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선물
연인들이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발렌타인데이, 유래나 의미도 모른 채 단지 초콜릿만 주고받으면 사랑을 확인하기라도 하는 듯한 이상한 날이다. 가게마다 초콜릿이 유난히 많이 나와 있어서 나도 몇 개를 샀다. 초콜릿 몇 개로 사랑을 건넬 수 있다면야 한 상자를 못 사겠냐만 부질없는 짓이다. 백화점을 몇 바퀴 돌면서 교무실 남자 선생님 수만큼 사긴 샀지만 딱히 건네줄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선물이란 것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어야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어떤 선물을 고를지, 어떻게 전해 줄지, 그 사람이 좋아할지, 혹시나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을지, 선물을 건네줄 때까지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산 작은 초콜릿을 별 의미 없다는 듯이 그냥 돌리고 한 달이 지났다.
이번엔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준다던가? 하는 화이트데이, 교무실 선생님 자리에 유난히 사탕이 많이 올려져 있는 걸 보니 바로 오늘이 그 날인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학생들과 생활하다 보니 이런 사소한 날들을 그냥 넘기지는 않는다. 평소에 말씀이 없으신 선생님들도 사탕 몇 개로 인사를 하신다. 남학교는 아니지만 교무실에 여선생님이 많다 보니 사탕의 양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서 인기도가 측정되기도 한다.
출근을 하니 책상 위에 선물이 올려져 있었다. 누가 이 선물을 보냈을까? 하며 둘러보니 다른 여선생님들 자리에도 선물이 놓여 있었다. 아들이 둘이 있건만 화이트데이라고 사탕 하나 못 받았는데 이런 선물을 받게 되다니, 특히 오늘은 남자가 여자한테 선물을 보내는 날이라고 하니 가슴이 설레었다. 거기다가 아름다운 음악까지 보내주셨다.
작년 9월에 부임해 오신 우리 교장선생님은 이렇게 우리들에게 자주 감동을 주신다. 부임하자마자 선생님들께 ‘행복’이란 책을 선물로 주셨다. ‘행복’을 선물로 받았으니 그 어떤 선물을 받을 때보다도 행복할 수 있었다. ‘행복’이란 추상명사다. 보이지 않지만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따라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행복’을 곁에 두고 늘 ‘행복’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면 행복해질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무엇인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늘 행복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시는 교장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전해 주시더니 이번엔 또 ‘선물’이란 책을 선물로 주셨다. 그것도 남자가 여자한테 선물을 보낸다는 ‘화이트데이’에 '선물'을 보내셨으니 의미 깊은 선물이 될 것이다.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며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사람 사는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자네는 충분히 많이 알고 있고 충분히 많은 것을 갖고 있다네. 그리고 충분히 성장했어. 어떤 사람들은 젊었을 때 ‘소중한 선물’을 받고 어떤 사람들은 중년이 되어 그것을 받지. 어떤 사람들은 노인이 되어서야 그것을 받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끝내 받지 못하고 만다네-.
스펜스 존슨이 쓴 이 책의 원제는 <The Present>이다. 이 말은 ‘선물’도 되고 ‘현재’도 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현재 이 순간 ‘옳은’ 것에만 집중하면 우리는 더 행복할 수 있다. 현재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지금(right now) 일어나는 것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now) 옳은(right) 것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그 현재가 고통스럽다면,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젊은이의 말에 노인은 대답한다. ‘고통이란 현재 상태와 우리가 바라는 상태의 차이일 따름일세. 다른 모든 것들처럼 현재의 고통 역시 계속해서 변하지. 그저 왔다가 갈 뿐이야. 완전히 현재 속에 사는 데도 고통을 느끼고 그 때문에 좌절한다면, 그때는 무엇이 옳은 지부터 생각해보고 그에 따라 행동하면 될 걸세.’
옳다고 결정한 것이 진정 옳은 것인지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바로 지금 일어나는 것에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면서 바로 지금 중요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면 옳은 것이 될 것이다. 과거보다 더 나은 현재를 원한다면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돌아보고 그것에서 소중한 교훈을 배우고,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그것이 실현되도록 계획을 세워서 지금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 내가 결정한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또한 지금 내가 결정한 모든 것들이 미래의 나를 만들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 나의 행동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조금은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소통도 중요하므로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두에 두다 보니, 무엇을 결정하는 데 시간이 남보다 많이 걸리는 편이다. 그러나 일단 옳다고 결정을 하면 소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은 언제나 변함없다.
중년이 된 지금 ‘소중한 선물’을 받고 다시 한번 지금 ‘나의 위치’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지금 ‘나의 일’을 즐겁고 행복하게 생각한다. (2008. 3. 200자 원고지 14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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