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시간과 책 / 베스트셀러?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몽당연필^^ 2013. 1. 3. 11:58

 닷새 째 사각의 공간에 갇혀서 꼼짝 않고 있다. 하루 손님이 오긴 했지만.

겨울잠이라도 잘까 했는데 이틀 누워 있었더니 잠도 오지 않고 머리에 쥐가 나고 허리 아파서 포기했다. 마음껏 게으름 부리며 즐기려고 했는데 출근하지 않아도 아침 5시 반이면 정확하게 잠이 깨고 6시 반에 배 고파서 밥 먹어야 되고 8시에 커피 마시고 하루를 시작한다. 텔레비전을 안보니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기도 그렇고 컴퓨터 앞에 오래 있지 못하고 주로 누워서 책을 보는데 팔 아프고 눈 아프고...

아, 이러다가 폐인 되겠다.

 

 연말이라고 주위 지인들이 자신의 책을 보내왔다. 이런 책들은 받는 날 읽지 않으면 영영 읽지 않게 된다. 이렇게 쏟아지는 책들을 누가 다 읽어줄 것인가? 읽기 쉬운 시집부터 대충 보았다. 문단의 원로이신 선생님은 시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시다. 어느 해 눈 내리는 3월 나의 전화 한 통화가 시가 되기도 했다. 이번 시집에서 눈에 띠는 것은 성을 소재로 한 시가 많다는 것이다. ‘나이 듦’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부쳐온 책>                                                                  <내 전화가 '시'로>

                

    

 몇 달 전부터 읽다가 둔 책 다시 읽기로 했다. 나는 책을 한 권씩 읽는게 아니라 몇 권을 동시에 읽는다.

그래서 어떨 때는 헷갈릴 때도 있다. 그 중에 두 권, <철학자들의 식물도감> 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철학자들의 식물도감>은 철학교수님이 권해서 샀는데 곁에 두고 보고 있는데도 아직 다 못 읽었다. 야생화를 좋아하지만 식물학에는 관심이 없고 아무래도 나는 자연주의가 아닌 것 같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되고 진도가 안 나간다. 식물학자가 철학에 대해 언급한 말과 철학자가 식물학에 대해 언급한 말을 분석한 것인데 처음부터 다시 읽기로 했다.<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어느 지인이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고 하는데 읽어봤냐고 했다. ‘그레이’ 라는 말이 들어가니 아마도 노년에 해야 할 50가지 법칙이거나 로맨스 그레이 이야기인가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야한 소설이라고 했다. 야한 소설 좋아할 나이도 아니고 별 흥미도 없다. 그런데 검색을 해보니 ‘전 세계 모든 여성들이 열광하고 있는 책’, ‘역사상 가장 짜릿한 소설’이라는 광고 문구가 보였다.

 

                                   <읽다가 만 책>                                                                <읽고 있는 책> 

              

 

 CD를 사러 서점에 간 어느 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란 CD가 보였다. 즐겨듣는 음악도 수록되어 있었고 이 음악이 작품 어딘가에 나오는 줄 알았다. 클라식 명곡들과 내용을 연관 지으며 약간의 호기심이 발동해서 샀다. 그런데 책 내용이 어떤지 보려고 진열대에서 찾았으나 없었다. 카운터 뒤쪽에 숨겨두고(?) 완전 밀봉포장이었다. 괜히 조금 부끄러웠다. 2권 중 일단 1권을 샀다. 베스트셀러라는 책이 과장광고가 심하다는 걸 알면서도 텍스트란 생각으로 사게 되었는데 집에 와서 중간 부분 서너 쪽을 얼핏 읽어보니 보기 민망한 대목이 있어서 깜짝 놀라 덮어버렸다. 호기심이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상술에 놀아났다는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CD도 내용과 연관되나 했는데 다시 보니 작가가 글을 쓰면서 영감을 받거나 들은,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했다. 역시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판매 전략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읽은 책>

 

 책표지를 뒤집어서 구석 쪽에 숨겨두고 바빠서 잊어먹고 있었는데 어느 곳에서 이 책을 언급한 글을 읽고 며칠 동안 심심한 김에 다시 읽었다. 무엇 때문에 전 세계 여성들이 열광하면서 읽었다는 것인지 ‘해리 포터 시리즈’를 제치고 미국 독서 인구의 25%가 읽었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의 독서 수준이나 문화의 수준이 미달 되나 보다. 어쩜 ‘그레이’라는 젊고 멋있고 잘 생기고 갑부인 유능한 남자 주인공에 대한 여성들의 환상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전형적인 로맨스소설 속의 완벽한 주인공이라 오히려 비현실적인 이야기 같았는데 말 그대로 여성들은 마음속에 그런 로맨스를 꿈꾸고 있나보다. 사실 사랑보다 깊고 어두운 ‘그 무엇’ 이 궁금하기도 했다.

 

 어디쯤 야한 대목이 나오나 계속 궁금했지만 반 이상을 읽을 때까지 시애틀 최고의 부호 크리스천 그레이와 21살의 미모를 지닌 영문학과 졸업반인 아나스타샤 스틸이 인터뷰를 통해 만나게 되는 과정만 이어졌다. 인물의 심리묘사가 특출한 것 같긴 했지만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특별한 곳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뻔한 소재로 6권까지 늘인 것을 보면 필력이 있는 건 분명하다. 사실 50가지의 색깔이 펼쳐지는지 잘 모르겠는데 결혼한 여자들이 보기에 그렇게 야하다고 할 만큼은 아닌 장면들도 있다. 그런데 그 행위를 너무 자세하게 묘사해서 읽는데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자극적인 장면 때문에 책이 많이 팔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성을 소재로 한 인터넷 소설의 위력일 수도 있다.

 

 책표지가 무슨 그림인줄 잘 몰랐는데 그레이가 아나스타샤를 결박한 은빛 넥타이... BDSM이란 생소한 단어가 등장한다. B는 결박(Bondage), D는 체벌(Discipline), SM은 가학피학적성애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m)을 뜻한다고 한다. 여성들은 트라우마를 지닌 멋있는 그레이를 환상 속에 가두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남성들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까? 환상은 환상일 뿐이다. 이루어지면 환상이 아닌... 50가지의 그림자 그냥 상상해도 될 것 같다. 연령대에 따라 달리 느낄 수도 있겠지만 2권은 읽고 싶지도 않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읽고 우리에게 남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출판사의 전략적인 상술에 넘어간 것이 아닐까?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나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