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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관람 / 밀양 연극제(2011.8.4) - 어떤 싸움의 기록

몽당연필^^ 2011. 8. 4. 11:48

 

어떤 싸움의 기록

  

 

 

 

 계속 휴가였기 때문에 여름휴가는 생략하고 밀양 한바퀴 돌고 제11회 여름 공연예술축제 다녀왔다. 작년에 예매하지 않고 갔다가 그냥 돌아온 경험이 있어서 올해는 1000석 규모의 노천 공연인 '오구'를 미리 예매했는데 하필이면 그저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공연이 취소되었다. 그래서 어제 갔다 왔다. 젊은 연출가 구현철의 '어떤 싸움의 기록' 개인적으로 싸움, 전쟁, 폭력, 투쟁, 이런 자극적인 것 좋아하지 않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태초에 폭력이 있었다. 새로운 세상은 폭력을 통해서 창조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폭력의 더미에서 정당한 폭력을 분리해 내는 일이다<양복과 교복> <폭력의 역사> <아버지를 닮은 모든 것> <어떤 싸움> <오이디푸스의 가족사진>으로 내용이 구성되는데 실험극인 만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엔 상징성이 많았고 조금은 난해한 작품이었지만 재미있었다.

 

앞줄에 앉은 동네 할머니들(단체초청? '어머니'나 '오구'를 관람하셨으면...) 몇 분은 여학생이 담배 피우며 어른께 대드는 장면에서 그만 퇴장해 버리고 마셨다. 앞부분은 거의 대사가 없어서 지루하셨나 보다. 뒷부분은 격렬하게 싸우는 장면이 있어서 박진감이 있었는데...

세상의 모든 아버지- 음악의 아버지, 영화의 아버지, 수학의 아버지, 발명의 아버지 등등등 '아버지라는 존재'- 정치와 권력, 세상의 가치와 기성의 구조는 여전히 '아버지임'을 닮았다. 존경하면서도 경멸하고 닮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닮아가는 아버지라는 존재와 관계의 구조. 아버지를 닮은 모든 것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트라우마를 지니고 산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여전히 오이디푸스의 가족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순환의 구조가 아닐까? 폭력은 당연히 없어야 한다. 그러나 비폭력의 세계는 항상 정의롭고 평화롭기만 할까? 평소 매를 들진 않지만 교복에 대한 나(양복)의 입장이다. 이 더운 날씨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어떤 싸움의 기록  / 이 성 복

그는 아버지의 다리를 잡고 개새끼 건방진 자식 하며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샤쓰를 찢어발기고 아버지는 주먹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내리쳤지만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또 눈알을 부라리며 이 씨발놈아 비겁한 놈아 하며
아버지의 팔을 꺾었고 아버지는 겨우 그의 모가지를
문 밖으로 밀쳐냈다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신발 신은 채
마루로 다시 기어올라 술병을 치켜들고 아버지를 내리
찍으려 할 때 어머니와 큰누나와 작은누나의 비명,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땀 냄새와 술 냄새를 맡으며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소리 질렀다 죽여 버릴 테야
법도 모르는 놈 나는 개처럼 울부짖었다 죽여 버릴 테야
별은 안 보이고 갸웃이 열린 문 틈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라일락꽃처럼 반짝였다 나는 또 한번 소리 질렀다
이 동네는 법도 없는 동네냐 법도 없어 법도 그러나
나의 팔은 죄 짓기 싫어 가볍게 떨었다 근처 시장에서
바람이 비린내를 몰아왔다 문 열어 두어라 되돌아올
때까지 톡, 톡 물 듣는 소리를 지우며 아버지는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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