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에서

부름과 이름 사이의 아득한 거리- / 김훈의 <강산무진>

몽당연필^^ 2013. 6. 15. 01:00

             어제까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리워진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면...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

 

제가 당신을 당신이라고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 속으로 사라지고

저의 부름이 당신의 이름에 닿지 못해서

당신은 마침내 삼인칭이었고,

저는 부름과 이름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건너갈 수 없었는데,

저의 부름이 닿지 못하는 자리에서

당신의 몸은 햇빛처럼 완연했습니다.

 

여관 창문 밖으로 썰물의 개펄이 아득히 펼쳐져 있었고

흰 달빛이 개펄 위에서 질척거리면서 부서졌습니다.

바다는 개펄 밖으로 밀려나가 보이지 않았고,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저승에 뜬 달처럼 창백한 달빛이 가득한 그 공간 속으로

새 한 마리가 높은 소리로 울면서 저문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저는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여관방에서 당신의 몸을 생각하는 일은 불우했습니다.

당신의 몸속에서, 강이 흐르고 노을이 지고

바람이 불어서 안개가 걷히고 새벽이 밝아오고

새떼들이 내려와 앉는 환영이 밤새 내 마음 속에 어른거렸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

                                      김훈의 <강산무진> 중 '화장'(54쪽~)

 

   

                  2006년 이맘 때 쯤이었구나.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만났던...

 어디서 이 책을 보았고 슬픔의 깊은 수렁 속에서 이 글이 떠올랐다.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며... 

'추억 속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여름방학 *^^*  (0) 2013.07.19
편지 / 수취인 부재  (0) 2013.06.22
다시 4월 14일 (선운사에서/최영미)  (0) 2013.04.14
26년 전 / 가슴 큰 여자? ㅋ  (0) 2013.02.17
그리움의 색깔  (0) 2013.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