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뮤지컬 관람 / '미스 사이공' (2011. 12. 29)

몽당연필^^ 2011. 12. 30. 23:55

뮤지컬 '미스 사이공' 관람하다

 

 

 

 

 그저께 방학을 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친구 만나서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어제도 친구 만나서 점심 먹고 저녁 먹고 그래도 아직 7시가 안 되었다.

친구는 수험생 아들 저녁 차려 주러 가고, 갑자기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냥 집에 들어오기엔 차려 입은 것이 아깝고 모처럼의 여유로운

시간이 아까워서 뮤지컬 공연 보러 갔다. 십년도 훨씬 이 전에 자유로운

어느 지인이 <미스 사이공>공연 보러 영국 간다는 말을 들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 동안 너무 바빠서 늘 '가야지' 하면서도 미루어 오던 공연이었다.

멀리 계명 아트센터까지 지하철 타고 가서 혼자서 티켓을 구입하고

들어갔더니 웬 5, 60대 쯤으로 보이는 아저씨들 열두 명이 한 줄에

쫙 앉아 있고 한 좌석만 비어 있는데 하필이면 그 자리가 내 자리였다.

점심 때 부터 줄곧 앉아 있어서 허리도 아픈데 불편해서 세 시간을

어떡하나? 더군다나 아직 내외도 하는 편인데 이크 큰일 났다 싶었다.

세계 4대 뮤지컬이라고 몇 달 전부터 홍보를 많이 해서인지 그 넓은

관람석이 거의 꽉 차 보였다. 평소 뮤지컬은 그렇게 좋아 하는 편은

아니지만 볼 거리를 많이 제공하고 일단 음악이 있어서 나를 잊고

시간을 보내기엔 좋은 공연이다.

 

 <미스사이공>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주인공인 베트남 처녀 킴이

팔려온 사이공의 술집 장면에서 시작 한다.  오페라 '나비부인'과 내용이

비슷한데 왜 이 공연엔 유독 오륙십대 쯤의 아저씨들이 눈에 띠나 했더니

클럽 남녀들의 선정적인 장면도 한 몫을 차지하지 않았나 싶다.  

철저한 상업주의, 물론 뮤지컬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1막 시작하자마자  뭐야? 깜짝 놀라서 오히려 미동도 않고 숨죽이고 있었다.  

옆에 아저씨는 계속 땀을 닦고(공연장이 덥기도 했다),

내가 너무 작품에 몰입하지 않았나?

 

 이야기 줄거리를 보면 신파조 같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 실제 일어 난 

비극이었고 우리도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다.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한 이후 킴은 미군 병사 크리스의 아들을 낳아 혼자 힘들게 키우고 

미국에 돌아간 크리스는 킴에 대한 죄책감으로 세월을 보내다 결국 재혼을

하게 된다. 잠이 든 아들 옆에서 베트남에 있는 킴과 크리스의 미국 부인이

함께 'I stil believe' 라는 곡을 부르는데,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믿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비극적인 사랑 아닐까?

 

 작곡자가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동기는 공항에서 아들과

어머니가 울면서 헤어지는 단 한 장의 사진이었다고 한다.

그 속에서 그는 전쟁이 가져다주는 비극적인 삶, 그 중에서 특히 여성의 삶에

주목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미스 사이공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쟁은, 단순히 전쟁이 시작되고 끝나는 물리적인 시간만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던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어 버리게 된다.

마지막 장면, 아들을 미국의 크리스에게 보내고 킴은 권총으로 자살을 하게 된다.

화려한 뮤지컬이어서 그랬는지 코끝만 찡했을 뿐 눈물은 나지 않았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공연장이 너무 넓은 곳은 배우들의

표정 연기가 보이지 않고 목소리나 가사전달도 잘 되지 않아서 산만해진다.

요즘은 거의 다 공연장이 너무 넓어서 멀리서 TV 보는듯한 느낌이다.

오히려 배우들의 숨소리마저 들리는 소극장 공연이 감정 전달이

훨씬 잘 되고 연극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요즘은 무엇이든지

초대형화 되어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고 교감보다는 압도 당한다.

뮤지컬은 대중적인 장르이고 이미 대중화 되어 있는데 관람료도 너무 비싸다.

규모가 너무 거대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연, 문화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잊고 있을 수도 있는, 세 시간을 연주해 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배우들의 무한한 열정을 보며 무기력한 나를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

혼자서 세 시간 한 곳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