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내 노년? / 창 넓은 서재, 책, 글...

몽당연필^^ 2013. 8. 7. 09:57

 

        내 노년?

 

 

내가 노년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창 넓은 서재에서 노을 바라보며, 안경 끝을 살짝 치켜올리며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의 모습,

나는 나이 들면 그런 모습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방학 한지가 2주일이 지났다.

아직 책 한권 읽지 못하고 놀러 다닐 궁리만 하고 있다.

서재가 따로 없는 거실에 누워서 책장에 꽂힌 책들을 올려다 본다.

 

천장 끝까지 닿은 책장이 앞으로 쏠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을 보면 마음이 뿌듯했는데 중압감이 든다.

중학교 때부터 읽던 책들이 아직도 꽂혀 있다.

다 읽었다고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두꺼운 책을 한 권 빼내서 본다.

세계문학전집, 사상서, 철학서...

얼마나 잘난 척하며 열심히 읽었던가?

작고 빽빽한 글자들을 보기만 해도 머리 아프고 어지럽다.

 

어느 날 아들이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다 읽었냐고 물었다.

낱권으로 산 건 거의 다 읽었다. 책이 읽고 싶어 안달이 날 때가 있었다.

돈을 모아서 책을 사고 그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그 때 밀려오는 희열이란...

 

그렇다. 그래서 독서가 취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운동보다 남자 친구보다 더 희열감을 가져다주던 저 책들...

그래서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책들

 

이 근래에 어떤 책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숨죽이며 빠져서 읽은 책이 있었던가?

대충 처음 중간 끝 훑어보면 다 읽었다고 한다.

아니, 실제로 뻔한 이야기여서 거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아니,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있다. 모르도록 어렵게 썼기 때문이다.

 

작가의 미세한 숨소리까지 들으려고 하고,

글을 쓴 사람을 존경하고 흠모하던 그 순수하고 겸손하던 때가 그립다.

책 하나를 내기 위해 많은 시간을 공들이던 투철한 작가의식이 그립다.

 

돈만 생기면 책보다 옷에 더 신경 쓰는 나는 참 속물에 불과하다.

나이가 들수록 복잡하고 머리 아픈 일은 멀리하려고 하는 경향도 있긴 하다.

사실 내가 책을 보지 않는 이유는 아니, 볼 수 없는 이유는

시간 때문도 아니요, 작가 때문도 아니요, 삭막한 마음 때문도 아니다.

 

그건 바로 눈 때문이다.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글자가 보이지 않는 이 현실,

돋보기를 쓰고는 한 시간 이상 책을 볼 수 없다는 이 슬픈 현실-

책을 볼 때마다 찡그려서 미간에 세로줄 주름이 생기고

눈이 흐리니 두통에 정신까지 흐리고...

 

젊은 사람들에게 말한다.

창 넓은 서재에서 노을 바라보며, 안경 끝을 살짝 치켜 올리며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의 모습, 그건 그야말로 꿈에 불과하다고...

그러니 지금 열심히 책을 읽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