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낙서 / '놀자'가 아닌 '노자'? (2012. 5. 16. 오후 20:26)

몽당연필^^ 2012. 5. 16. 20:26

                       '놀자'가 아닌 '노자' ?

                                                 

    
           




     

 

 

 

 

 

 

 

   

     

 

 

 

 

사는 것이 재미없어. 사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이 세상에 내가 꼭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 나를 애타게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고 열정이 없어,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열정. 무슨 한가한 소리? 삼류 드라마야?

 

무엇을 하겠다고 어디든 찾아가고 누구를 알겠다고 어디든 가입하고 모두가 아는 것을 자기만이 아는 것처럼 친구의 숫자가 인간성을 가늠하는 것처럼 똑똑하고 인간성 좋은(?) 사람이 너무나 많아. 모든 숫자놀음은 정말 부질없는 짓이야. 무엇이든지 안다는 것은 곧 짐이야.

 

너, 외롭구나. 혼자 있지 말고 소통을 해봐. 말로든 글로든 몸으로든... 피곤했던 스승의 날, 일단 나와 보라는 친구 요청에 혹시 몸으로 부딪칠 수 있을까 기대하며 따라간 곳은 철학 강의를 하고 있는 전통 찻집. 내가 가는 곳마다 남자는 보이지 않고, 도자기를 좋아하지만 '다도'는 아는 바 없고...

 

몇몇 고상해 보이는 분들이 천연염색 옷을 입고 다도 모임을 갖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 뭐든지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번거로운 ‘茶’는 더더욱 귀찮아. 요즘 유행하는 주황색 원피스를 입은 나만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 이건 아닌데...

 

뭣이라? ‘놀자가 아니고 노자’ ?? 나는 고전을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노자보다 놀자를 좋아하는구먼요. 철학적인 것 말고 쉽고 머리 안 아픈 것... 이런 방자한?ㅎ 어째서 내가 이 분위기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냐구?

 

뭣이라? 비틀즈의 Let it be(그냥 그대로 두라)를 들려주네. 마흔한 번(?)인가 나오는 Let it be, Let it be... 그래, 그냥 순리대로 두는 거야. 뭣이라? 구스타프 말로의 비극적 음악? 교향곡 9번 4악장? 오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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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말이 있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언어가 없으면 존재가 사라진다. 언어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사물의 존재를 알아간다.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의 경전에서는 대표적 사상가나 지도자의 가르침을 ‘듣고’(聽聞) 그것을 기록하는 형식이 많다. 중국 한자의 ‘성’(聖)자도 기본적으로 일반인들보다 특별히 잘 듣는, 즉 귀가 발달한 자를 말한다. 귀가 밝은 것을 ‘총’(聰)이라고 한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 인도의 주요문헌인 ‘우파니샤드’의 뜻은 ‘가까이 앉아서 신비한 가르침을 듣는 것’이다. 가까이 앉을수록 낮은 소리, 신비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학생들에게 꾸짖은 소리, 너희들 하고 싶은 말은 그렇게 잘하면서 어떻게 남의 말을 들어줄 줄을 모르느냐고? 남이 말할 때 좀 입 다물고 있으라고. 아하, 도통하는 소리... 아니, 벌써?

 

그래, 나는 그동안 나의 말만 해왔는지도 모른다. 내 말을 들어주지도 않는 누구에게, 알지도 못하는 누구에게 긴 편지를 쓴 것도 블로그에 이렇게 긴 글을 올리는 것도.. 그러나 말을 하는 것보다 말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말을 하는 것보다 들음으로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느냐고 더 이상 말하지 말자. 일단 여기 왔으니 몇 달 ‘노자’를 들으며 놀자. 예전엔 사치로 들었을 수 있지만 지금은 절실하다. 앞서간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듣다 보면, 내 좁은 속알머리를 들여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분들의 말을 내가 들을 수 있다면 덜 외로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노자를 전해 주는 교수님의 강의에 귀 기울이고 있는 걸 보니 어차피 나는 언어와 소통할 수밖에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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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경지의 사람은 도를 들으면 힘써서 능히 잘 그 핵심을 행하고 중간 경지의 사람은 도를 들으면 들은 듯 만 듯(긴가 민가) 한다. 낮은 경지의 사람은 도를 들으면 크게 웃어 버리고(비웃어 버리고) 만다. 크게 웃어 버리지 않으면 道라고 하기에 부족하다.- (노자, 통행본 41, 백서본 4)

 

2012. 5. 16. 저녁 826분 아직도 학교-

 

 

* 글을 한 줄도 읽어보지 않고 붙여 넣기식 긴 댓글은 정중히 사양합니다.^^