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에서

편지 / 수취인 부재

몽당연필^^ 2013. 6. 22. 23:28

 

수취인 부재

                               (아들이 받은 편지)

 

 

빈 종이를 펼치고 연필을 꺼내 들고 그 사람을 생각하고 둘만의 시간, 정갈한 마음으로 첫인사를 눌러 적는 순간, 내겐 그 순간이 첫 키스보다 달콤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인연이 만들어 내는 가장 아름다운 소통, 편지-

 

블로그란 공간은 글로써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다. 그래서 내가 쓰는 글은 나에게 쓰는 편지일 수도 있고 어쩜 누군가가 읽어주길 바라는 내 마음속 편지인지도 모른다. 모든 배경을 제외한 문자만의 소통, 행간에 숨은 의미까지 읽지 않으면 진정한 소통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진이나 그림이 아닌 문자와의 소통 눈빛이나 표정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다.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외롭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편지를 잘 쓰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낭만적인 사람이 아닌 현실적인 사람과 결혼했다. 참 잘한 일이지만 지금도 편지를 잘 쓰는 사람을 호감 가는 사람 1순위에 두는 것은 변함없다. 나는 관념적이거나 거창한 것, 미사여구나 남의 글을 베껴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연애편지처럼 달콤하게 글을 쓴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냥, 이렇게 쓰는 문자만으로도 부연 설명 없이도 감정이 소통된다면 더 없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평소 모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사람을 많이 만날 기회도 없거니와 외면적으로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아서인지 사랑에 대한 추억도 기억도 거의 없다. 그러나 두세 번 편지에 내 마음을 준 적이 있다. 편지란 진정한 마음이 없으면 오래 가지 않는다.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사랑의 편지란 더군다나 그렇다. 정말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구구절절이 쓸 말이 없어진다.

 

생각해 보니 살아오면서 참 슬프고도 암담하고 절망적이었을 때가 편지를 보내오던 사람이 갑자기 연락이 끊겼을 때였다. ‘수취인 부재' 반송 우편이나 읽지 않음이 표시된 편지가 우편함에 쌓일 때 그 때마다 난 속앓이를 했고 병원 신세를 진 것 같다. 최근까지도 그렇다. 나는 참 이성적이라고 말하면서도 문자와의 사랑에는 선뜻 마음을 내주고 만다.

 

책 속의 주인공에게 편지를 쓰면서 사랑을 하고 있다고 착각을 했고 지금도 편지를 쓸 때는 사랑을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그러나 지금 내 곁엔 사랑한 실체가 없고, 사랑한 추억마저도 없고 남겨진 편지만이 오래된 농담처럼 그렇게 쌓여있다. 인터넷 편지란 더 허망하게 남는다. 만질 수도 없을뿐더러 그대로 날아가 버릴 수도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너는 그 많은 정성 들인 편지를 보낸 친구가 그립지 않느냐고... ‘그 때 일인데 뭐.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또 다른 친구가 생기는 것이고 다 그런 거지 뭐...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고 아들이 내게 한 말이다. 그런가? 내가 비정상적인 것일까? 아직도 이렇게 아파하고 있는 나는 참 ......

 

 

 

                           (내가 받은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