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수필 / 넝쿨장미 한 그루(1982)

몽당연필^^ 2011. 7. 28. 11:01

넝쿨장미 한 그루



 

   

 

 

아이구 야야, 자꾸 씻거 샀는다꼬 본대 생기 묵은 살이 보해지나(하얗게 되나)?”

얼굴에 닿는 비누 거품에 연신 재채기를 하시며 내가 잡고 있는 손에서 자꾸만 벗어나려고 하신다.

문지(먼지) 지도 살까이, 흙에 구불고 사는 놈이 그까짓 문지 겁내서 우째 사노?”

 

올해 일흔 여섯이 되신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씻으시는 걸 아주 싫어하신다. 월중 행사로 아버지 머리 깎아드리고 목욕시켜 드리는 날이 되면 이웃이 다 알 정도로 야단법석을 떨어야만 된다. 처음엔 그저 물만 적시고선 도망가시더니 그래도 이젠 비누 거품에 약간은 면역이 되신 모양이다. 가만히 앉아서 해주는 밥 드시기도 힘들다 하실 연세이신데 발에 흙 떨어질 날 없이 일하시고, 마음 놓고 담배 한 대 피우실 시간 없이 언제나 바쁘신 아버지, 하지만 난, 남들처럼 말쑥하지 못하신 아버지가 불만스러워 늘 투덜대곤 한다. 안 씻으시려고 화를 내시던 아버지시지만 이제 늘 곁에 두고 볼 수 없는 투정 섞인 막내딸의 비누거품 묻은 손길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도 겨우 찾아뵙고 있다. 그때마다 흙 하나 묻히지 않은 부끄러운 빈손을 아버지의 거친 손 앞에 슬며시 내미는 불효자식이다. 언제쯤일까? 아버지의 손에서 전해 받은 크나큰 사랑을 내 손으로 전해 드릴 날은?

 

아버지의 어깨가 너무나 여위신 것 같다. 하얗게 퇴색해 버린 머리카락, 푹 패인 주름살을 바라보면 왠지 고뇌에 찬 삶을, 서글픈 인간사를 읽고 만다. 결코 아버지의 삶이 헛되지만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소용없는 딸에게 기우시는 정이 하도 크기에 차라리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인자 됐다 고마, 좀 남겨 놔라, 너무 씻거사마 느그 아부지 잊아뿌린다.”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무수히 스쳐 간 아픈 세월의 연륜을 느낀다. 비눗물의 영향만이 아니리라. 아버지의 눈에 어리는 눈물을 발견하곤 나는 당황해하며 황급히 눈을 들어 물안개가 번지는 하늘가로 눈을 준다. 가슴으로, 빗물처럼 싸늘한 비애가 흐르는 것 같다. 어젯밤 꿈자리가 시끄럽다 하시며 편지를 주시던 아버지, 하찮은 가시내 고생 안 시키려고 그 무거운 쌀자루를 짊어지시고 딸네 집을 못 찾아 애쓰시던 아버지, 백 원짜리 건빵 하나라도 생기면 막내딸을 생각해 장안에다 꼭꼭 보관해 두시는 아버지시다. 나뭇짐 지게에다 싸리꽃을 한 아름 꽂아 들고 오셔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시더라는 아버지

 

아버지이

내 속마음을 아시기나 하신 듯 아버지께서는 눈을 몇 번 껌벅이시더니 억지웃음을 웃으신다.

아이고 그누무 비눗물 숭악하데이. 한 번만 더 씻것서면 몸살 나겠데이.”

아버지께서는 정말 몸살이라도 나실 것처럼 재채기를 연신 하신다. 들에 나가 일하는 것이 낫지 매일 이렇게 씻고 들어 앉아있으라고 하면 못 살겠다고 하신다. 아버지의 이러시는 모습에 난 그저 웃음을 흘리는 수밖에 없다. 내가 내미는 깨끗한 수건은 그냥 밀치고 옆에 벗어놓으신 옷으로 얼굴을 한 번 쓱 문지르시더니 맨발로 저벅저벅 마루로 올라가신다. 또 내 앙칼진 목소리가 듣고 싶으신 게다.

 

인지 또 거름 치고 들에 나가 구불러야 될낀데.”

하시며 허한 웃음만 내놓으시고 마신다. 난 마음 같지 않게 참으로 화난 모습으로 투덜댄다.

니 시집 가서도 이래 와 가지고 씻거 줄라 카나? 내사 마 한 일백 오십은 살라 캤디 니 이캐사서 어데 오래 살겠나?”

아버지의 모습에서 한 줌의 파아란 외로움을 훔쳐낸다. 구부러진 등이 너무도 안타깝다. 걷잡을 수 없이 슬퍼지려는 마음을 챙기느라 애쓰며 방으로 들어선다. 벽에 걸린 아버지의 옷가지들이 유난히도 추레해 보인다. 아버지의 옷에 가만히 얼굴을 묻어 본다. 땀 냄새, 담배 냄새, 거름 냄새, 농약 냄새, 숫한 세월의 냄새들. 이 진실의 냄새, 이 냄새가 가져다준 대가가 너무 보잘것 없다하며 지독한 원망을 풀어놓곤 하던 때도 적잖았다. 정답고 인자하신 아버지의 냄새, 이 냄새를 사랑한다, .

 

3대 외동아들이면서 아들을 두지 못하신 아버지, 그러나 궤도를 벗어나지 않으시고 우리들 딸 여섯을 위해 당신의 인생을 정직한 흙에다 고스란히 바치셨다. 별명이 진사이신 만큼 아버지께선 글을 잘 하셨다는데 가난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이제 무지개를 만날 수 없으시다. 당신만을 위한 희망도 욕심도 가질 수가 없으시다. 고독하면서 고독할 수 없고 슬프면서도 슬퍼 할 수 없는 그런 연륜이 쌓여지고 만 거다. 아버지의 검게 탄 얼굴에 약간의 윤기가 들어 보여서 좋다. 매일 이렇게 씻어드려야 하는데. 아버지 곁에 앉았다. 숨소리가 무척 힘겹게 들린다.

 

잘 해 드려야지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또 한 번 나를 답답하게 만드신다. 뜨락에 말라붙어 있던 닭똥을 손으로 휙 쓸어 내시는 게 아닌가? 그런 걸 어떻게 손으로 치우냐는 나의 발끈한 공격에

그러마, 입으로 치우란 말이가?”

하시며 풀 먹인 바지저고리를 밀쳐놓으시고 해어진 작업복으로 갈아입으신다.

다아 소용없는 기라

아버지의 파랗게 시린 언어들이 자꾸만 내 가슴에 뜨겁게 와 닿는다. 가슴깊이 솟구치는 아버지에 대한 정을 난 왜 으로밖에 표현 해내지 못하는 걸까?

 

축제의 분위기로 뜨거워진 캠퍼스에 고향집 냄새나는 한 줄기 초록빛 바람이 머물다 갔다. 농악놀이를 보며, 과수원에서 땀 흘리고 계실 아버지 생각이 났다. 농악을 좋아하시고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가끔씩 술 취해 들어오시면 녹음기에다 직접 지으신 가사를 구수한 목소리로 회심곡처럼 담아 놓곤 하신다.

사진 베끼 놓고 목소리 베끼노마 그 참 희한 하겠네

일본으로 만주로 돈 벌러 다니시며 고생하시던 일과 늦게 둔 막내딸에게 부치는 가사가 하도 절절해서 딱 한 번 들은 이후에는 재미없다고 딴전을 피우며 아예 듣지 않았다.

 

갑자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사랑채 한 모퉁이에 노오란 원추리가 피었다가 졌을 테고 가장골 뒷산엔 하이얀 싸리꽃이 만발했을 테고 이제 곧 과수원 모퉁이에 보랏빛 도라지꽃이 만발하겠지. 약 장대를 힘겹게 든 아버지의 모습이 앞을 흐리게 만든다. 나는 정의 중량감으로 비틀대며 대구역 대합실로 미친 듯이 달려간다. 긴 의자에 앉아 있는 그런저런 사람들의 신발 중에서 흙 묻은 아버지의 고무신을 찾는다. 그러나 기적소리만 고향으로 보내고 결국 내 나이키 신발은 대구역 계단을 두 계단씩 건너뛰며 도시로 향하고 만다. 어제도 그렇게 대구역 대합실에서 흙 묻은 고무신을 찾다가 놓칠 뻔한 막차를 겨우 타고 집으로 왔다.

 

일이 고되니까 아버지께선 벌써 주무시고 계셨다. 꿈속에서 내가 오는 소리를 듣기라도 하신 걸까? 굽은 등을 돌리시고 누우신 모습이 솜털 무게만큼 밖에 되어 보이지 않아서 애처롭다. 여전히 발엔 흙이 묻어 있다. 이런 아버지를 뵐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짓밟고 싶도록 미워진다. 나의 허영심이 결국은 아버지를 이렇게 만든 거다. 아버지 곁에서 따스한 밥 한 그릇 지어 드리지 못하고 사향내 나는 도시의 한복판에서 나는 분수에 맞지 않게 대학에 다니고 있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흙, 그 흙길을 외면하고 시멘바닥을 밟으면 세련되어 보일까봐, 돈 많은 아버지를 둔 딸처럼이나 알아줄까 봐서 도시로 뛰쳐나오고 말았다. 유리벽에 비치는 주름진 아버지의 모습, 맥주잔에 어리는 흙 묻은 아버지의 발, 아버지는 늘 이렇게 나를 따라 다니신다. 아니 나는 늘 아버지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조금만 참으시면 제가 편히 모시겠습니다.’ 그러나 내 입에서 뇌까려지는 소리는 전혀 엉뚱해지고 만다. ‘남들보다 두 세배씩 일해서 번 돈 도대체 얼마나 쌓였습니까? 진실된 삶의 대가가 겨우 이거랍니까? 아버지 곁에서 착하게 참하게만 살아간다고 해서 모든 게 다 해결될 일은 아니잖습니까? 그렇게 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허무함을 배우고 답답함을 느낄 뿐입니다. ’ 난 결국 아버지를 슬프게 해 드리고 만다. 손가락을 깨물며 빠알간 울음 한 움큼 쏟아내 버려야만 하고.

 

아침에도 그랬다. 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작은 화단에 겨우 이태 째 꽃이 피기 시작한 라일락 나무가 있다. 그 라일락 나무를 예쁘게 키운다고 전지를 하신 모양이다. 그런데 이건 영 몽땅 잘라 낸 거나 다름이 없으니 꽃이 어디서 핀단 말인가? 더군다나 내가 가장 정성 들여 키우던 넝쿨장미, 찔레나무에 접을 붙여서 살려낸 그 넝쿨장미 가지를 하필이면 잘라내 버린 게 아닌가! 진딧물이 생겨서 능금나무에 해롭다고. 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울고불고 필요이상의 사랑의 표현을 하고 말았다. 딸년들 대학 시키면 저 지경이 된다고 역정을 내셨다. 나는 다시는 안 온다고 했고 아버지께서도 다시는 오지마라고 했다. 아버지 보고 싶어서 축제기간도 접어두고 막차 타고 달려온 내 감정이 산산이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래, 니 말대로 손에 흙 안 묻히고 꽃피는 기나 쳐다보고 한 번 살아보자. 어데서 묵을 끼 지대로 나오는가.”

오월의 따가운 햇살은 그림자를 동으로 드리운 지 오래인데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칠십년을 훨씬 넘게 살아온 아버지의 땅, 아버지가 손수 지으신 이 허름하고도 추억이 서려 있는 집, 군데군데 살피는데 문득 장독대 한켠에 오래 전 시들어버린 싸리 꽃 한 아름이 초라하게 여윈 아버지의 모습으로 흐려온다. 어디로 가셨을까?

 

아버지 좋아하시는 술이라도 받아 놓아야겠다. 들어오시면 환하게 웃어 보여야지. 아버지 얼굴에 마구 비누 거품을 풀어야지. 그래서 오늘은 아버지의 웃음을 아버지의 눈물을 내가 몽땅 가져봐야지. 상큼한 한 움큼의 초록빛 바람이 탱자나무 울타리를 넘어 앞마당에 동그랗게 모여든다. 풋풋한 풀 내음, 보리 내음, 거름 내음, 정다운 아버지의 냄새다. 아버지의 빛바랜 머리카락이 오늘따라 유난히 희게 보이는 것만 같다. 하염없이 들어오시는 아버지의 검게 그을린 손에는 넝쿨장미 한 그루가 소중히 들려져 있다.

아버지, 아버지이-. <>

 

(1982. 5. 200자 원고지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