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단상 / 남의 눈에 꽃이 되고 잎이 되게 하소서 (2012.12.31)

몽당연필^^ 2012. 12. 31. 18:11

남의 눈에 꽃이 되고 잎이 되게 하소서

          

            

한 해의 끝이다.

소원성취 하라는 메시지가 들어온다. 우리는 언제나 마음속에 소원 한 가지씩을 가지고 있다. 지금 이 시간 소원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하면 어떤 소원을 빌까? 나의 소원은 무엇일까? 갑자기 소원이 떠오르지 않는다. 소원이 없는 걸까?

 

나는 종교가 없다. 욕심도 별로 없다. 그래서 매사에 감사함은 느끼지만 뭔가를 간절히 기도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심지어 두 아이가 대학을 들어갈 때도 어디 가서 빌어 본 적이 없고, 많은 사람이 찾는 가까이 있는 갓바위에 조차도 간 적이 없다. 이런 말을 들으면 친엄마가 맞느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둘 다 대학엘 들어갔고, 그래서 좋은 대학에 못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별걱정을 끼친 적은 없다. 어쩌다가 눈을 감고 뭔가를 기원해야 할 때가 있을 때도 공부 잘하게 해 달라거나 부자 되게 해 달라고 빌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생각해 보니 항상 마음속에 한 가지만을 바라고 있긴 하다. 불의의 사고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기원이다. 한 가지 소원만을 해야 이루어진다고 해서인지 그것 말고는 달리 빌어본 적이 없다. 그건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돈을 바치고 소원을 빌러 가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나의 생각이 오만일 수 있지만 절하고 기도하는 시간에 가족들 밥 맛있게 해 주고 집에 돌아오면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이 더 실리적이라고 우리끼리 맞장구치면서 합리화시키는 현실주의자이다. 그러나 인간이 못하는 일을 신이 할 수 있으며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어머니는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보름, 섣달 그믐이나 정월 초하루가 되면 언제나 목욕재계하고 정안수 떠 놓고 짚불을 태우면서 천지일월 신령님께 간절히 간절히 두 손 비비면서 소원을 비셨다. 그런데 그 소원 중에 나에 관한 것은 언제나 남의 눈에 꽃이 되고 잎이 되게 하소서라는 것이었다. 가만히 들어 보면 다른 말은 별로 없으셨고 언제나 꼭 같은 그 말만을 되풀이하신 것 같다. 내가 꽃이 되라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 잘해서 성공하게 해 달라는 것도 아닌 남의 눈에 꽃이 되고 잎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한결같이 빌어 온 것이다.

 

그렇다. 어머니는 언제나 남을 먼저 생각하셨다. 내가 혼자서 아무리 잘 나고 예뻐도 남의 눈에 그렇게 비치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요즘은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만 잘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데 언제나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아오신 것 같다. 평소에도 항상 더불어 사는 삶을 강조하셨고 내 잣대가 아닌 남의 눈에 의한 잣대를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 같다. 그런 교육 때문에 때로는 힘들 때도 있었다. 어쩜 지금도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그런 기도가 어쩜 나를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분명 꽃이 아니다. 아무리 다시 봐도 남보다 뛰어난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꽃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온 것 같기도 하다. 특별한 어려움이 없었고 어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누군가가 반드시 나를 도와주었다. 내가 특별히 기원하고 소원하지 않아도 좋게 봐주고 어디선가 누군가가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의 도움도 받지 않고 살아온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학창 시절이나 사회에서나 직장에서나 언제나 사랑을 받았고 마음으로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내가 너무 잊고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늘 외롭다고 사람이 없다고 말을 하지만 돌아보면 나를 꽃으로 잎으로 보아준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가족이나 친지의 사랑이야 말할 것도 없고 몇십 년을 한결같이 지켜봐 주고 사랑해 주는 친구, 항상 짱이라고 말해 주는 제자들, 세상에서 가장 이쁘다고 말해 주는 사람, 가장 착하다고 장하다고 말해 주는 사람, 내가 흔들리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한 고마운 사람들이 항상 함께하고 있었다. 올 한해 더러는 흔들리고 더러는 마음 아픈 적도 있었지만, 그래서 내가 꽃이 아닌 것을 지독히 원망한 적도 있었지만, 한 해를 보내며 돌이켜 보니 나를 꽃으로 잎으로 보아준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지금 새해 소원 한 가지를 빌어야겠다.

우리 아이들이 남의 눈에 꽃이 되고 잎이 되게 해 달라...

나도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꽃으로 잎으로 봐줄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갖게 해 달라고 한해의 마지막에서 소원을 빌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