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
-김윤희의 「인간과 숲」展을 보고-
인간에게 자연은 무엇일까?
인간은 자연을 통해 삶을 얻고 자연으로 회귀한다. 이처럼 엄숙한 일이 또 있을까?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는 숙명적이다. 인간이 아무리 첨단 과학의 시대에서 자연을 극복하려고 할지라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자연으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존재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산다. 삭막한 도시의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신선한 자연의 정서와 생명의 활기를 불어넣는 참신한 작업인 김윤희의 작품 <인간과 숲> 展은 전시회 공간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작품으로 설치되어 있다. 가장 자연스러운 재질의 천에 직접 녹색 빛을 염색하여 숲을 만들었으며 바닥엔 소박한 자연미를 그대로 드러내는 흰 천을 깔아서 그 위에 흙을 상징하는 톱밥을 뿌려 놓았다. 맨발로 느껴 보는‘자연의 서정'을 전달하려 한 것이다.
입구에 천을 잘라서 설치한 녹색 숲을 헤치고 맨발로 흰 천이 깔린 전시회장을 밟으면 우선 정면에 강렬한 색상으로 시선을 끄는 작품 한 점이 압도적으로 걸려 있다. 분홍빛이 너무 강렬해서 오히려 숲 속에 잘못 들어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입구에 천들이 나부끼고 바닥에도 벽에도 천으로 둘러 싸여 있는 곳에 강렬한 원색적인 분홍빛 그림 한 점은 언뜻 무속적인 분위기마저 감돌게 한다. 원색이 풍기는 분위기가 굿의 의식 행사처럼 보일 뿐만 아니라 그림 전체에 스며 있는 보일 듯 말듯 한 원형의 이미지, 알 듯 말듯 한 신비성은 인간의 원초적인 혼과 결합한 태초의 세계와 만나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자연과 인간을 연결시켜 주는 원초적인 색상일지 모른다. 강렬하게 대비되는 붉은색과 푸른색, 녹색, 그것은 태양과 물과 나무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김윤희의 작품에서 눈에 띠는 것은 구심을 향하는 원과 수직적 하강선의 흘러내림과 얼룩이 주는 신비감이다. 그리고 섬유(천)가 주는 자연미를 그림 속에서도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한국 고유의 색채 속에 실오라기처럼 풀어 헤쳐진 가느다란 염원이 은유적이고 상징화된 시적 감성의 한 부분으로 인간 회귀의 근원을 연결시켜 준다.
그는 자연을 눈으로 보지 않고 가슴으로 느끼도록 유도하고 있다. 숲 속에 설치 된 작은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면 방금 전 그림에서 느꼈던 하강의 폭포수가 영상으로 편안하게 떨어져 내리고 있다. 그리고 물소리, 새소리, 벌레 울음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들이 흘러나온다. 자연을 느끼게 해 주는 숲 속에 설치된 영상 매체의 그림과 채집된 소리들은 오히려 인간과 숲에 대한 아이러니로 남기도 한다. 노란색을 주조로 한 <인간과 숲>은 녹색과 붉은색과의 밝은 하모니로 생동감 넘치는 자연의 미를 표현한다. 자연에 대한 외경과 생명에의 약동에 대한 찬미, 수양버들이나 녹색 빗줄기를 연상시키는 하강의 편안함이 자연으로부터 받는 휴식을 느끼게 해준다. 숲에 들어왔다는 생각 때문인지 바닥에 전시된 톱밥 위에 설치된 작품에서 장미꽃 가지를 찔레 순으로 착각을 했다. 이렇듯 작가는 흙이라는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년기의 고향 동산에서의 기억을 더듬게 해 준다. 훼손되어 가는, 잃어버린, 우리가 잊어 가고 있는 자연의 원형인 녹색 숲, 자연의 소리, 그것들을 복원시켜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들을 몸으로 느끼게 해 준 전시회였다.
하나 아쉬운 것은 작가의 설명을 듣기 전에는 톱밥은 숲에 대한 느낌일 뿐 대지(흙)에 대한 느낌은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숲을 자연으로 확대해석 하는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과감하게 흙을 사용하는 것이 좀 더 자연적이지 않을까? 라는 일반적인 생각을 해 본다. 자연에 대한 상식적인 해석을 넘어 좀 더 독창적인 해석과 시각화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참신한 실험적인 설치 작에 박수를 보낸다. (200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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