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 북 | 세계 명작을 찾아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권장 수업 시간 : 2교시(100분)
○ 대상 꼭지 : 고교독서평설 2006년 10월호 「세계 명작을 찾아서」
○ 참고 자료 : 밀란 쿤데라 지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
밀란 쿤데라 지음, 『느림』(민음사)
박태상 지음, 『박태상의 동유럽 문화 예술 산책』(생각의 나무)
○ 학습 목표 : ① 쿤데라의 소설관이 작품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으며, 이는 그의 세계관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②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프라하의 봄’, 곧 체코 민주화 운동의 발단과 전개 과정, 역사적 의의를 이해할 수 있다.
○ 집필자 : 하남석_ 유레카 논술·구술 연구소 강사
들어가는 글
“스트라빈스키(I. Stravinsky, 1882~1971, 러시아 태생의 미국 작곡가), 피카소(P. Picasso, 1881~1973, 에스파냐 태생의 프랑스 화가) 그리고 초현실주의(surrealism, 프로이트가 주창한 정신 분석학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추구한 20세기의 문학·예술 사조)가 나를 사로잡았듯이 공산주의는 나를 매혹시켰다. 공산주의자들은 위대하고 기적적인 변형으로 완전히 새롭고 다른 세계를 약속했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뒤 공포의 통치를 시작했다. 나는 공산주의와 독단주의, 정치적 재판의 실상(實像)을 직접 경험하면서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또한 권력에 도취되었다가 권력으로부터 거부당하고, 그것에 저항하다가 죄의식을 느끼는 일이 어떤 것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는 ‘사회가 문명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획일화된 사고방식과 전체주의 속에서 인간의 실존과 자유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문제를 탐구해 오고 있는 작가다. 그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프라하의 봄’이라는 역사적, 정치적 사건이 어떻게 한 세대의 삶을 좌절과 파멸로 몰아갔는지를 밀도 있게 추적한다.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신선하고 섬세한 언어와 문체, 영화를 연상시키는 영상적이고 파편적인 구성(가벼움), 이러한 표현 양식을 통해 드러나는 비극적인 현실과 역사 인식(무거움) 사이의 반어(反語)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프라하의 봄’, 그리고 쿤데라의 작품 세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심화 자료
밀란 쿤데라의 생애와 작품 세계
밀란 쿤데라는 1929년 체코 중부 모라비아 지방의 도시 브르노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연구가이며 야나체크 음악원 교수였던 아버지 루드비크 쿤데라에게 어려서부터 피아노 레슨과 작곡 수업을 받았다. 예술적 감수성을 일찍부터 키워 나갈 수 있었던 쿤데라는 음악과 문학, 영화 등에 관심과 소질을 보였다. 그는 열아홉 살 되던 해인 1948년 프라하의 카렐 대학에서 음악 이론을 배웠고, 프라하 예술 대학 영화학과에서는 시나리오 창작과 영화 연출 수업을 받았다.
1950년 쿤데라는 사상이 문제가 되어 공산당에서 축출되었고, 학교에서도 쫓겨났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서 유럽의 수많은 청년 지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공산주의의 매력에 이끌려 공산당에 입당했었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혁명으로 모두가 평등하고 함께 잘사는 세상을 이룩하자.’는 구호나 이론과는 달리, 개인을 또 다른 제도적·사회적 모순의 희생양으로 만들 뿐이었고, 쿤데라는 여기에 환멸을 느꼈다. 그 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뒤 구소련에서 탈(脫)스탈린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1956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의 재입당이 허용되었다.
그리하여 쿤데라는 1960년부터는 모교인 프라하 예술 대학에서 문학과 시나리오 강의를 맡았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와 〈아마데우스〉(1984)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영화감독 밀로스 포먼(Milos Forman, 1932~ )처럼 뒷날 세계 영화계의 유명 인사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그 뒤 체코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는데, 이는 폴란드와 이탈리아의 영화, 특히 프랑스 뉴 웨이브(New Wave)에 큰 영향을 끼쳤다. 뉴 웨이브란, 1950년에서 196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된 영화 운동으로, 틀이나 집단에서 벗어나 개인을 강조한다는 점, 사실적이며 혁신적인 구성, 영화적인 시간과 공간에 대한 실험적 시도가 특징이다.
쿤데라는 1963년부터 1969년까지 체코 작가 연맹 중앙 위원을 맡았으며, 각종 문학 전문지의 편집 위원도 겸했다.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에 그는 다른 지식인들과 함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을 요구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란, 비밀경찰이 존재하지 않고 언론·출판의 자유라는 기본적 권리가 허용되는 사회주의, 당에서 국민의 의견이 반영된 정책을 채택하는 사회주의를 뜻한다. 쿤데라는 정부의 검열제 폐지와 체코 문화의 재건 등을 소리 높여 외쳤다.
하지만 그해 8월, 소련군이 프라하를 무력으로 침공한 뒤 쿤데라는 결국 교수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 책을 출판하여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권리 또한 박탈당했고, 그 결과 7년이라는 세월 동안 외롭고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1968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 출판된 『농담』이 1973년 메디치상을 받게 되면서,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많은 프랑스의 지인(知人)들이 그를 공식적으로 초청하여 1975년 부인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했다. 렌 대학에서 비교 문학을 강의하던 그는 1979년 체코 당국이 시민권을 박탈하자 아예 프랑스로 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데 행복을 느끼면서 서서히 소설 창작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그해에 『웃음과 망각의 책』을 썼다. 이듬해인 1980년에는 프랑스 국적을 갖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밀란 쿤데라 작품의 특징은 구조주의적인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그는 빛과 어둠, 영혼과 육체,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 따뜻함과 차가움, 존재와 비존재, 느림과 빠름, 시간의 직선적 진행과 윤회적 반복, 우연과 운명 등으로 대표되는 이분법적인 대립항을 즐겨 찾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구조주의자의 한 사람으로서 역사와의 단절을 주장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가 찾으려 한 것은 그 시대 역사와의 유기적인 관계망 속에서 발견되는 이분법적인 논리였기 때문이다.
또한 쿤데라는 전체주의에 물든 문명 세계 속에서 소설이 우리에게 열어 주는 삶의 가능성을 새롭게 조망한다. 그는 현대의 보편적이고 일률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 날카로운 의혹의 시선을 던지는 동시에, 이러한 삶의 방식을 부정하여 역사의 지배에서 벗어난 ‘상대적인 인간’의 삶을 제시하려 한다. 다시 말해 그는 소설의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빌려, 비록 획일화된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는 하지만 인간에게는 이러한 문명의 폐해에서 벗어나 자유와 해방을 누리려는 삶의 의지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러한 강한 회의주의와 현대의 정치적 신화에 대한 냉소적 비판 등은 쿤데라 자신이 직접 겪어야 했던 역사적 사건들이 남긴 환멸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쿤데라는 문학 작품들에서, ‘바람직한 의도로 시작된 인간적인 정치 운동이 전체주의로 변질되곤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공통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종교적 충동이 흔히 그러하듯, 공산주의 또한 광신주의를 유발하기 쉬우며, 이는 그것이 영원한 평등과 단결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꿈을 약속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러한 이유로 쿤데라는 철학자나 사상가처럼 어떤 이론이나 사상도 완전히 정립해서 제시하지 않는다. 만약 이론과 사상을 이상적 모델로 제시할 경우, 그것 또한 하나의 절대적이고 독단적인 체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쿤데라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일관되게 스탈린주의와 전체주의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인간 실존에 대한 성찰과 탐구가 더 본질적인 과제였다. 이 같은 성찰의 내용은 참으로 철학적이고 무거운 것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주제를 가벼움의 외피(外皮)로 포장하여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특히 그가 즐겨 쓰는 표현 기법인 해학과 반어는 그 가벼움의 형식으로 말미암아 무거운 주제를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라하의 봄
‘프라하의 봄’은 1968년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일어난 자유화 운동을 가리킨다. 이 같은 민주화의 열망을 막기 위해 구소련이 탱크를 앞세워 프라하를 침공한 사건까지 포함해서 ‘체코 사태’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프라하의 봄’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줄리엣 비노슈가 주연을 맡고, 필립 카우프만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1988년에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영화의 원작이 바로 체코 출신의 프랑스 망명 작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체코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주의권에서 우등생으로 통했다. 특히 동구권 가운데에서는 가장 먼저 의회 민주주의를 실험했을 만큼 개혁적인 성향이 강한 국가였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농업과 산업 생산량이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식량과 공산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 그러자 공산당 내에서는 경기 침체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으며, 지식인들은 더 많은 표현의 자유를 요구했다.
그 당시 체코 공산당 제1서기 노보트니(Antonin Novotný, 1904~1975)는 1962년과 1963년에 슬로바키아 인들에게 자치를 허용하고 강경파를 면직시키는 조치를 취하면서도 여전히 보수적인 노선을 유지했다. 이에 반발한 체코 국민들은 1967년 6월에 열린 작가 동맹 회의를 계기로 자유화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드디어 1968년 노보트니가 물러나자, 개혁파였던 슬로바키아 출신의 두브체크(Alexander Dubček, 1922~1991)가 공산당 제1서기가 되었다. 그의 주도 아래 당 중앙 위원회는 1968년 4월 5일에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라는 노선을 강령으로 채택했다. 두브체크 정부 아래 체코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일련의 개혁 정책을 실시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개혁은 급물살을 탔고, 개인의 자유와 다당제가 허용되었다. 그리고 지식인들이 당의 강령보다 훨씬 급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2000어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2000어 선언’은 체코의 유명 작가 바츨리크의 주도 아래 진보적 지식인 70여 명이 서명한 성명서로, 여기에는 반(反)소련 자유화 운동과 개혁의 방향에 대한 각계각층의 의지와 확신이 담겨 있다. 또 스탈린식 공산주의 체제의 한계를 지적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바탕으로 한 개혁 방안의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선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유능한 기업 담당자의 적재적소 배치, 노동자의 자주적인 관리 강조, 권력을 악용·남용한 정치가의 퇴진, 각종 시민 위원회 창설,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위원회 설립, 외국 세력 개입에 대한 투쟁 등이 눈에 띈다. 이 선언은 다수의 공산 당원을 포함한 체코 국민들에게서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구소련이 주축이 된 바르샤바 연합군의 프라하 침공으로 인해 피의 숙청이 시작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구소련은 자유화 조치와 개혁 노선이 다른 동구권 국가로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여 그해 8월, 자국의 군대와 동독, 불가리아, 폴란드, 헝가리의 군대를 동원해 체코의 프라하를 침공했다. 이때 구소련의 요청으로 파병한 4개국은 바르샤바 조약 기구❶에 소속된 국가들이다. 1960년대 후반 들어 동서 대립이 완화되고 중국과 구소련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은 자유화 운동과 바르샤바 조약 기구 내에서의 자주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소련은 동맹국들 사이에서 자신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려 했고, 동유럽 공산권에서 자유화의 물결을 이끌고 있던 체코를 그 본보기로 삼았다. 그 결과 수천 명이 희생되었고, 두브체크는 서기장 자리에서 쫓겨났으며, 개혁 노선은 모두 원점으로 돌아갔다.
프라하의 봄이 강제로 진압된 뒤, 체코 지식인들과 국민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은 무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일시적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일 뿐, 결코 사라지지는 않았다. 1989년 구소련 연방이 해체되자 자유화에 대한 갈망은 체코에서 제일 먼저 되살아났다. 그리하여 체코 민족주의자들의 개혁 방안은 다시 힘을 얻게 되었다. 프라하의 봄 당시에 해임되었던 공산당 제1서기 두브체크는 국민 투표를 거쳐 국회 의장으로 복권(復權)되었고, ‘2000어 선언’에 서명했던 양심적인 작가이자 반체제 인사인 하벨(Václav Havel, 1936~ )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수업 활동
터 잡기
1.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배경이 되는 ‘프라하의 봄’에 대하여 알아보자.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에서는 소련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체코슬로바키아 역시 마찬가지로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스탈린주의적인 강압적 사회주의 정권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 운동의 결과 1968년 개혁파 두브체크가 공산당 서기가 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두브체크를 비롯한 개혁파들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체코 공산당 중앙 위원회에서 민주 선거,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 보장, 구소련으로부터의 자주성 확보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새로운 강령을 채택하게 된다. 이 정책은 많은 국민들에게 환영을 받았고, 이후 체코에는 민주, 자유화의 바람이 불게 되었으며, 이를 ‘프라하의 봄’이라 한다.
하지만 구소련은 체코 사회주의의 변화가 다른 동구권 국가들에게도 파급될 것을 우려해 동유럽 국가들과 함께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연합군을 투입해 개혁 운동을 진압하고 개혁파들을 대거 숙청했다. 이 과정에서 수십만의 개혁파 당원들이 제명, 숙청되는 등 유혈 사태가 빚어졌다. 하지만 이렇듯 프라하의 봄이 강제로 진압된 뒤에도 자유에 대한 체코 지식인들과 국민의 열망은 억압 때문에 일시적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뿐, 결코 사라지지는 않고 있었다. 1989년 구소련 연방이 해체되자 자유화에 대한 희망의 불씨가 제일 먼저 되살아난 곳이 체코였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체코 민족주의자들의 개혁 방안에는 다시금 힘이 실리게 되어, 프라하의 봄 당시에 해임되었던 공산당 제1서기 두브체크는 국민 투표를 거쳐 국회 의장으로 복권(復權)되었고, ‘2000어 선언’에 서명했던 하벨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길잡이_ 작품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프라하의 봄’에 대하여 학생들이 조사해 보도록 한다. 그리고 이 사건을 이와 유사한 사례들, 예를 들면 중국의 천안문 사건, 우리나라의 5·18 민주화 운동 등과 비교해 보도록 지도한다.
【216쪽 참조】 그 당시는 구소련이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공산 국가들을 감시하며 억압하던 암울한 시기였다. 그 결과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구소련의 위성국이 된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지에서는 내정 간섭에 대한 반발이 커졌다. 스탈린(I. V. Stalin, 1879~1953) 격하 운동 같은 반(反)소련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1968년 체코에서는 사회주의의 강압 통제에 반대하고 구소련의 위성 통치를 척결하자는 ‘프라하의 봄’이 일어났다. 그러자 구소련은 군대를 투입하여 ‘프라하의 봄’을 진압하고, 스탈린주의를 비판했던 체코의 두브체크를 해임했다. 이로써 ‘프라하의 봄’은 순식간에 꽃피었다 스러졌다. 그 뒤로 구소련에서 고르바초프(M. S. Gorbachyov, 1931~ ) 공산당 서기장이 개혁과 개방 열풍을 일으키기까지, 20여 년간 냉전 시대가 이어졌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평설에서 발췌한 지문들이다. 괄호 안을 알맞은 단어로 채우시오. (2~5)
2. 영상물이 범람하는 오늘날에는 문학, 특히 소설의 위기가 심심찮게 언급되곤 한다. 하지만 쿤데라는 “소설은 결코 다른 것으로 대치될 수 없는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세르반테스와 디드로, 카프카 이래로 인간을 ( ① )(에)서 지켜 주고, 과오를 반성할 줄 모르는 ( ② )와/과 거대한 ( ③ )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일이야말로 소설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그의 말에서 ‘시대의 양심을 대변하는 진실한 목소리’란 어떤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217쪽 참조) ① 존재의 망각 ② 기술 문명 ③ 국가 권력
3. 쿤데라가 작품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에게 삶은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삶에는 한계가 있고 존재는 허무하기만 하다. 여기에 대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삶이 아무리 허무해도 나름대로 의미를 찾으며 진지하게 살아갈 수도 있고, 자신을 얽어매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도 있다. 그 결과 테레사는 자신을 질투의 고통 속에 가두고, 사비나는 그리움과 고독에 시달린다. 쿤데라는 그중 어느 쪽 손도 들어 주지 않는데, 이 같은 모호한 태도는 그의 세계관과 관련이 있다. 그가 보기에 세계는 혼란과 수수께끼로 가득 찬 곳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 ① )에 따라 모든 것을 단호하게 나누고, 자기가 선택한 한쪽만 좇으려 한다. ( ② )은/는 이처럼 무리한 확신과 단정에서 비롯된다.
(218쪽 참조) ① 이분법적 논리 ② 인간의 비극
4. 그 밖에 비평가들 사이에 ‘소설이냐, 철학적 에세이냐.’라는 논란이 벌어질 정도로, 쿤데라의 소설에는 줄거리와 상관없이 온갖 철학적인 담론이 불쑥불쑥 등장한다. 예컨대 첫머리부터 니체의 ( ① )이/가 느닷없이 튀어나오는데, 이는 ( ② )의 소설을 경멸하는 쿤데라가 인간과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 주기 위해 택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 결과 독자는 작가의 서술을 따라가면서 내용을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데 방해를 받기도 한다.
(219쪽 참조) ① 영겁 회귀 사상 ② 줄거리 중심
5. 그렇다면 쿤데라가 일반적인 소설 쓰기의 형태에서 벗어나려 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그는 절대적인 것에서 일탈하는 자유를 직접 보여 주려 했다. 결국 그는 개인의 삶을 압도하는 전체의 무거움, 곧 ( ① )의 횡포에 맞서 다양성을 옹호하기 위해 이러한 시도를 한 것이다. 그래서 작품에서 ‘이것은 무엇이다.’라고 단언하거나 확신에 찬 말투를 쓰지 않는다. 나아가 질문으로 소설을 모호하게 끌고 가면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는 ( ② )을/를 지향한다. 이 또한 ‘소설은 사실이나 주의, 주장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 질문에 대한 검토일 뿐’이라는 그의 소설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의 세계관과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219쪽 참조) ① 주류 문화 ② 열린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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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음의 제시문들 속에는 이상향의 건설이라는 목표 속에서 소외되어 가는 개인의 문제들이 나타나 있다. 이를 ‘명분’과 ‘실제’ 사이의 모순을 중심으로 인간 사회의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발표해 보자.
(가) 중부 유럽에서 공산주의 정권들을 범죄자의 기구라고 믿는 사람들은 범죄자 정권을 세운 주체가 ‘범죄자들’이 아니라 ‘광신도들’임을 망각하고 있다. 광신도들은 지상 천국을 만든다는 명목 아래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럼에도 고발된 공산주의자들은 “우리는 공산주의의 이상을 믿은 죄밖에 없소, 우리 역시 기만당했단 말이오!”라며 항변했다.
토마스는 고민했다.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은 죄가 없는가? 왕좌에 앉은 바보는 바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테베의 왕이 되어 어머니와 결혼한 죄를 저질렀음이 밝혀지자, 자신의 눈알을 찌르고 장님이 되어 방랑의 길을 떠났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순수하다고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지 않을까.
“너희들의 무지 때문에 이 나라는 수백 년간 자유를 잃어버렸어. 그런데도 과연 당신네들이 결백한가? 당신들은 눈알을 파고 이 땅에서 떠나야 마땅해!”
토마스가 이런 생각을 정리해 신문사에 보낸 글은 독자란에 실렸지만, 그로서는 전혀 달갑지 않았다. 편집자는 멋대로 글을 줄였다. 1968년 봄이었다. 결백을 외치던 공산주의자들은 흥분한 민중에게 붙들려 법정으로 끌려갈까 봐 겁먹고 있었다. 이들은 러시아 대사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이때 토마스의 글이 신문에 실리자 “신문도 우리의 눈알을 파내야 한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있어!”라며 외쳤다. 2, 3개월 뒤 러시아 인들은 그들의 행정 구역 안에서 자유로운 토론을 허용치 않겠다고 결의했고, 군대를 이끌고 하루 만에 체코를 점령했다.
토마스는 병원에서 가장 유능한 의사였다. 사람들은 그가 철회 성명을 쓰기를 바라며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이 미소를 참을 수 없었던 토마스는 과장 의사에게 가서 아무 데도 서명하지 않겠다고 말한 뒤 병원을 그만두었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나) 주정수는 그 여자처럼 가늘고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로 정력적인 취임 연설을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 나는 여러분에게 약속하겠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우선 이 섬을 원생들의 낙원으로 꾸며 놓겠다고 약속했다. 시책의 제일 목표를 새로운 병원 시설과 환자촌의 수용 시설 확충 및 요양 환경 개선 사업에 두겠다고 선언했다. 그리하여 이 섬을 동양 제일, 아니 세계 제일의 나환자 요양소로 꾸며서 버림받고 쫓겨 온 사람들의 새로운 고향, 자랑스런 낙토로 만들어 놓고 말겠다고 장담했다.
―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웃으로부터 끝없는 멸시와 박해를 당해 왔습니다. 그 서러운 멸시와 박해의 기억을 안고 여러분은 그 절망적인 유랑의 길을 몇 천 리 몇 만 리나 걸어 헤매야 했습니까. 이제 여러분은 유랑에 지쳤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은 여기 이렇게 새 이웃으로 모였습니다. 가엾은 이웃들과 함께 이곳에다 여러분의 새 고향을 꾸밉시다. 고향을 꾸며 놓고 아직도 이웃과 가족들에게서마저 서러운 박해를 당하고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을 이곳으로 맞아들여 그들과도 정다운 이웃으로 오순도순 보람 있는 삶을 누려 봅시다.
감동적이기까지 한 주정수의 연설은 이미 그곳에 모여 있던 원생들의 기우를 말끔히 씻어 주고도 남았다. 그의 연설이 끝났을 때 원생들의 도열 속에서는 여기저기 조용한 흐느낌 소리마저 일고 있었다. …(중략)…
그는 부임 연설 이후에도 그의 낙토 건설 사업을 위한 몇 가지 사전 작업을 철저히 다져 나가고 있었다. 그는 먼저 원생들 가운데서 10명의 대표를 뽑아 ‘환자 평의회’란 이름의 자문 기구를 설치했다. 그리고 그 평의회로 하여금 원장과 원생들을 연결 지어 주는 중간 교량역을 담당시켰다. 그러고도 그는 아직 주일마다 토요일만 되면 평의회를 열게 하여 새 낙토를 위한 건설 공사의 필요성을 되풀이 역설했다. 원생들 스스로가 새 낙토의 꿈에 부풀어 몸살이 날 때까지 충분한 설득을 계속했다.
마침내는 원생들 스스로가 공사 협력을 다짐하고 나서게끔 되었다. 주정수는 비로소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섬을 새로 꾸미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벽돌이 필요했고, 그 벽돌을 찍어 낼 공장부터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평의회 대표 열 사람과 함께 그 벽돌 공장을 세울 부지를 설정하고 곧 이어 기공식을 올렸다. 그가 부임하고 나서 한 달 남짓 시일이 지난 어느 선선한 가을날 아침의 일이었다. 공장을 세우고 처음 얼마 동안은 중국인 벽돌공을 들여다가 벽돌을 굽는 기술부터 익혀 냈다. 기술이 숙달되자 원생들은 이제 그 중국인 기술자를 내보내고 자신들이 직접 벽돌을 구워 내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구워 낸 벽돌들은 오래지 않아 곧 새로운 병사(病舍) 건축의 가장 요긴한 자재로 쓰이기 시작했다.
원생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열심히들 일을 했다. 병사 지대 3개 부락(당시)에서 작업이 가능한 사람은 매일같이 벽돌 공장으로 혹은 병사 신축장으로 고된 출역을 계속하면서도 누구 한 사람 피곤해 할 줄을 몰랐다. 모처럼 일 삯이라는 걸 받아보는 것도 대견스러웠지만, 자기 손으로 벽돌을 구워 내고 자기 손으로 자기가 살 집을 지어 낸다는 것이 더할 수 없는 위안을 느끼게 했다. 자기의 힘으로 자신의 낙원을 꾸민다는 자부심이 모처럼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끼게 했다. …(중략)…
그런데 이런 시설 공사가 하나하나 진행되어 나가는 동안 섬 안에선 그 작업의 성격이 서서히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었다. 공사 경비가 원생들의 노력 봉사에 의해 충당되어지는 부분이 차츰 많아져 갔다. 이 무렵부터 섬 안에선 병원 시설을 마련해 준 시혜자에 대한 '보은 감사일(報恩感謝日)'이란 날을 정해 놓고 한 달에 한 번씩 감사 묵념회를 시행하고 있었는데, 이날 출역한 원생들의 작업 노임은 전액을 앞서의 시설 건립 기금으로 헌납토록 종용되었다. 원생들은 군말 없이 노임을 거둬 바쳤다. 더러는 당국의 취지를 기꺼이 수긍했고 더러는 그리 달가운 빛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환자들을 대표하고 있는 평의회의 결의라는 형식을 빌려 정해진 일이라, 싫거나 좋거나 원생들은 누구나 일을 했고 누구나 노임을 거둬 바쳤다. 작업 진도가 아무래도 시원치 않았다. 어딘지 열의가 덜한 듯했고 능률도 기대치만큼 오르지 않았다. 원생들에게 작업 노임을 헌납시켜야 할 만큼 여유가 덜한 병원 사정이 이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었다. …(중략)…
원생들은 이제 어김없는 노예였다. 병원 처사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비판이 용납되지 않았다. 항거를 해볼 기력도 없었다. 기계처럼 산을 허물고 진탕을 메우고 산봉우리를 찾아 올라가 공원을 꾸밀 거목 거석들을 떠메어 나르곤 했다. 사또의 채찍 아래 원생들은 짓무른 육신 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한 방울의 힘까지도 어김없이 짜내야 했다.
그 마지막 한 방울의 힘을 소모하고 나면 그들은 매정스런 사또의 채찍 아래 쓰러져 누운 채 조용히 숨길을 거두어 가곤 했다. 자살 사건과 탈출 사고가 하루가 멀다 하고 꼬리를 물었다. 외곽선 도로의 순찰이 몇 배로 강화돼도 빈약한 나무토막 하나에 의지하여 바다를 건너가다 해협 물살에 휩쓸려 가 버린 사람들이 수를 셀 수 없었다.
그 숱한 인명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공사는 어김없이 진행되었다. 장흥과 완도 등지서 운반되어 온 기암괴석들이 여기저기 배치되고 공원 일대는 남국의 정취를 북돋우기 위하여 멀리 대만에서까지 남국 식물들을 주문해다 심었다. 이듬해 4월에는 어느 도회의 한복판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넓고 호사스런 공원이 그 마지막 작업을 끝내게 되었다. 주정수는 크게 만족했다.
하지만 원생들은 물론 만족할 수가 없었다. 주정수의 부임 이후로는 거의 모든 일이 그랬듯이 이번에도 원생들은 즐거워할 줄을 몰랐다. 섬 안에 시설이 한 가지씩 늘어 갈 때마다 그만큼 섬 전체가 천국에 가까워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지옥으로만 변해 가고 있었듯이, 이번에도 이 섬은 공원이 하나 더 늘고 그곳에 바쳐진 자신들의 노력(勞力)과 희생이 크면 클수록 그 노력이나 희생의 크기만큼 섬은 점점 더 낙원과는 인연이 멀어져 가고 있었다. 원생들에겐 다만 새로운 원망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는 느낌 외에 보람 같은 건 눈곱만큼도 지녀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도 원생들에겐 공원을 자랑스럽게 관리하기 위하여 보다 많은 주의와 노력 봉사가 명령되었으므로 더 할 말이 없었다.
―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에서
유사(有史) 이래 인간 사회는 개인과 집단 사이의 조화라는 문제에 골몰해 왔다. 개인의 욕망과 집단의 가치 추구 사이의 괴리는 물론, 집단적 가치 추구 과정에서 드러나는 ‘명분’과 ‘실제’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려 했던 것이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복잡해질수록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어떤 일에 대하여 ‘명분’을 세우고 그 일을 명분에 걸맞게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상호 합의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이는 비단 제시문 (나)와 같은 소설 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사회에서 수없이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의 모습이다. 제시문 (가)에서와 같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사회주의 국가는 인류의 자본주의로부터의 해방과 평등한 사회의 건설이라는 큰 목표를 삼고 동의를 얻었지만 결국에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게 되었다. 또한 이는 현존했던 사회주의 국가뿐 아니라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전체주의 사회, 또 그 이후의 개발 독재 국가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역사적 사례다.
그렇다면 ‘명분’과 ‘실제’ 사이에 이러한 모순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명분’을 설정하는 집단의 합의 과정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특히 그것이 특정 개인이나 소수층의 입장에 치우치는 명분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더욱이 더 큰 모순은 ‘명분’이 ‘실제화’되는 과정에서 원래의 합의가 왜곡되거나 잘못 해석될 때 발생한다. 아무리 좋은 ‘명분’이라도 개인이나 소수에 의해 일방적으로 ‘실제화’되면, 집단 구성원 다수의 합의나 동참을 이끌어 내기 어렵다. 다만 명분을 위한 명분이 될 뿐이다.
‘실제’의 결과만 중시하고 ‘명분’의 부당성을 지적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이러한 문제는 ‘실제’가 ‘명분’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가 배제된 결정은 오히려 더 깊은 갈등을 잉태할 수 있다.
구성원들 간의 합의를 거친 ‘명분’은 정립하기 어렵다거나, ‘실제’ 결과만 좋으면 ‘명분’이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견해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회의적인 견해는 특정 개인이나 소수가 이익을 얻고 다수가 희생되는 상황을 만드는 근본 원인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집단의 합의로 공동선(公共善, 개인이 아니라 국가나 사회, 또는 온 인류를 위한 선)에 입각한 ‘명분’을 수립하고,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동참할 때, 인간은 더 나은 사회를 지향할 수 있을 것이다.
+길잡이_ 이 문제는 2000년 서강 대학교 1차 모의 논술 고사에 출제된 문제를 변형한 것이다. 학생들이 주제와 깊은 연관이 있는 역사적인 사례를 제대로 찾아낼 수 있도록 지도한다.
【217, 219쪽 참조】 “세르반테스(M. de Cervantes, 1547~1616)와 디드로(D. Diderot, 1713~1784), 카프카 이래로 인간을 ‘존재의 망각’에서 지켜 주고, 과오를 반성할 줄 모르는 기술 문명과 거대한 국가 권력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일이야말로 소설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그의 말에서 ‘시대의 양심을 대변하는 진실한 목소리’란 어떤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중략)…
그렇다면 쿤데라가 일반적인 소설 쓰기의 형태에서 벗어나려 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그는 절대적인 것에서 일탈하는 자유를 직접 보여 주려 했다. 또 현실에서 절대적 진리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보이지 않는 폭력에 저항해야 한다고 보았다. 결국 그는 개인의 삶을 압도하는 전체의 무거움, 곧 주류 문화의 횡포에 맞서 다양성을 옹호하기 위해 이러한 시도를 한 것이다. 그래서 작품에서 ‘이것은 무엇이다.’라고 단언하거나 확신에 찬 말투를 쓰지 않는다. 나아가 질문으로 소설을 모호하게 끌고 가면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는 열린 소설을 지향한다. 이 또한 ‘소설은 사실이나 주의, 주장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 질문에 대한 검토일 뿐’이라는 그의 소설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의 세계관과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마무리하기
1.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무거움’과 ‘가벼움’의 요소들을 찾아 정리해 보고, 작가가 이를 통해 드러내려 한 것은 무엇인지 토론해 보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제목에서 ‘가벼움’이라는 개념을 따로 떼어서 볼 것이 아니라, 그 앞에 붙어 있는 ‘참을 수 없는’이라는 수식어가 함축하고 있는 복합적인 의미까지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쿤데라는 이 작품의 서두에서, 모든 대상을 둘로 나누어 그중 하나만이 절대적 진리라고 보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회의를 던지고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에 따르면, 인간은 세상 만물을 ‘영혼은 가볍고, 육체는 무겁다.’ 하는 식으로 구분지어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그중 하나에 가치를 두고, 그것만을 삶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두 가지 모두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제는 주요 인물들이 제각기 상징하는 ‘무거움’과 ‘가벼움’, 또는 그 둘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망설이며 방황하는 인간 군상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길잡이_ 작가가 작품을 쓴 의도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학생들 각자의 생각은 어떠한지 토론을 유도한다.
【217~218쪽 참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쿤데라는 실제적이고 참된 것은 ‘무거움’이며, 유한한 인생과 자유롭고 무의미한 것은 ‘가벼움’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주요 등장인물의 특징은 ‘가벼움-사비나, 무거움-테레사·프란츠, 가벼움을 추구하되 무거움을 감내하는 존재-토마스’로 정리된다. 먼저 사비나의 가벼움은 일회성을 추구하고, 사회적 관습이나 굴레의 속박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로 나타난다. 서로를 구속하는 연애를 원치 않는 그녀는 관계가 깊어지면 그를 배반하고 새로운 일회성을 찾아 떠난다. 상황을 ‘한 번뿐인 것’으로 만들어 끝없이 가볍게 사는 그녀는 관계나 상황에 일정한 의미가 부여되기 전에 그 가능성을 차단한다. 이는 곧 ‘의미’가 주는 무게를 피하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이와 반대로, 무거움의 표상인 테레사는 토마스에게 자신의 모든 행위와 삶의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테레사는 토마스에게 하나의 의미, 유일한 존재가 되기를 갈망하여 스스로를 괴롭히고, 그의 자유를 제한하며 살아간다. 삶을 진지하고 엄숙하게 바라보는 그녀는 믿음을 배신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으며, 토마스에게 자신이 가벼운 존재가 되는 것 또한 참지 못한다. 사진 기자가 된 것도 진지하게 살려는 노력인 동시에 ‘더 전진하고 더 높이 올라’ 그의 옆에서 살기 위한 방편이다. 프란츠 역시 ‘충실이 최고의 미덕이고, 역사의 대장정 은 가치 있는 것’이라 여기며 진지하게 살아간다. 한편 토마스는 이들의 중간에 서 있다. 그가 사비나와 같은 가벼움을 추구하면서도 테레사를 저버리지 못하는 것은 가벼움과 무거움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 바르샤바 조약 기구_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심각한 동서 대립 구도 속에서 서독의 재무장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대항하기 위해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8개국 총리가 1955년 폴란드 바르샤바에 모여 창설한 군사 동맹 조약 기구다. 조약 체결국은 구소련, 폴란드, 동독,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체코슬로바키아 이렇게 8개국이었으나, 알바니아는 구소련과 의견을 달리하여 1968년 탈퇴했다. 구소련의 위성국들에 대한 지배 강화 및 사회주의 국가들의 동맹 강화가 목적이며, 통합 사령부 설치와 구소련 군대의 회원국 영토 주둔권을 규정하고 있다. 조약은 전문과 11개 조항으로 되어 있으며, 무력 공격의 위협에 대처하는 협의(3조) 및 무력 공격에 대한 공동 방위(4조)로 이루어져 있다. 또 독립 및 주권의 상호 존중 및 내정 불간섭을 행동 원칙으로 한다. 1960년대 구소련은 핵 전력 증대를 배경으로 연합군 병력을 더욱 견고하게 편성하여, 동구권에 불어 닥친 자유화의 물결을 무력으로 탄압했다. <출처 : 독서평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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