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공즉시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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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이맘때쯤이었나 보다. 나에게 배당된 하루치의 사막을 기듯이 겨우 하루를 건너면서 헛것으로부터 상처받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멍청히 허공을 쳐다보며 대책 없이 지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TV에서 ‘금강경강해’를 강의하고 있었다. 세수도 하지 않고 푸스스한 차림으로 동네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금강경강해’를 고르고 있는데 노숙자 같은 허름한 차림의 아저씨 한 분이 리어카를 세워두고 카드를 골라서 편지를 쓰고 있었다. 폐휴지를 줍는 사람 같은데 예쁜 카드에 글을 적고 있는 모습이 영 어울리지 않아서 '조금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하며 힐끔 쳐다보았다.
내가 들고 있는 책을 보며 그 아저씨 왈,
"보기 요량하고 책은 수준 높은 책을 고르는구마."
하고 궁시렁대며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힐끗 쳐다보았다. 구질구질한 차림이지만 그래도 '감성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긴 하나 보다.' 라고 생각하며 카드의 문구를 훔쳐보았다. ‘사랑하는 딸에게-’
아하! 그랬구나! 서로 구질구질한 옷차림만 보았구나! 무엇이 헛것이고 무엇이 진짠지? 헛것이 헛것인 줄 모르고 그것에 사로잡혀 좇아가는 우리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하지 않고 보이는 것에만 열광하는 우리들... 거리와 TV엔 온통 현란한 색과 현란한 몸짓이, 거룩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있다.
그렇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면 편할까?
성스러운 날이다. 금강경이 어렵다면'성냥팔이 소녀'라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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