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단상 / 오월, 그리운 사람

몽당연필^^ 2013. 5. 2. 23:09

 

                  

  

 

투명한 햇살에 연둣빛 나뭇잎이 물결처럼 반짝이는 아름다운 오월,

오월은 우리들에게 그렇게 싱그럽게 시작된다.

그러나 오늘은 아침부터 하늘도 흐리고

날씨도 쌀쌀한 늦가을 같은 오월이다.

시험기간이라 뭔가 여유로워야 하는데 마음이 흐릿하다.

너무 바쁘게 달려오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가?

작년 오월의 그 황량하고 막막하던 시간이 생각나서 그런가?

벚꽃엔딩이 보낸 아쉬운 이별이 저만치서 손 흔들고 있기 때문인가?

그냥 쉬고 싶은 마음이다. 어딘가 편안히 기대고 싶은 마음이다.

 

바쁠 땐 그리움도 쉬고 있었나 싶었는데

조금 여유로워지니 그리움이 고개를 내민다.

근래엔 두 아들이 듬직하게 버티고 있어줘서

아무 것도 부럽지 않았는데 오늘 이렇게

가슴 짠하게 그리운 사람이 있다.

껴안고 입맞춤 하고 싶은 누군가가 아니고

그냥, 어깨에 기대고 싶은 누군가가 그립다.

말없이 머리 쓰다듬어 주는 누군가가 그립다.

 

느닷없이 아버지가 보고 싶다.

돌아가신지 벌써 십 오년이 넘었는데

아침부터 자꾸만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여위고 쭈그러진 몸에 비누칠을 해대면

화를 내시며 도망가시던 아버지,

이십 여 년이 훨씬 넘게 아버지의 몸을

씻어 드리며 가슴으로 온전히

아버지의 정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부터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이십여 년이 훨씬 넘게 한 달에 한 번씩 머리를

깎아드렸으니 완전히 아버지 전용 이발사였다.

목욕하는 것이 힘들다고 그렇게도 싫어하셨는데

난 언제나 씻는 문제로 아버지를 귀찮게 한 것 같다.

오늘 아버지의 온 몸에 비누거품을 묻힐 수 있다면...

아무의 말도 듣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막내딸인

내 말은 들어주시고 억지로라도 몸을 맡기시던 아버지, 

아버지의 눈물어린 사랑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다.

 

한 번도 아버지의 품에 안긴 기억은 없지만

깡마른 가슴이었지만,  아버지의 품은 넉넉하고 따스하고

그러면서도 시리고 가슴 아리게 했다.

아흔 둘이 되실 때까지 손수 농사를 지으셨던 아버지,

거름냄새 농약냄새가 온 몸에 배어있던

아버지의 냄새, 아버지의 굽은 등이 눈앞에 어린다.

자식 앞에 강하게 보여야만 했던 아버지,

목욕 시킬 때면 어린아이가 되셨던 아버지,

오늘 그런 아버지의 모습 보고 싶다.

강한 어머니가 아닌 어리광 부리는 딸이고 싶다.

 

말씀으로 표현을 잘 안하시던 아버지께서 어느 날,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 딸만큼 참한 딸이 없더라고...

이제 더 이상 누가 이런 가당찮은 말을 해 줄까?

하나의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아버지의 사랑,

그 여위고 쭈그러진 살갗의 그리움

손끝으로 가슴으로 저릿하게 아려온다.

만질 수 없는 허무함, 볼 수 없는 이 애틋함...

아버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