심을 먹고 나면 볕이 너무 뜨거워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더운 바람만 일으키는 낡은 선풍기 한 대를 두고 식구들은 이리저리 누워 낮잠을 즐긴다. 낮잠을 설치게 하는 건 더위가 아니라 얼굴을 간질이는 파리다. 한여름, 소를 먹이는 집에는 유난히 파리가 극성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보면 어머니는 내 머리맡에서 비료 포대로 만든 비닐부채로 파리를 쫓으며 나를 부쳐주고 있었다. 그렇게 낮잠을 즐기고 나면 일상의 들판으로 나가는 오후 두 시, 더 이상 집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는 시간 (중학교를 들어가기 전에는 방학이 끝날 무렵 잠시 방학 책이나 일기장을 한꺼번에 썼을 뿐이지 책을 펴놓고 공부를 한 기억이 별로 없다.) 우리는 소를 몰고 여덟개의 바위에 전설이 있는 팔암산으로 향한다.

 

우리 동네는 백여 호가 되는 큰 동네인지라 소 먹이러 가는 아이들도 많았다. 윗마을 아랫마을 뒷마을로 나뉘어서 다른 장소로 가는데 우리 아랫마을은 보통 열 명이 넘었다. 송아지까지 합친다면 열댓 마리가 훨씬 넘을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집집마다의 소들이 모여 있어도 소의 목에 달린 핑경 소리는 각각 다르다. 소를 산에다 풀어놓고 우리는 멱을 감거나 말타기를 하거나 공기놀이를 한다. 때론 망갯잎으로 왕관을 만들어 쓰기도 하고 소나무 칼을 만들어서 전쟁놀이를 하기도 했다. 평소에는 남학생 여학생이 만나기 힘들지만 소를 먹이러 가는 날이면 좋아하는 오빠도 만날 수 있고 남녀가 함께 놀이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방학 때가 되면 소 먹이러 가는 것이 재미있었는데 우리 집은 부모님이 바쁠 때만 가끔 허락을 해 주셨다.

 

그렇게 소를 풀어 놓으면 그 다음은 자유시간이다. 그러나 너무 재미있게 놀다가 해가 저물어서 소를 못 찾으면 그때부터 낭패가 난다. 보통은 늘 가던 장소에 가고 소도 늘 같은 곳에 있기 마련인데 소들이 많을 때는 소풀이 많은 다른 장소를 선택하게 된다. 주위에 어둠은 내리고 그 넓은 산 어디에 소가 있는지 가늠할 수 없을 때 예민하게 청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바로 그때 유용한 것이 소 핑경 소리이다. 어디쯤 누구의 소가 있는지 주인은 그 소리를 듣고 달려간다. 평소에는 해가 지면 알아서 왔던 길로 내려오는데 낯선 곳에서는 소들도 길을 잃는다. 핑경 소리를 따라 우리는 타잔이 된다. 그러나 제일 나중까지 우리 소만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 무서움이 엄습해 온다.

 

아무렇지도 않던 무덤들이 불쑥 일어날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가장 큰 재산인 소를 정말 못 찾으면 집으로 갈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끝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송아지가 없는 소는 여간해서 잘 울지도 않는다. 그때서야 부모님도 소를 찾으러 오고 이 산 저 산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가 우리 집 소의 핑경 소리처럼 들린다. 온 식구들이 땀에 흠뻑 젖어서 소 찾기에 열중할 때 저만치서 들려오는 반가운 소리, 아버지가 만드신 이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 집 소 핑경 소리... 소도 사람도 땀에 흠뻑 젖어서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는 화가 나서 소를 몇 대 때리고 나서는 풀을 듬뿍 넣어주시고 소의 등을 한 번 쓰다듬으신다. 제 때에 돌아오지 않은 소를 자식같이 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 소의 핑경은 쇠로 된 깡통 비슷한 것에다 구멍을 뚫고 아주 굵은 쇠 철사를 넣어서 소리가 나도록 아버지께서 직접 만드셨다. 시장에서 산 놋쇠로 만든 동그랗고 예쁜 요령 소리는 모양만큼 맑고 높은 소리를 냈지만 우리 소 핑경은 약간 낮으면서도 멀리 울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멀리서 핑경 소리만 들어도 소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어쩌다가 소들끼리 싸우다가 핑경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산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그것을 찾아야만 했다. 수십 년을 들어온 소리이기 때문에 새로 사온 요령은 귀에 익지를 않다며 소를 팔 때도 깡통같은 그 핑경은 집으로 가지고 오셨다. 소를 두세 번 갈아 팔았지만 그 핑경 소리는 귀에 익어 우리 집 소가 한평생을 같이 했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 핑경을 목에 걸고 그것으로 자신의 위치와 존재를 알리던 말없는 소, 그 핑경이 굴레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을 벗어버리는 순간 팔려가거나 생이 끝나는 것을 알려준다. 부모님 연세가 너무 많아 마지막으로 소를 팔 때 소와 부모님은 함께 울었다고 한다.

 

지금도 내 귀에 선명하게 들려오는 그 핑경 소리, 여느 절에서 들려오는 풍경 소리보다 더 맑고 더 많은 가르침을 남겨 준다. 그 핑경 소리에는 내 유년의 기억과 고향이 있으며 우리들 등록금을 마련해 준 늙은 소의 선한 눈이 있다. 그 핑경 소리에는 들에서 돌아오는 아버지의 발자욱이 있으며 말 없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들어있다. 오늘 지천명의 나이에 그 핑경 소리 내 가슴을 울린다. . (2009. 2. 원고지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