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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 / 발신자 표시없음

몽당연필^^ 2013. 7. 22. 17:01

 

하루에 몇 번 울리지 않는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 표시제한...

방학이라 반가운 전화라도 올까? 기다리고 있는데

‘1544’나  ‘02’  ‘발신자 표시 없음’ 이란 전화가 오면 받고 싶지 않다.

받지 않을까 하다가 받았는데 ‘여보세요’ 하니 잘못 걸렸다고 한다.

야, 뭘 잘못 걸려. 너 **이구나.

어? 어떻게 알았어요?

임마. 내가 사랑하는 네 목소리 모를까봐.

히힛! 선생님 뭐하세요?

뭐하긴 전화 받지.

방학이라서 이제 학교 안가세요?

그래, 어떡하지 너 한참 못 봐서...

맛있는거 사준다고 했잖아요?

근데 특별교육은 잘 받고 있니?

아니요...

그건 꼭 받아야 해. 그것 다 받고 나면 전화 해.

저 바쁘거든요. 뚜뚜뚜 뚝 끊겼다.

 

 

 

학기 초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던 녀석,

늘 나와 대결구도를 벌이던 녀석의 전화다.

우아하고 조용한 이미지를 보이고 싶었지만

이 녀석으로 인해 말짱 꽝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늘 전쟁같은 사랑(?)을 했다.

아니 학교는 실제로 **와의 전쟁을 벌이다가

녀석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얼마 전 일요일 아침 일찍 전화가 와서

‘선생님 저 강제 전학 안 가면 안돼요?’ 라며 울음을 터뜨리던 녀석,

정말 진지하고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하며

흐느끼던 그 녀석 땜에 아침부터 전화 부여잡고

그 녀석 답지 않게, 나답지 않게, 함께 울먹였던 적이 있었다.

 

이미 수도 없는 사랑과 훈계와 징계가 있었지만 전혀 고쳐지지 않으니

학교폭력위원회에서 전학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방학 때 전학을 가야 한다. 담임인 나의 능력 부족일 수도 있다.

학생이나 반 분위기가 대체로 담임을 닮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 처음부터 그 녀석의 태도를 강압적으로 고치려 했는지도 모른다.

잘못을 못 본척 눈감아 줬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잘못에 대한 벌은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상부에 선처를 부탁해도 이미 너무 많은 사건에 연루되어 있어서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두 살 때 엄마가 가출하고 아빠와 살았으니

엄마의 정을 전혀 모르고 사는 셈이다.

녀석은 사고뭉치이긴 해도 보통 문제아에 속하는

학생들보다 심성이 맑고 착하다.

장난끼가 너무 심하고 아직 철이 없어서 관심을 끌려고 하다보니

과잉행동과 이상행동을 하게 되고 늘 앞장서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제일 먼저 눈에 띄게 된다.

집에 가도 아무도 없고 할 일도 없고 반겨줄 사람이 없으니

또래 문제아들과 어울리게 되고 거기서도 돋보이려고

더 큰 사고를 치는데 앞장서는 것이다.

수도 없이 상담하고 수도 없이 타일렀건만 단체생활을 할 수 있는

기본 예의라든가 참는 것이라든가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고쳐지지를 않는다.

 

대체로 학생들이 잘못되면 교사를 탓하고 학교를 탓한다.

중학생 정도면 이미 어느 정도의 자아는 형성된 시기이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지켜야 할 규칙이나 예의는

이미 유치원에서부터 배워온 터다.

유치원에서 배운 것만 잘 지키면 훌륭한 사회인이 될 수 있다.

유치원에서 배운 것을 반복하는 습관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부모의 교육 없는 교사만의 가르침은 반항을 불러올 뿐이다.

가정교육이 바르게 되어 있지 않은 학생은 교사의 말을 수용할 리가 없다.

수용하려고 해도 십 몇 년간 나쁜 습관이 들어버린 태도를

고치기가 어려워지고 힘들어지니 학교생활 자체가 적응하기 힘든 것이다.

부모의 부재로 인한 주변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나 칭찬도

학생이 잘못된 습관을 들이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실제로 아버지가, 참다 못해 몇 대 때렸다고 '가정 폭력범'으로 취급하고

학생을 감싸주기만 하는 상담기관이나 학교에 항의를 하기도 하셨다.

 

 

특별교육을 받을 때도 내가 전화를 하지 않으면 녀석은 전화를 하곤 했다.

한 달 가량 학교를 못 오니 학교가 그리워 학교 앞을 서성이기도 하고

교문 앞에서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학교 안에 들어오지 못하니 며칠 전에는 동아리 활동 교외 체험에

참석하기도 했다. 참석시키지 마라고 했지만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학교 있을 땐 그래도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전화를 하거나

학교 앞에서 만날 수가 있었는데 방학이 되니 만날 수가 없다고 생각 되었나 보다.

내가 머리 모양을 바꾸거나 옷 스타일이 달라지면 제일 먼저 알아보던 녀석,

선생님 머리 왜 그렇게 잘랐어요? 못 생겼어요.

아무도 관심 없는데 녀석만 내게 관심이 있나보다.

다른 선생님들은 녀석이 전학가고 나면 수업이

덜 힘들 거라고 좋아하지만 솔직히 나는 아니다.

 

 

 

녀석의 전화다.

선생님 어디세요?

어디긴 학교지

어느 반 들어가세요?

응, 우리 반 들어갈 시간...

...

나와 녀석과의 통화 내용을 듣던 옆 자리 교사왈

이럴 어째,

선생님 '나쁜 남자'의 매력에 흠뻑 빠지셨군요.

 

그런가?

이제 방학이고 2학기 땐 볼 수 없게 된 그 녀석,

‘발신자 표시제한’ 이란 '나쁜 남자'의 전화 한 통화에 종일 가슴 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