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사랑방 / '바디'를 바라보며-
날씨가 추워지고 시간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누워있는 시간이 많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으므로(내 방엔 없음)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보다 따뜻한 이불 밑에 누워서 천정을 바라보고 있거나 누워서 책을 보게 된다. 예전 시골집 사랑방처럼 천정이나 벽지에 무늬가 없어서 기하학적 상상도 기발한 상상도 못하고 그냥 멍청히 있으면 바로 눈과 마주치는 벽에 걸린 옷걸이가 보인다.
오래 전부터 걸려있었지만 요즘 가장 많이 눈을 맞추는 물건이다. 옷을 걸어두려고 특별히 변형했지만 옷을 걸어두진 않는다. 둥근 구멍과 긴 구멍이 각각 열아홉 개 뒤집으면 반대로 된다. 저 구멍에다 새끼줄을 걸었었지. 저것을 ‘바디’라고 불렀고... 저것을 앞으로 젖히고 뒤로 젖히면 그 사이로 공간이 생겼었지. 그 공간에다 대로 만든 커다란 코바늘에 볏짚 두서너 개를 걸어서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면 그다음 저 바디로 쾅쾅 내리쳤었지. 힘을 줘서 내리쳐야 가마니가 촘촘하게 짜인 좋은 제품이 되었었지.
바디를 한참 보고 있자니 그 옛날 겨울 사랑방이 떠오른다. 집집마다 겨울 사랑방 윗목엔 항상 가마니틀이 놓여 있었고 구석 자리 가마니 안에는 생고구마가 가득 들어있었지. 가마니를 짜는 동안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호흡이 척척 맞아 들어갔고 그걸 보고 있는 나는 덩달아 행복해서 종일 옆에서 구경하고 있었지. 허리와 팔이 아프셨겠지만 가마니 갯수 만큼의 행복이 쌓이던 날 무엇보다 세 식구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며 먹던 그 생고구마의 맛, 아이스크림보다 맛있던 약간 얼어 쌉스름하고 달콤하던 그 맛...
그 가마니틀은 해체되어 없어지고 세 식구의 그림도 없어진 지금 부모님의 손때 묻은 바디만 내 방에 들어와 옷걸이로 걸려 있다. 그 옛날 겨울 사랑방- 거기엔 가마니 짜는 사람들의 가난한 행복이 놓여 있었다. 엄마, 아버지, 나, 세 식구가 함께 행복했던- 세월은 흘러 이 겨울 따뜻한 이불 밑에 누워서 바디를 바라본다. 바디가 그 옛날을 떠올리며 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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