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수필 / 無車上八字 (2000.10)

몽당연필^^ 2011. 10. 9. 10:15

 

 

無車上八字(무차상팔자

 

 

 

 

 

  아무 것도 두려워하는 것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어느 화가는 세상에서 무서운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 하나는 車고, 다른 하나는 부인이라고 했다. 곁에 있어서 편할 때가 있지만 예기치 않은 돌발사고가 항상 도사리고 있어서 적당히 돈을 들여야 하고 부드럽게 다뤄야 하고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또한 차 좀 천천히 몰았다고 상욕을 듣고, 접촉사고를 내서 세상이 노래지는 경험을 했으며, 주차공간이 없어서 한 시간을 돌아다니다가 약속을 못 지키고 투덜대는 친구의 말을 자주 듣는다.

 

 나는 승용차가 없다.

승용차 유무를 두고 그 사람의 위상을 가늠하던 시대는 지났지만 필수품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도 나는 아직 차 종류도 잘 모르고 차 이름도 잘 모른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한다는 것은 흥이 나면서도 힘든 일이다. 1교시에 수업이 있는 날은 가끔 화장을 하지 못하고 차를 타게 될 때가 있다. 5분 정도면 끝낼 수 있는 화장인데도 아침시간은 늘 바쁘다. 숨 가쁘게 버스에 올라앉으면 그 때부터 50분은 완전한 나의 시간이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4, 50 분가량 걸리는데 버스 안의 자유로움과 아줌마의 뻔뻔스러움을 발휘해 신호대기 하는 그 짧은 순간에 슬쩍 얼굴에 그림을 그린다. 누가 보는 앞에서는 거울도 못 보던 그 수줍음은 어디로 갔는지, 늘 타는 버스도 情붙이면 편해지기 마련이다. 물론 자리가 없을 때는 인내심을 기르게 된다.

 

 남들은, 중년의 나이에 택시도 잘 안타고 버스를 이용하는 나를 보고 건강에 좋다고 하면서도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시골 집에 갈 일도 많으면서 어떻게 차 없이 살수 있냐고 한다. 차가 있으면 인생이 달라진다나? 달라져 봤자 차 있는 인생이겠지. 그러면서 나는 무차상팔자(無車上八字)의 논리를 주장하며 애국자인척 한다. 고유가 시대에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더군다나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대구 땅에서 직업도 없는 내가 차를 가진다면 선량한 서민들에게 위화감을 조성 할 수 있다. 내가 조금만 더 날씬하다면 다이어트에 좋다고 강력히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인데,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밖에 하지 않는 내가 그나마 이 몸매를 유지하는 것은 차가 없는 덕분이라고 미약하게 주장한다.

 

 사실 나는 車 냄새를 싫어한다. 車에서 뿜어지는 기름 냄새를 맡으면 멀미가 난다. 그래서 걷는 것을 좋아한다. 한 시간 정도의 거리는 거뜬히 걸어서 다닌다. 안정감 있고 튼튼한 다리로 말이다. 바쁜 세상에 오히려 경제 원칙에서는 손해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것도 아닌데 꼭 차를 가지고 다녀야할 이유가 없다. 차가 없어서 좋은 점은 어디서나 좋은 사람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시내 구석구석을 함께 손잡고 다닐 수 있고 맘에 드는 사잇길 커피숍에서 주차 걱정 없이 잠시 쉬어 갈 수도 있다. 그건 그렇지만 학교 다니려면 무거운 책 때문에라도 차가 꼭 필요하지 않느냐고 반문을 할지도 모른다. 사실 쉬운 말을 어렵게 늘여 놓은 두꺼운 책이 좀 무겁긴 하다. 그러나 등. 하교시간 차안에서의 나만의 상상의 공간, 공자님을 만나든 왕자님을 만나든 시인이 되든 지휘자가 되든 완전히 나를 잊어버리고 멍청하게 넋 놓고 앉아 있어도 남이 뭐라고 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 50분의 명상이 얼마나 감미로운지, 그 50분의 단잠이 얼마나 개운한지….

 

 요즘 같은 가을날 교문을 들어서면 길 양옆으로 노란 은행잎이 사랑하는 사람을 맞이하려고 묶어 둔 옐로우 리본처럼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온통 노란 은행잎이 음악처럼 흐르고 그림처럼 나부낀다. 이런 아름다운 교정을 걷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 일인지 생활에 쫓기는 車 가진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내 책 속에 앙증스런 분홍색 꽃 잔디나 장미꽃, 단풍잎들이 곱게 숨어있는 이유는 한 번쯤 교정을 여유롭게 걸어 보았기 때문이다. 멀리 여행을 갈 때 물론 車가 있으면 편하긴 하다. 그러나 난 기차 여행을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보면서 부딪치면서, 살아있다는 것을, 나 자신을 느낄 수 있다. 여럿이 있으면서도 긴 시간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편하고 자유롭다는 것이다.

 

 이 좋은 가을에 야외수업을 하려고 하는데 차 있는 사람 누구냐며 나이 든 나를 쳐다본다.

 '차 없어서 죄송합니다'

요즘 아줌마들 차 없는 사람도 있나? 하며 신기해하는 눈빛이다.

어느 미국인이 차를 못 사 안달하는 시인에게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한국 분 너무너무 차에 관심이 많습니다. 신경 씁니다. 신경 너무 쓰면 일찍 죽습니다. 시인 선생님 별로 갈 데 없습니다. 천천히 걸으면 좋은 생각 떠오릅니다. 급할 땐 택시 잡으십시오.'

 

 차 살 돈 없으니까 괜히 '無車上八字'라고 되지도 않은 주장한다고 해도 좋다.

내 주위의 차 가진 사람들이, 필요할 때마다 나를 모셔주니 맘 놓고 술을 마셔도 되고 대리운전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은혜를 모른다고 못 본 척 해도 어쩔 수 없다. 걷기 좋아한다고 앞으로 차 안 태워주면 어떡하나? 아주 조금 걱정은 되지만 아직 차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만은 확실하다.

기계치이며 운동신경이 둔한 나조차 차를 사서 몰고 다니면 이 도시는 얼마나 더 붐빌 것이며 다른 운전자에게 얼마나 더 방해가 될 것인가? 지금 車 있는 이들을 위하여 앞으로 나는 당분간 車를 사지 않을 것이다.

주머니에 단돈 이천 원만 있으면 걱정 없는,  아! 無車上八字의 이 자유로움이여!

 (2000년 가을, 200자 원고지 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